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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Oct 02. 2023

가을걷이

마당에서 딴생각을 하다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슬쩍 접질려진 발목에 다시 힘을 주고 간신히 발바닥을  내려놓는다. 뒤꿈치를 꾹 누른 힘을 발 아치로 옮겨본다. 발바닥에 힘을 실어 발가락 10개를 모조리 뻗어 다시 걸어본다. 한 발자국 디디며 세상을 다시 일으켰다. 두 발이 단단히 뿌리 박힌 힘으로 척추를 곧게 세우고 몸을 일으킨다. 잘 서있는 걸까.


올려다본 높다란 가을 하늘에 나무가 걸렸다. 어느덧, 감나무의 감들이 주렁주렁 여물며 가을이 익어간다. 뻗어나간 가지에서 튼튼히 뿌리내린 나무의 큰 자람을 떠올려본다. 땅 속을 볼 수 없음에도 뿌리는 튼튼하리라는 당연함이 있다. 땅속의 기운을 뿌리에서 끌어올려 머리끝까지 뻗어내는 힘은 가을 열매, 결실이다.


몇 년 전 어느 날 어느 시각 감을 따긴 했었다. 그게 언제였더라.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감나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몇 년 동안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대롱대롱 달려있던 감을 보며 죽음을 생각했다. 한동안 벌레가 꼬인다며 화단에 버리지 말라던 신랑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한 과일과 야채를 열심히 던져놓은 탓일까. 죽었다 생각한 나무의 잎이 어느새 무성해졌다. 끈질긴 생명력의 존재가 오늘은 이끌었다.


주황색 점이 군데군데 찍혔다.   익은 홍시만 쏙쏙 골라 콕콕 쪼아낸 흔적들이 한입 베어문 것 마냥 움푹 파였다. 까치도 다른 이들을 위해 까치밥을 남겨두었는지 앙상하게 먹은 열매는 그 어디에도 없다. 신기하게도 덜 익은 감은 새들이 쪼아 먹지 않았다. 덜 익은 감을 겁도 없이 먹었다가 떫은맛에 입안이 마비되는다는 걸 새들도 아는 걸까. 새들도 때를 기다릴 줄 아는가 보다.


총총거리며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다가왔다. 잘 익은 감 하나를 골라 쪼아 먹는다. 잘 익었는지 한번, 맛있어서 한번, 배를 채우려 한번, 아쉬운 듯 한번, 잘 먹었다며 한번. 그만하면 됐다며 짹짹 거리며 폴 날아간다. 굶주린 다른 이들에게 알리러 갔을까.


새의 속삭임은 온 동네에 퍼졌나 보다. 친구를 부르러 간 줄 알았더니, 소문은 엉뚱한 곳에서 퍼졌다. 윙윙거리는 속삭임으로 달려온 벌. 홍시의 단내에 정신 못 차리며 감나무 주변을 맴돌다 이내 가버렸다. 감꽃 떨어지고 열매 맺힌 줄도 모르고 그저 향기에 취해 따라왔나 보다.


잘 익은 홍시 몇 개가 보인다. 모조리 다 따서 껍질 홀라당 까서 한입에 쏙 넣어버릴까. 한 개, 두 개를 따다 하늘을 다시 훑어봤다. 뒤늦게 소문을 들은 새무리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기약 없는 미래를 위해 한 입만  따가야겠다. 높은 가을 하늘 아래에 걸린 감나무 그림에 새가 빠지면 왠지 섭섭할 것 같다.


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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