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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May 08. 2023

어버이날 돌아보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5학년 엄마는 미용실을 열었다. 가게에 딸린 방에서 살았다. 고학년인 나는 전학이 싫어 혼자 버스로 등하교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정문 바로 앞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다. 이번엔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가게를 갔다. 가게에서 엄마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가게 바로 옆 만화방에서 만화를 빌려다 보기도 했다. 가끔 미용실 손님이 밀려 일손이 달릴 때면 파마 롯드도 풀어주고 중화제도 뿌려줬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런 효녀가 없다.








여느 때와 같던 평범한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가게로 갔다. 바쁜 엄마에게 보채기 시작했다. 어릴 때 지랄총량의 법칙을 다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격이 까칠했다. 집요하게 원하는 걸 요구했다. 그날도 사건의 원인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청나게 질척 질척 징징거렸다.

엄마는 화가 났다. 손님들도 있는데 바쁜 와중에 칭얼거리는 딸내미가 엄청나게 성가셨을 것이다. 당장 나가라고 했다. 특단의 조치였다.

한마디만 더 했다간 불 난 집에 기름을 붓고 그 불은 나한테 튈게 뻔한 상황. 일단 눈치껏 대피했다.


갈 데가 없다. 가게 옆 아파트 놀이터로 갔다. 혼자 모래 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렸다. 흔들흔들 그네를 타며 엄마의 화가 누그러질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려하고 놀이터에 아이들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아 고민했다.

지금 쯤이면 사태가 진정이 됐겠지. 

일단 용기 내어 가게로 내려갔다.







가게 문이 닫혀있다.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잠시 기다려본다. 점점 해는 저물고,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도대체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핸드폰도 없던 시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점점 심장이 쪼그라든다.





어떻게 할까. 계속 여기서 기다릴까. 집으로 갈까.

아. 돈이 없지. 야단맞고 쫓겨난 신세가 처량한 국민학생은 주머니에 십 원짜리 하나 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낯익은 아저씨가 지나간다. 같은 상가에 아저씨다. 본능적으로 아저씨께 도움을 구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혹시 차비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내가 뭘 믿고 너한테 빌려주니?"








아. 당연히 그 아저씨도 내 얼굴을 아는 줄 알았다.

이제 어떡하지. 해가 져물어간다. 얼굴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용기 내서 한번 더 꺼낸다.


"저 여기 미용실 딸인데, 엄마가 안 계세요. 좀 도와주세요."


그제야 아저씨는 택시비를 쥐여주셨다.


얼른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캄캄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다.

도대체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그냥 잠깐 대피하러 갔을 뿐인데 가출인 듯 가출 아닌 가출이 되어버렸다. 나를 두고 어디로 간 걸까.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은 다른 감정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어이없고 화가 난다.

이 와중에 눈치도 없이 배는 또 왜 고픈 거니. 왜 인간의 본능은 시도 때도 없이 작동하는 걸까.

라면 봉지를 뜯으며 끓어오르는 냄비의 수증기를 바라보며 멍하니 엄마를 기다렸다.

라면이 익어간다. 아직도 오지 않는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드디어 다 익은 라면 냄비를 들어 올렸다. 무심히 바라본 냄비에 뭔가 떠다닌다.

라면 수프 고춧가루만 한 개미 한 마리.

너는 왜 길을 잃고 여기에 있니.

너도 엄마를 기다리는 거니.


그제야 눈물이 고인다. 뱃가죽이 등에 붙었는데 그마저도 해결을 못 해서 우는 걸까. 배도 고프고 엄마는 없고 개미는 죽었다.


덜커덩 끼리릭. 오래된 고철이 부딪히는 문소리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빠다.

엄마도 있다.

우린 모두 왜냐고 묻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다행이다.





오늘은 어버이날.

아빠, 엄마. 사랑해요.

아빠,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행복해요.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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