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은 Apr 21. 2017

[베를린 살이] Gewinnen

이기다, (노력하여) 쟁취하다

알렉산더 플라츠 근방에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갤러리 백화점. 특별한 이유는 없다. 1층에 TOP SHOP이 있고, 3층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뿐 ^^ 이날은 알렉산더 플라츠 근처, Rosenthaler Platz를 구경하려고 했는데 두 정거장만 더 가면 알렉산더 플라츠 거리가 나오기 때문에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가주었다. 화장실 이용이 자유롭지 않은 유럽에서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사태(?)를 대비해 방광을 비워두려고 했던 이유도 있고(부끄)

그리고 손에는 탑샵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늘 윈도쇼핑만 했지, 쇼핑을 한 건 처음인데- (왜냐하면 바로 맞은편에 스파 브랜드 프라이막(PRIMARK)이 있으니까!) 이건 보자마자 사야해! 라는 짤이 머릿속에 절로 소환되면서 피팅룸으로 직행해버렸다. 심지어 나와 같이 어깨 트임 티셔츠를 혐오;하는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컨펌을 받고(이미 게임 끝난 거다!) 셀카를 10장 정도 더 찍은 뒤 시원하게 결제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이곳에서 웬 프랑스 남자가 되도 않는 작업을 걸었는데, 영어가 짧고 또 위기상황에 대처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나는 20여 분을 그와 함께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거의 들으며) 걸었다. 언제 자연스럽게(정중하게) 빠져나가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차나 한잔 하지 않겠냐며 내 허리와 등, 그리고 손을 터치하는 그의 무례함에 정신이 번쩍 들어 나는 내 여행을 계속 해야겠다고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말하며 뒤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갤러리 백화점으로 피신, 괜히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데 십여 분을 투자해야 했다. 뒤늦게 자괴감과 엄청난 불쾌함이 밀려왔지만 이 기분 때문에 오늘 하루를 망칠 수는 없었다. Keep Calm and Carry On!




*빅셔너리 베를린 편에 소개된 카페 로이스. 아마 앞으로 내 일정의 일부분은 매거진 B와 빅셔너리에 소개된 곳이 차지할 것이다. @Linienstr. 60, Mitte, 10119


제철 재료의 풍미로 매일 새로이 만들어낸다는 스프와 프랑스 디저트, 키쉬를 주문했다. 키쉬는 달걀, 우유, 고기, 야채, 치즈 등을 섞어 구운 파이인데- 재료를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맛이지만 실제로 먹어 보면 상상 이상의 풍성한 맛과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리타타와 비슷한 모양새와 맛이었지만 키쉬가 조금 더 베이커리에 가까운 푸드였던 것 같다. 가방에 탄산수가 있어서 음료를 따로 시키지 않은 덕분에 8유로 남짓한 돈으로 근사하고 든든하게 즐긴 이날의 늦은 점심. 
로이스는 아담한 카페지만 나름의 오오라(?)가 느껴지는 곳이다. 바로 전날 방문한 키치한 느낌이 물씬 풍기던 카페 뫼더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나는 평소 채광이 좋고 널찍한 카페를 좋아하는 터라 두 곳 모두 조금씩은 아쉬웠는데 로이스에 한 표를 더 주고 싶다.

신선한 커리&샐러리 스프와 2n년 만에 맛본 세상 상큼한 요거트, 그리고 키쉬(Quiche)!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세워져 있던 깜찍한 차와 일정 시간이 되면 디스코장으로 변신하는 듯했던 레스토랑. 안녕!




식사를 마치고, S반 Oranienburger 역 근처로 걸어서 이동했다. 전날 들린 쿤스테베르케 베를린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미테를 아우르는 역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이날은 쿤스테베르케 베를린 바로 건너편에 있는 옛 유대인 여자기숙학교에 들렀다. 아쉽게도 유대인 여자 학교와 관련된 전시는 잠시 닫혀 있어서, 무료로 개방된 갤러리와 영어를 대충 읽은 탓에 5유로를 주고 케네디 박물관에 입장하기에 이르렀다. 티켓을 끊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케네디 박물관을 돈 주고 들어왔단 말이야? 오바마도 아니고? (더는 무식함은 짧고, 깨달음은 긴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티켓을 물릴 수는 없는 일, 그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일대를 훑어보면서 얕은 지식을 머리채 잡고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그가 암살 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또 마릴린 먼로와 엮인 스캔들도.. 가십에 강한 두뇌라 슬펐다. 하지만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케네디 박물관이 어째서 베를린 한복판에 세워졌는지는 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막상 박물관 한가운데를 걷다 보니- 대선을 앞두고, 또 해외에서의 부재자투표를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감회가 남달랐다.


그래서 막간을 이용해 그의 업적을 살펴보았다. 취임 2년 만에 암살 당한 비운의 대통령이지만, 찰나 같은 2년 동안 그는 실로 '캡틴 아메리카' 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개인적인 소감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해군 장교를 지냈던 이력 때문일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외쳤던 그. 역사가들의 견해와 달리 미국인들은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단다. 암살범이 얼마 되지 않아 살해를 당했다는 사실은 진짜 영화 같기도 했다. 그로 인해 그를 향한 그리움과 국민들의 사랑이 더 크게 번졌다는 후문까지도...

그리고 마침내 그를 기리는 박물관이 베를린에 세워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그가 취임하고 1년 후(1961년) 독일에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는데, 이 시기에 그가 서베를린에 방문해 남겼던 연설이 오늘의 역사를 바꾸게 되는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베를린장벽으로 갈린 서베를린을 방문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며 독일어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고 외쳤다고. 이 연설의 맥락을 잠깐 살펴보니- 과연 냉전 시대에 갇혀 얼어가고 있던 이들에게 꼭 필요하고, 또 그 스스로도 용기 있는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자유는 나눌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노예 상태에 있으면 우리 모두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이 도시가 하나로 결합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이 나라와 유럽 대륙의 평화와 희망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중략) 모든 자유인들은 어디에 살고 있든 베를린 시민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
"

*우아한 애티튜드로 유명했던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키 케네디


5분간의 짧은 연설 동안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승리의 확신을 전달했던 그의 메시지. '자유는 나눌 수 없다'. 훗날 영부인 재키 케네디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How strange it is, 
sometimes I think that the words of my husband 
that will be remembered most were he did not even say 
in his own language : Ich bin ein Berliner."
By Jackie Kennedy


아직도 베를린 곳곳에 (아마도 패러디화되어) 붙어 있는 포스터들의 출처를 이제야 알게 됐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 절래절래

인적이 드문 박물관을 홀로 걷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뮐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닮은 조각상과 그의 친구들도 안녕!




CAFE GM26에서 언제나처럼 따뜻한 녹차를 시켜놓고 새로이 발견한 하루를 마무리

네 번 정도 미테에 들러보니 이제 이곳이 덜 무섭고, 주변 지리도 좀 보인다. 특히 쿤스트베르케 베를린과 옛 유대인 여자기숙학교를 중심으로 무료 개방된 작은 갤러리들과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디자인 숍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삐까번쩍해서 이내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동네인 줄만 알았는데, 주머니가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의 만족감을. 가벼운 날은 또 그대로도 얼마든지 하염없이 걷기 좋은 거리였다. 그러니, 예고 않고 또 올게. 오해해서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 [베를린 살이] Danke Schö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