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기를 뒤집을 타이밍

by Hee언니

뜨거운 숯불이 들어오자마자 성급히 불판에 고기를 올려버리면 미지근 한 온도가 고기를 데울 뿐 잘 굽히지 않는다. 차가운 불판이 따끈하게 달아올랐을 때, 고기 한 덩이를 올릴 때 들리는 지지직 소리. 그 소리가 입맛을 돋운다. 불판에 닿은 면의 기름이 송골송골 올라와 분홍빛이 천천히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그때가 고기를 뒤집을 타이밍이다. 수분이 기름으로 변하는 잠깐을 기다리다 또 한 번 뒤집는다. 너무 자주 뒤집어도 맛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천천히 뒤집으면 타버린다. 적당히 노릇노릇 구워지는 적절한 타이밍은 언제일까.


고기 굽는 타이밍처럼 인생에도 적절한 타이밍이란 게 있을까. 인간이 세상에서 태어나 울음을 확인하고 눈을 뜨고 먹고, 자고, 걷는 신체적 시간은 비슷할 것이다. 자신만의 생각이 자리 잡으며 자아가 생겨나는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도 한 번은 겪을 것이다. 얼추 비슷한 시기에 몸과 마음이 자라나는 듯 하지만 똑같이 자라나는 사람은 없다. 각자 저마다 자람의 시간이 다르다. 잘 자라고 있는 건지 매번 궁금해하고, 확인을 하며 돌아본다. 나는 잘 자란 걸까. 아직도 덜 자란 사람 같다.


항상 이 시기에 이걸 해야지 라는 기준이 싫었다. 왜 꼭 공부를 그 시기에 해야 하고, 왜 꼭 이때 결혼을 해야 하며, 왜 꼭 결혼을 하면 애를 낳아야 하는지. 싫다고는 했지만 공부는 해야 했고, 결혼을 했으며, 애를 낳았다. 그것도 셋씩이나. 그 타이밍이 세상의 기준에 맞는지는 모르겠다.


배움의 시기는 언제가 적기일까. 중, 고등학교 시절 어른들의 공부도 때가 있다며 지금 공부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확실히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어릴 때가 배움의 적기 인건 확실하다. 하나, 나이에 따른 정형화된 학교 공부가 아닌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 그때가 배움의 적기가 아닐까.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없는 공부는 마치 회식 때 기계적으로 고기를 굽고 있는 막내의 모습처럼 보인다. 무의식으로 집게를 휘두르는 무의식의 움직임이라고나 할까.


요즘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졌다. 애도 낳고 뇌도 낳아서 돌아서면 까먹는 게 일상이지만 공부가 하고 싶다. 어릴 적 책에서 이해되지 않던 부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넓어졌고, 궁금한 것은 더 많아졌다. 수많은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 마음의 준비를 이제야 끝마친 기분이다.


결혼 적령기는 언제일까. 결혼의 타이밍도 궁금하다. 결혼을 미친 듯이 하고 싶어 계획을 해도 혼자서 결혼을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서로 사랑해도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도 그렇다고 또 꼭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아닌 참으로 신기한 약속이다. 약속의 시기도 사람마다 다르겠지. 솔직히 결혼은 내 취향은 아닌데 결혼은 할만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헤어짐의 타이밍도 궁금하다. 이별에도 타이밍이 있을까. 내일 5시 25분에 이별을 해야지 하고 계획대로 이별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별의 말은 꺼내기 조차 힘들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이별을 겪을 수도 있다. 이별 그 당시보다 이별하기까지의 과정을 되뇌다 뱉은 말이 헤어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별 후의 시간을 곱씹으며 또 살아가겠지. 누구에게나 이별은 있다. 단지 때를 맞출 수 없을 뿐.


결혼을 하면 꼭 애를 낳아야 하는 건가. 그것도 궁금하다. 성인 남녀가 사랑을 하고 그 결실로 아이를 낳는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법도 없지만, 낳지 않아야 할 이유가 더 많은 세상으로 바뀌어버렸으니깐.


갈등 상황에서도 타이밍은 중요하다. 언제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언제 사과를 해야 할지. 싸우기 전에 눈치껏 대화의 흐름을 파악했어야 하는 타이밍이 물론 가장 중요하겠다. 눈치 싸움, 이건 취향에 안 맞다. 눈치껏 행동해야 하는데 그게 아직도 잘 안된다.


눈치가 없으니 타이밍도 잘 못 맞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나날의 적기는 딱 떨어지게 못 맞춰도 의미 있는 시간을 지켜보고자 한다. 시간의 순서보다는 삶의 시간,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알고 싶은 것을 마음껏 파헤쳐보는 열정의 시간을. 헤어짐을 아쉬워하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시간을.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그것에 책임지는 시간을.


요리조리 고기를 뒤집다 보면 타이밍이 딱 안 맞아도 요령이 생기기 마련이다. 삶을 지켜보다 공부던, 사랑이던, 이별이던 그 적절한 타이밍이 왔다 싶으면 놓치지 않을 열정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눈치채지 못하고 흘러가버린 시간에 타버린 고기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혹시라도 아차 하는 순간 고기가 타버린다면 잘라버리면 그만이지.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지 않는 깔끔한 포기도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 가위로 까만 그을음을 싹둑 잘라버릴 것이다. 타버린 고기는 아깝다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이별에 대한 미련을 잘라내야 다음 사랑이 찾아오듯이.


타버린 고기 생각에 우물쭈물하다 또 다른 기회를 놓칠 수도 있겠다. 이제라도 불판 위의 고기가 익는 시간처럼 인생의 시간을 살펴야겠다. 탄 고기는 못 먹는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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