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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Apr 10. 2017

[베를린 살이] 주말의 단상2

소원을 단념하고 싶어질 때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는 벼룩시장, Flohmarkt을 둘러볼 겸 티어가르텐에 왔는데, 모두가 함께였다. 연인이, 친구가, 가족이 이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강은 너무 넓었고, 나무는 너무 울창했다. 마음이 좁고, 아직 베를린의 날씨에 쉬이 몸을 떠는 나는 너무 외로웠고, 외로움은 곧 자의식의 과잉으로 이어졌다. 다시는 공원에 혼자 오지 않을 테다. 집 앞 호수공원을 생각한 내가 오산이었다. 


문득,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아침에 읽은 책 제목이 생각났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거리를 걸어왔다. 그리고 더 걸어야만 한다.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벌어질 거리를 '약간'이라는 부사로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거리는 이만하면 충분한데, 그렇다면 이제 나는 행복해질 일만 남았는데- 왜일까, 찰나지만 이곳에서 나는 외롭다는 게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외로움이 두려운 사람들의 그 절박한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살면서 한 번은 오롯이 혼자이고 싶어서 떠나온 여행인데, 이제 무엇도 자만하지 않을 거다. 




나만 자전거가 없고, 자전거뿐만이 아니라 이곳에는 나만 없는 것들 투성이다. 실은 여행을 시작하면서, 만약 나에게 또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온다면 이곳에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발칙한 상상을 했더랬다. 하지만 이미 사랑과 우정과 화목이 넘치는 이 정직한 공원에서 짝 없는 낭만이 어디 있으랴. 집으로 돌아가면서 여기서 더 외로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럴 자신이 있느냐고 한번 더 내게 묻고 싶었다. 이 진하고 말캉한 감정을 얼마나 더 오래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오늘의 anti-stress. 내일은 활짝 피어줘. 괜찮을 거라고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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