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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Apr 09. 2017

[베를린 살이] 이방인의 단상

궁예, 그 후의 시간

이방인 1


여기는 yam yam 베를린. 미테(Mitte)에서 인기 있는 한인식당이다. 베를린 여행 7일 차, 쌀과 국이 그리워 김치찌개를 먹으러 왔다. 음식이 나올 동안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아시안 커플을 훔쳐본다. 김밥 한 줄을 시켜 나눠 먹고 있다. 김밥 한 줄을 나눠먹을 생각을 하다니, 적어도 한국인은 아닌 게 확실하다. 아니면 가난한 유학생이려나. 가난한 유학생이면 김밥 한 줄에 5천 원이 넘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란 추측도 해본다. 

한편 내 건너편 대각선 테이블에는 가족단위의 손님이 앉아 있다. 서양인 남성 한 명과 여성 두 명, 그리고 왠지 모르게 한국인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 둘. 이들의 식사는 이미 한창이었는데 대화가 길어진 탓인지 내가 찌개를 다 먹을 때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참, 내가 시킨 찌개는 맛이 아주 좋았다. 쌀은 충분히 찰기가 있었고 주인은 공기가 비지 않게 담아 주었다. 김치찌개이니 김치는 물론, 기대 않았던 두부와 애호박까지 넉넉했다. 베를린에서 먹는 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일까, 이 반가운 식사를 함께 나눌 이가 없어서일까. 늘 저녁으로만 먹던 찌개를 낮도 밤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에 먹어서인가. 오후 5시의 시간처럼 나는 어정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타국의 어떤 낯선 거리에서보다 한인식당에서 오히려 완벽히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이방인 2


상의는 란제리 같은 슬리브리스, 하의는 아디다스 삼선이 새겨진 레깅스를 입은 소녀가 버스 2층으로 올라와 내 앞자리에 앉았다. 외투로 무릎까지 오는 긴 밤색 무스탕을 걸치고 있었는데, 이너 차림을 보면 꼭 그 무스탕을 입기 위한 것 같았다. 다소 언밸런스한 옷차림과 화장기 없이도 예쁜 민낯, 그리고 유난히 긴 생머리의 소녀를 보고 있자니 <스킨스>의 캐시가 떠올랐다. 독일에서 영국 하이틴 드라마 등장인물이 떠오를 게 뭐람. 이내 소녀를 따라 올라온 소년은 경량 패딩을 입고 타미 힐피거 캡 모자를 거꾸로 쓰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흡사 (잘생긴 버전의) 시드 같았다. 

우연치고는 반가운 얼굴이긴 (오직 내게만) 한데, 뭐 이 둘의 외형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사실 이 둘은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했다. 소년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소녀의 무릎에 기대어 잠을 청했는데, 자리가 불편해 보였는지 소녀는 외투를 벗어 소년의 머리를 받쳐주는 듯 보였다. 가벼운 차림의 소년과 달리 소녀의 오른쪽 어깨에 걸쳐진 뚱뚱한 나이키 배낭은 내 궁금증을 더욱 증가시켰다. 이미 내 머릿속에선 스킨스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상(방)황을 상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이곳으로 떠나왔는데너희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거니나는 더 외롭기 위해 떠나왔는데너희들은 외롭지 않으려고 떠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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