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이런 만두

by Hee언니

이 세상엔 수많은 만두가 있다.

고기만두, 야채만두, 왕만두, 찐만두, 군만두, 비빔만두, 물만두.


그중에서도 찐만두가 좋다. 엄마가 빚어 주신 만두 따위의 추억은 없다. 맞벌이 집의 엄마는 바빴고, 명절 때마다 만두를 빚는 풍습을 지키는 지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찐만두에는 추억이 서려있다.

어릴 적 아빠는 택시 야간 운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찐만두를 종종 사 오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품 안에서 꺼내면, 잠이 덜 깬 채로 눈을 비비며 만두를 집어먹었다.


커다란 왕만두도 아니고, 유명 만두 집의 만두도 아니다. 그저 슈퍼에서 파는 냉동 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온 것 같은 ‘털보 만두’였다. 밤새도록 택시를 몰던 아빠의 고단함이 묻어있었던 걸까. 딱 한판, 몇 알 되지 않는 그 적은 양이 넉넉지가 않아서 그랬을까. 유난히 그 만두는 맛있었다. 그런 날의 기억들 때문일까. 여전히 찐만두가 좋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군만두만 먹던 최민식을 보며 도대체 왜 군만두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찐만두는 맛있으니깐. 군만두는 식으면 맛없으니깐. 짜장면에 서비스 정도로 나오는 정도니깐.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군만두는 반찬 정도의 메뉴였다. 어릴 때 엄마와 함께 시내 만두 가게에 가면 찐만두, 야끼만두(그 가게에서는 이렇게 불렀다.), 쫄면을 메뉴에 있는 세트인 것 마냥 시켰다. 찐만두 먼저 먹고 야끼만두를 단무지처럼 하나씩 집어먹었다. 물론 쫄면도 만두의 느끼함을 잠재워줄 단무지 같은 존재다.


군만두를 먹다 먹다 지쳐 지겨워졌을 때 최민식을 풀어준 것처럼, 찐만두가 지겨워질 때쯤이면 또 다른 시도를 해본다. 시작은 첫째의 말 한마디였다. 같이 슈퍼에 갔던 아이가 냉동실 앞에서 멈춰 이야기를 건넸다. 자기는 물만두를 제일 좋아한다고. 입이 짧은 아이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물만두를 사서 간식으로 내줬다. 찜기에 만두를 찌는 건 것조차 귀찮았던 나에게는 최고의 조리 방법이었다. 끓는 물에 만두를 넣고 잠깐 끓여주기만 하면 됐다. 엄청난 수고를 덜어주었다. 알이 작아서 아이들이 먹기에도 좋았다. 그렇게 한동안 아이들의 간식은 물만두였다.


아빠와의 추억에서 시작된 만두 사랑은 시간이 지나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사정에 맞춰 그때그때 조리법을 바꿔가며 계속 사랑하고 있다. 누군가의 사랑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면 관계의 조리법을 바꿔보자. 만두에게는 권태기가 올 틈이 없다. 찐만두의 밋밋한 만두피 식감이 자꾸 거슬린다면 바삭하게 튀겨보자. 자꾸 반찬만 먹는 것 같아 군만두가 맛없어 보이면 한 그릇 뱃속까지 든든한 만둣국은 어떨까. 고기가 느끼하다면 김치 섞인 김치만두도 있다.


그마저도 식상하다면 비빔 만두를 추천한다. 어릴 적 친구들과 분식집에 가면 비빔만두를 꼭 먹었다. 만두피 안에 얇게 있는 듯 없는 듯 펴 발라진 고기가 들어있는 납작 만두를 기름에 지져낸다. 채를 썬 양배추와 깻잎, 당근 등의 야채를 초고추장에 비벼 함께 먹는 음식이다. 버무린 야채 무침이 입맛을 돋우며 만두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여고생들의 떡볶이 같은 음식이었다. 하하 호호 웃으며 먹던 매콤한 맛은 사춘기 소녀들의 수다스러운 맛이다. 그리 세련되지도 그리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맛없지도 않았다.


색다른 맛을 선사해 준 만두가 하나 더 있다. 처음으로 OO만두 갈비만두를 먹었을 때, 충격적이고 강렬했다. 어떻게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만두에서 갈비맛이 나올 수 있지. 만두를 먹으면서도 갈비를 생각하게 하는 묘한 맛을 처음 접했을 때의 끊이지 않는 궁금증이 잊히지 않는다. 갈비의 냄새를 입힌다고 듣긴 했지만, 여전히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갈비 냄새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우리 머릿속을 지배한 건가. 아직도 궁금하다. 갈비맛의 비밀이.


갈비맛 만두처럼 냄새에 이끌려 한입 콱 물었다가 된통 당하는 만두가 있다. 딤섬 중에서도 육즙 가득한 소롱포. 대나무 찜기의 뚜껑을 여는 순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전해지는 만두 향기에 잠시 이성을 잃을 수 있다. 그 순간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한입 깨물어 버리는 순간 입천장은 만신창이. 만두는 때론 기다림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제껏 만두 속을 직접 만들어 빚어본 적도 없으면서 먹기만 바빴던 만두를 한 번쯤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다. 만두피 반죽을 하고 고기를 다지고, 두부를 으깨고, 채소를 장만해서 또 다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만두소를 버무려 넣어 만두 모양을 만들어 보고 싶다. 먹어만 봤던 그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까지 욕심 내보고 싶은 욕구. 만두 속 하나하나를 준비할 때마다 들이는 정성을 이제는 해보고 싶은 욕구. 음식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기다림을 인생에서 더해보고 싶다.


만두까지 만들어 보고 나서 바라보는 만두는 다른 만두일까. 이럴 때는 이런 만두를 저럴 때는 저런 만두를 만들어보고 먹어봐야겠다. 그날의 취향과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만두,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하나만 먹고 만두를 저버리기엔 만두의 변신 은 무죄다. 군만두를 먹다 먹다 질려버리는 날도 있겠지. 그날의 만두는 죄가 없다. 단지 질리게 만든 원인이 있었을 뿐.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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