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독성 Sep 21. 2023

이별 신호


며칠 전부터 드래곤이 지쳐 보인다. 끝이 바스러지는 잎들이 보였다.


새로 나오는 꽃들이 아직도 송골송골 올라오는데, 믿을 수가 없다.


이별을 준비하기엔 내 마음이 허락지 않는다. 항상 이별은 뜬금없다. 마음이 떠난걸 눈치챘지만, 혹시나 하는 미련에 눈치보다 차였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면 된다고 기다리다 또 차였다. 차이는 게 오히려 속편 하다는 위로를 되네이다 차이기도 했다. 준비된 이별이란 게 있을까. 항상 마음만 저리던데.


예측 불가의 사랑에 대해 혼자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사랑을 쏟아내려 시든 잎을 뜯어줬다. 분위기라도 바꾸면 사랑이 다시 돌아올까. 가는 사랑의 발목이라도 잡아보겠다며 분갈이를 급하게 해 본다.  

조심스레 화분과 흙을 떼어내 본다. 조금이라도 사랑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염려했다. 뿌리는 많이 자라 흙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너와 내가 사랑할 공간이 필요하다며 신호를 보냈던 걸까. 화분 가득 뿌리내린 시간 속에서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스쳐 지나간다.  

더위가 찾아오던 6월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아. 맞다. 100일. 100일이었다.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오늘, 생각지도 못한 100일 기념 이벤트가 펼쳐졌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100일. 아이 탄생의 100일. 연인들의 100일. 수능 100일 같이 우리는 100일 동안의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한다.  

물만 주면 되는 줄 알았지. 우리 100일인데 뭐 없냐는 속삭임을 들을 줄이야. 시든 잎과 분갈이로 여기저기 흩어진 흙들을 주워 담으며 피식 웃었다. 잘 지내보자고. 이제 1000일까지 약속해 줄 거냐며.  


이별에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온 맘 다해 사랑하면 미련이 없을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기에. 오늘도 사랑을 보내본다. 그의 말을 들어보려 한다.



분갈이를 했더니 드래곤과 새싹이 키가 비슷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끝은 또 다른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