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려도 빨래를 해야 할 때가 있듯 젖은 마음은 찾아온다.
오늘만큼은 무지개 말고, Somewhere over the dark clouds
오늘은 많이 걷고 싶지 않아 츠빙거 궁전으로 도망쳤다. (이러고 쉼 없이 3개의 전시를 둘러보게 되는데..)
드레스덴도 피해 갈 수 없는 독일스러운 색감. 좋기만 하구만 뭘.
비 오는 날=전시장 공식이 완벽히 성립했던 오늘. 아침엔 이렇게 희미하게나마 웃음이 나오고 그랬다.
궁전 내 전시장 창가에 번진 자체 수채화 효과. 마음은 지우다 만 립스틱처럼 엉망으로 번져있는데 눈앞의 풍경은 온화하게 젖어들어가는 게 마냥 신기했다. 내 세계가 우울해도 이런 걸 발견할 수 있는 내가 기특하기도 했고..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담담하게 서 있어도 멋쁨이 뿜뿜. 혼자는 당당하고, 둘은 아름답다. 더하고 빼기의 문제가 아니다.
감히 소장하고 싶었던 두 점의 작품. 지금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게 이 그림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아서.
태초에 신이 인간을 너무나도 아꼈기 때문에 아직도 어떤 인간의 외형은 이 작품들처럼 아름다운 거겠지.
과연 시간은 금이고, 인간과 자연은 앞다투어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내기 바쁜데 나는 뭐 하는 인간이지 싶었다. 한국 가면 가수 '이랑'의 책부터 읽어야겠다.
나는 종종 전시의 방향과는 무관한 감상에 취하곤 하는데 오늘도 역시.. 그래서 어떤 전시도 티켓값이 아깝지 않다. 관람료로 개똥철학의 기회를 산 기분이랄까.
내가 바람이라면 익숙한 얼굴이 궁전 한가운데에서 눈이 그렁그렁해도 이젠 걱정조차 안 될 테지. (아 쟤는 또 왜 저래...)
누구도 하지 않은 타박에 머쓱해졌지만 나는 그냥 볕이 좋고 바람은 자꾸만 얼쩡거리길래 마음을 좀 말릴 수 있을까 기대해봤다.
He smiled understandingly. It was one of those rare smiles with a quality of eternal reassurance,
that you may come across. Four or five times in my life
*내 마음이 보이면 이 밤 함께 감차칩을 뜯고 맥주캔을 따주세요.
'머무는 여행'을 하면서 문득 넬의 스테이가 듣고 싶어져 유튜브에 검색했는데.. 음악캠프 영상이 상위에 있었다. 2013년도 아니고 무려 2003년이라니. 여행을 갈 수 있는 돈 같은 거 없이도, 맥주 맛 같은 거 몰라도 토요일에 하는 음악캠프면 충분하던 때가 있었다니.
나는 이때 중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이미 휴대폰을 갖고 있었고 때때로 용돈을 5만 원씩 받기도 해서 또래들 사이에서도 실로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왜 레스포삭 가방과 나이키 신발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 엄마의 오래된 가죽가방을 메고 우리 세대 때부터는 아무도 신지 않는 구두(나름 에스콰이어라고 혼자 엄청 뿌듯했다)를 꿋꿋하게 교복에 신고 다녔던 나. 그러다 처음 반스를 신고 등교하던 날 체육시간에 신발을 갈아 신는 게 괜히 부끄럽고 그랬다. 뭐.. 이런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취향이란 게 없다. 그렇다고 유행을 좇는 것도 아니고 네 멋도 내 멋도 아닌 채로 멋 없이 살고 있다.
그러다 관련 영상에 체리필터의 보컬 조유진이 복면가왕에서 부른 스테이 무대까지 보게 되었는데.. 과연 언니가 부른 스테이는 그대로 언니의 스테이가 되어서 좋다. 그녀는 여전히 멋지다. 나는 아직도 내 것이 없는데.
막 교복을 입기 시작하던 2003년을 회상하는 게 너무 염치없는 일이라면, 밴드부 지원할 때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를 부르던 열일곱 또한... 역시 무리겠지. (물론 탈락했읍니다) 아니 근데 이게 웬 다 된 드레스덴 일기에 추억 뿌리기인지... 그래도 한국 가면 떡볶이 먹고 노래방은 꼭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