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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May 23. 2017

[스치듯 드레스덴] Back to Berlin

Would you remember?

츠빙거 궁전을 바라보며 밥을 먹은 아침과 강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던 밤이 있었다. 시간을 '맛'으로 기억하는 건 어렵다.


이제는 EISCAFE를 보면 자연스레 아이스커피! 라고 외치게 된다.


마지막이 가까워지니 감당할 수 없는 무료함이 찾아왔다. 청둥오리가 몸단장을 하는 분수대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아무리 여행지에서의 풍경에 욕심이 없는 나라도 이렇게까지 무료해도 되는 걸까, 어떻게 이토록 무료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이 여행에 투자한 비용이 얼만데, 이렇게 하루를 무료입장한 전시를 보듯 심드렁해도 되는 건가. 악착같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도 동요하지 않는 마음이 조금 얄미웠다.

괜히 이런 장면에 시선을 빼앗긴 척해봤다.


한국에서 히트칠 땐 관심 없다가 독일 촌동네에서 처음 키리를 먹어봤다. 단언컨대 키리는 최고의 맥주 안주다.


이날 독일에 온 이후 역대급으로 더운 날이었는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한 곳에 진득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녔다. 그러다 너무 목이 말라서 맥주 한 캔을 사 신시가지 공터에서 마셨다. 덕분에 손이랑 다리가 많이 그을렸다. 안정주의자인 남자친구는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종일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배 위에다 올려놓은 채 업무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성향의 사람이 아니다. 그건 내 기준에서 상당한 에너지 낭비다. 에너지효율 등급으로 치면, 4등급 정도 되는 제품인 거다.

마침 출판인 한기호 님이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포스팅을 올리셨다. 

(캐나다 공중위생청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행동은 2년 전 어떤 행동에 원인이 있다고 하는데, 특히 여가를 집에서 한가롭게 보낸 이보다 야외에서 마구 보낸 이가 2년 후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보다 1.5배 높은 행복도를 유지한다는 사실! '신체활동과 행복도는 깊은 관계가 있고, 활동적으로 몸을 움직이면 행복이 유지된다.'는 정리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내 브런치에도 옮겨 본다.


신시가지의 쿤스트호프파사쥬로 3일째 출근도장 찍는 중. 개구리 선생이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었다.

마침내 이 자그만 돌멩이들 위에 마음을 하나씩 눕혀 놓았다.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달아나봤자 당신 손바닥 안 임을 깨달았습니다.




광장은 이곳의 평소와 달리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무의미라 해도,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며칠 동안 눈여겨 본 아시아 스낵 카페에 갔는데 베를린에서 먹은 실망스러웠던 아시아 뷔페와 비슷한 맛이었다. 리치 주스로 그나마 위로를.

그래도 오늘은 커피보다 쌀이 먼저 필요했다. 참새들에게 선의를 베풀며 먹으니까 잠시 드레스덴의 Bell이 된 기분이었다. ((나))

프라하행 플릭스 버스 티켓을 취소했다. 

간밤에 내린 비 때문이었다. 2010년의 장마를 보낸 천안 자취방 이후로 처음 느끼는 공포감이었다. 창밖으로 키가 큰 나무가 흔들리는 걸 보며 밤을 새웠다. 천국 같기만 한 드레스덴이었던 터라 비바람은 더 극적으로 보였다. 흡사 세상의 끝에서 만난 폭풍 같았다. 
오한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때는 이미 9시였다. 버스 출발까지는 45분이 남았고, 취소가능 시간까지는 겨우 30분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현장예매한 티켓이라 온라인 취소 가능여부를 몰라 잠옷에 겉옷만 걸치고 모자를 눌러쓴 채 기차역 근처 플릭스 버스 인포메이션 센터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플릭스 버스의 다소 황당한 시스템. 
서비스 수수료 2유로를 내는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취소된 비용이 현금이 아니라 또 다른 티켓의 바우처 코드로 돌아온 건 유감이었다. 나는 1년 내에 (어쩌면 평생도 가능) 플릭스 버스를 다시 탈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유럽을 또 오라는 신의 계시인가 라는 속 편한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짜증만 났다. 얇은 옷을 입고 뛰어서 땀이 많이 흘렀고, 바람은 차서 다시 또 오한이 왔다. 베를린에서 폴란드라도 가야 이 긴 여행이 끝나겠구나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11시도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9번 트램을 탔다. 평소 같았으면 이때 이미 외출 준비를 마쳤을 텐데. 혼자 하는 (긴) 여행은 아무렇게나 아무래도 좋구나. 모처럼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광장을 뒤로한 채 구석에서 참새와 밥을 나눠 먹어도 기분이 나고, 근사한 비어가르텐 대신에 마트에서 맥주 한 캔만 사가지고 들어가도 아깝지 않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 이곳에서 나는 가진 거라고는 날씨와 내 감정에 따라 쉬이 하루를 시작하거나 끝낼 수 있는 자유가 전부이니까(돈은 늘 충분치 않다). 
그리고 그 같은 자유로 인해 아직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니!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게을러도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니. 여기서는 매일이 착한 아이라니, 내가.

집으로 돌아오니 두통이 심해져 낮잠을 잤다. 여행 중 처음으로 온전히 숙소에 머문 날이었다. 외출해 있을 때와 달리 쉽게도 허기가 졌다. 아침에 먹다 남은 볶음밥에 소시지를 구워 얹고, 반토막 남아 있는 호박도 마저 구워 마지막 한 장의 에멘탈 치즈를 녹여 함께 먹었다. 마침내 냉장고를 비우고 나니, 드레스덴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도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대충 잘 먹기만 해도 대단한 건데 심지어 잘 살기까지 바라는 건 무리 아닌가?

혼자 하는 말 혼자 자는 밤, 혼자 있는 것 혼자 사는 것, 그건 내게는 당연한 것

고단한 몸 소란한 삶, 요란한 맘 또 혼자 남은 밤, 그건 내게는 당연한 것

어반자카파(URBANZAKAPA) - 혼자(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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