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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Apr 16. 2017

[베를린 살이] Vielleicht

아마도

하루가 쉬우면, 하루가 어렵다. 이곳에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 그게 나쁜 건지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예측할 수 없고, 통제되지 않는 삶. 실은 어디에서든 이게 인생의 디폴트 값인데도 그동안 나는 얼마나 계획적으로 살아왔나 돌이켜본다. 나름의 적당한 '절제'와 '균형'을 위해 쏟은 노력들이 참 가상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만성피로에 시달리기 시작한 걸까. 어느덧 스테글리츠(Steglitz)를 떠나기 꼬박 일주일 전 주말. 가급적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보려 한다.

처음으로 들러본 동네 서점. 표지의 색감이 따뜻하고 포근해 보였던 책들.

아마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아닐까 추측되는 감각적이고도 심플한 표지들. 참, 담배를 손에 쥔 채 포즈를 취한 저 여성을 <글쓰는 여자의 공간>에서 분명 뵈었는데- 카슨 매컬러스!




*Balzac coffee @ Rathaus Steglitz / 야매 독일 문법 공부 from <German For Artists>


실제로 '발작'커피라고 읽는 독일의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 내가 머무는 지역의 매장은 생각처럼 분위기 있거나 썩 청결하지 않아 아쉬웠다. 심지어 프리 와이파이도 되지 않았다. :( (단, 기본 메뉴인 하우스 커피 맛은 다행히 좋았다. 미디엄 사이즈가 미디엄 이상으로 넉넉해서 고마웠고.)
 덕분에 유튜브에 접속해 맘껏 음악을 들으려던 계획은 틀어지고,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지만 거의 묵혀둘 뻔했던 독일 문법책을 꺼내 몇 장 익혀보았다. 내 마음대로, 기억하고 싶은 것, 담고 싶은 페이지만 골라내서. 마침 그러면 안 돼! 라고 말하는 듯한 페이지를 찍어두었네 ㅋㅋ 'Nichht!'

*Balzac coffee 화장실에 쓰여 있던 낙서들. 왜 한국의 휴대폰 카메라는 촬영할 때 이리도 크게 소리가 나는가...(자괴감)


Good girls go to heaven, Bad girls go everywhere! 음, 맞는 말 같기도. 그래서 누군가 내게 너는 어느 쪽이며, 또 어떤 여성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볼일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답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N+N이 왜 하트인지 아시는 분...? 동일한 공식이 다른 벽면에도 꽤 있었는데, 너무 궁금하다♡




*스테글리츠에서의 마지막 장을 보고 들어가는 길. 그리울까? vielleicht.


어제의 Fleck 41도 그렇고, 오늘의 Balzac coffee도 그렇고. 동네 카페에 대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아 조금은 서글픈 기분이다. 베를린에 다시 와야 할 이유로 아직도 파란 하늘밖에 꼽지 못하고 있으니. 유기농 마켓에서도 마음 놓고 장을 볼 수 있는 저렴한 물가와 미테에서는 아늑한 카페를 조금 더 자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순간의 만족과 내 환상의 일부를 충족하는 데에 불과하겠지. 두 달 동안 스스로에게 허락한 마음의 허영을 위해.

*오늘도 그 용도가 궁금한 구조물을 지나 집에 도착해보니 집주인 어머니의 개, 매기가 방 앞에 이렇게 앉아 있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중 새로 새겨야 할 말을 찾아냈다.


Ich bin nicht da, Weil ich hier bin. Ich muss hier sein.
(I am not there, because I am here. I have to be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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