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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Apr 18. 2017

[베를린 살이] Siehst du mean bild?

내 사진을 보았습니까?

다시, 4월 16일이다. 한국은 3년 만에 비가 내리지 않은 4월 16일을 맞았단다. 모처럼 반갑고 뭉클한 소식이다. 이곳도 마침 사순절이 지나고 마침내 부활절이 찾아왔다. 그리고 비교적 날이 맑은 아침이라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오늘따라 노랑이 많은 동네에 머문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어디에서든,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또 생각한다. 기억의 힘은 언젠가는 무언가 변화시킴을 우리는 지금 확인하고 있으니까.




아시안 부디스트인 나는, 유럽에서의 부활절 휴일이 주는 고요함과 무료함을 이겨내고자 단장을 하고 마음의 고향인 스타벅스에 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 달 가까이 머물고 있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아빠, 헬무트 할아버지가 날이 좋으니 자전거를 타면서 이 동네의 스페셜한 플레이트를 구경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덥석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이후 하이킹에 버금가는 자전거를 타게 되는데...

300년도 더 된 독일의 목장. 왕에게 바칠 각종 곡물과 채소, 유제품을 만들었던 곳이라고. @Dahlem-dorm
지금도 역사의 흔적을 유지한 채 유기농 재배를 하고 있다.

첫 번째 장소는 내가 머무는 지역의 지하철역(U3 Breitenbachplatz에서 두 정거장만 더 가면 도착하는 Dahlem-Dorf 근처에 있는 목장. 'Domane Dahlem'으로 검색하면 찾기 쉽다. 주택가 틈에서 오아시스처럼 나타난 드넓은 목장의 풍경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이곳은 그 옛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만큼 농업(?) 박물관과 핸드메이드 공방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체험학습 공간을 아우르고 있어 주말 가족 나들이 장소로 제격인 듯했다.
실로 많은 가족단위의 방문객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순간 나는 헬무트와 함께해서 외롭지 않았다. 그가 의사인 형과 잠시 통화를 하고 있는 사이(내가 자전거를 탄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넘어졌는데 그때 헬무트와 통화 중이던 형이 다시 내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한 것이다) 홀로 돌아다니며 풍경을 감상해도 적적함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면 헬무트가 보였으니까. 또 그의 옆에 서 있던 커다란 자전거 두 대에 한번 더 마음이 놓였더랬다.

같은 날, 반대쪽 풍경
베를린의 하늘은 언제나 얼굴을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그 변덕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흠칫흠칫 놀라곤 한다.

홀로 덩그러니 서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던 나무. 이렇게 길고 곧게 서 있는 나무들이 좋다. 혼자서도 참 아름다운 너희들.

오늘도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오브제 발견. 헬무트 할아버지의 마음도 빼앗았다.




*격한 라이딩의 흔적과 치유제들. 헬무트가 준 Pain killer는 알고 보니 캔디였다.^^


목장 구경을 마치고 빠져나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베를린의 4월은 하루에도 5번씩 날씨가 바뀐다고 했다. 과연, 보름을 이곳에서 보낸 나는 그 말에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이미 몸소 느낀 터였다.
우리는 근처 레스토랑에 들러 손을 씻고 잠시 목을 축였다. 라이더들을 위한 맥주라고 소개해주며 그가 추천한 믹스 비에르(Mix Bier)는 맥주와 스프라이트를 섞은 건데 너무 달콤 쌉싸름하니 맛있었다. 그리고 난 독일인 앞에서 맥주를 굉장히 잘 마신다고 허세를 부렸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너무 부끄럽네. 하하.

*얼마간의 라이딩 후 또 한 번의 비를 피하기 위해 들른 카페. 베를린 Top5 호수 중 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 그리고 다시 찾아온 고요한 저녁 @스타벅스


개들은 젖은 몸을 털고, 사람들은 살짝 언 몸을 녹이고, 그리고 이들 모두가 함께 나눠먹는 카페 푸드를 즐기며 생애 첫 부활절의 오후를 촉촉하게 보냈다. 본격적으로 길어진 비를 완전히 기다릴 순 없었기에, 잠시 빗줄기가 얇아진 틈을 타 라이딩을 지속했다.
그리고 나는 이때 본 숲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아침 이슬처럼 빗방울을 머금은 초록들, 적당히 말랑말랑한 땅, 언제나처럼 선율이 있는 이곳 새들의 지저귐을 보고, 듣고, 느끼는 동안 꼭 천국의 정원을 달리는 듯했다. 내가 또 넘어질까 옆에서 내 자전거 핸들을 잡고 달려준 헬무트를 보며 나와 그에게 약속하듯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빠와 꼭 자전거를 탈 거예요." 그 또한 나와의 라이딩이 그의 귀여운 막내딸 브레타와의 즐거운 한때를 상기시킨 시간이었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It was really happy Easte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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