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경삼림 리뷰
중경삼림을 10년 만에 보았다. 이번에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가. 나는 작은 컴퓨터 화면을 뚫고 나오려는 90년대 홍콩의 거리로 점점 가까이 들어가고 있었다. 영화는 계속 시계를 쳐다보면서도 자기만의 속도로 엇갈린 두 쌍의 젊음과 새로운 재회의 순간을 담아냈다. 이제는 내가 영화속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는 사랑스러운 인물들 곁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을 때 영화는 끝나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10년 전에 이 영화를 어떻게 봤었던가. 아마도 이제 막 글자를 깨우치며 세상 만물의 이름에 관심을 보였던 어린 시절처럼 영화 속 장면들을 어렴풋이 '사랑'이라고 부르기로한 흐릿한 세계의 구성요소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나는 알게 되었는데, 세상 만물들을 부족함 없이 지칭하는 하나의 이름은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과 같은 마음의 발로를 지칭하는 표현에 대해서는 특히나. 우리가 아마도 '사랑'이라고 경험한 것들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완전히 담지 못하므로 이렇게나 많은 영화가, 이야기가, 노래가, 있을 것이다. 10년에 걸친 중경삼림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사랑의 경험과 충분히 표현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이 순간에 각인된 영화였다. 그리고 그 순간의 장면들은 마음 속에 무언가를 넘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이미 충분히 넘친다. 왕가위 감독 영화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다른 영화와의 관계,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될 운명을 앞두고 느꼈을 불안과 기대를 영화에 투영했다는 분석, 소위 쪽 대본처럼 영화를 만드는 왕가위 감독의 연출 방식이 서사와 마법 같은 장면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또....
범람하는 이야기들은 이 영화가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주었는지, 그리고 영화가 준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뜨거운 홍콩의 거리를 헤매이게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문제는 어떤 악순환에 가까운데 리마스터가 된 영화를 본 현재의 우리들은 다시금 이 영화에 갇혀서 뭐라도 말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과거의 수감자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이 말해 놓은 것들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이제와 중경삼림에 대해 쓴다고 한들 그것은 반드시 어딘가, 어느 영상, 어느 책, 어느 구절에 있는 이야기일 일 것이다.
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의 사랑도 그런 것 같다. 서기로만 따져도 2천 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폭발하듯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끝내 사랑했던 각자로 흩어진 재가 되기까지의 전형적인 과정을 매번 놀라우리만큼 새롭게 겪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가 겪은 유일한 사랑의 경험은 누군가 겪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그것을 철저히 부정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묘약이 풀리고 헤어짐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우리는 그것을 긍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게 벌어진 이 일이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기도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결국 영화가 던진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사랑은 유통기한이 있는가? 있다. 없다. 이 어려운 질문이 마음에 깊게 자리 잡고는 나를 놓아주지를 않는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이 문제를 어떤 분석으로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으므로 나는 한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눈을 가리고 양 손의 편을 나누었다. 낮 동안 왼손은 유통기한이 없다는 쪽, 오른손은 유통기한이 있다는 쪽이다. (밤에는 역할을 바꾼다.) 그리고 그 일을 까맣게 잊은 채, 사랑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일주일을 산다. (일주일만큼의 시간은 유한한 인생에서 짧다고도 혹은 길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일주일간 밤과 낮에서 왼손과 오른손이 나의 시간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는지 없는지 선택할 계획이었다. 그 결과 나는 순진한 바보가 되거나 발 없는 새가 될 참이었다. 어? 그런데 밤과 낮 동안 양손의 입장이 달라지는데 어떻게 기여도를 측정한다... 하는 생각을 하던 중에 나는 불현듯.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면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영화 속의 말을 떠올렸다. (만년의 시간은 길지만 어쨌든 기한이 끝난다고도 혹은 유한한 인생에서 그건 영원한것과 같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