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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의대지 Apr 05. 2021

[소설] 스토너 -우뚝 선 잔해

소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리뷰

신전이 신을 상징하듯 책은 한 사람을. 인간의 신전인 도서관은 모든 비범하고도 평범한 삶들을 상징한다.


서점에 갔다. 스스로 써보면 한 편의 글을 채워나가기도 쉽지 않고 사람들은 이제 유튜브와 친하느라 책과는 명절에나 인사하는 데면데면한 친척 같은 사이가 되었음에도 책들은 빼곡하고 육중하게 서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싼 책들의 상당수는 영원히 누군가에게 한 번도 들춰 보이지 못한 채 단지 책들의 신전을 이루는 기둥으로서만 남을지도 몰랐다. 조명받지 못한 어떤 책 속의 인생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스토너도 그런 책들 중에 하나였던 모양이다. 발간된 지 50년이 지나서야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는 이 소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고요한 찬사를 받고 있었다. 좋은 평가를 듣자 기대감과 함께 괜한 심술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도대체 무엇이 그다지도 이 책을 대단히 위대하게 만드는가? 이제 이 책을 읽고 나서 찬사를 하지 않으면 문학적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을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과 함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다 읽었을 때는 위대함의 이유를 추론하려는 생각은 사라지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윌리엄 스토너라는 남자가 그리워졌다. 


이 이야기는 특별히 자극적인 사건이나, 기발한 서사적 구조는 없다. 하물며 화려한 문체 때문에 필사용 공책과 형광펜을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경제 유발효과도 없다. 다만, 윌리엄 스토너가 거대한 세계의 불가해성에 깔린 무력한 존재임에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진지하게 삶을 버텨내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함으로써 윌리엄 스토너라는 주인공을 실재하는 사람으로 여기게끔 만든다. 이 소설의 담백한 문체는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과 좋은 시너지를 낸다. 그러니까 신파적 영화에서라면 마침내 클로즈업된 배우의 감정의 흘러내림을 포착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타이밍을 이 책은 먹먹한 한 문장으로 끝낸다. 담백한 문장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깊은 묵상의 시간은 우리가 애써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려 했던 그러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질문들을 다시 불러일으켜서, 마음 한편에 쌓이게 한다. 책을 읽을수록 강한 애잔함에 빠져드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떠나온 것들과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들을 상기시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윌리엄 스토너가 300년 전 셰익스피어의 시를 통해 문학과 사랑에 빠졌듯이, 독자들은 50년 된 소설을 통해 스토너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설을 종이라는 물질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 스토너는 스스로 창조한 인물 스토너를 다시 물질에 빗댄다. 윌리엄 스토너라는 작고 무거운 돌 같은 사람은 잔해로서 우뚝 선 '거대한 다섯 기둥'에 비유된다. 


"때로는 안뜰 한복판에 서서 밤이 내려앉은 서늘한 잔디밭에서 불쑥 솟아오른 제시 홀 앞의 거대한 다섯 기둥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는 이 기둥들이 원래 대학의 주요 건물이었던 곳의 잔해임을 알고 있었다. 그 건물은 오래전 화재로 무너졌다. 달빛 속에서 알몸을 드러낸 채 회색을 띤 은빛으로 빛나는 그 순수한 기둥들은 신전이 신을 상징하듯, 스토너 자신이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윌리엄 스토너中) 


 '윌리엄 스토너'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함께 검은 침묵 속으로 바닥에 떨어진 책 속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신전이 신을 상징하듯 책은 한 사람을. 인간의 신전인 도서관은 모든 비범하고도 평범한 삶들을 상징한다. 그래서 서기 2천 년이 한참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여전히 스토너와 같은 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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