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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Feb 01. 2024

오래된 의자에서 오랫동안 글을 쓰고 싶어.

극복의 뒤주에서 나무 지구본에서 커다란 붓에서 좌경에서 도자기에서 공포의 청설모에서 한 번도 뵌 적 없는 아버님의 흔적들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계단을 따라 눈 동그란 청설모를 지나 하늘이 맞닿은 옥상 문 앞에는 작은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온갖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옥상 문을 열고 누가 오는지 감시하는 그 자리. 저걸 왜 안 버리나 안 버리나 노래를 불렀는데 책상 타령하던 작가병 걸린 아줌마의 차지가 됐다. 글을 써야 하는데 책상이 없다며 자리 탓만 하던 초보는 독서실 책상을 검색하며 당근 마켓을 기웃거렸다. 이게 어떠냐 저게 어떠냐 이걸 가지러 갈 텐가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신랑을 귀찮게 했다. 멋진 오크색 커다란 책상을 사주기를 은근히 바랐건만, 신랑은 옥상 앞을 지키던 낡은 책상을 가지고 내려왔다.


뽀얀 먼지 사이와 함께 실망감에 젖어들었다. 쓰지도 않는 오래된 물건들에 둘러 쌓여있어서 그마저도 답답한 지경인데 마음대로 책상 하나 못 들이냐며 속으로 투덜댔다. 아는지 모르는지 걸레로 책상을 닦아준다. 철로 된 의자 다리는 세월의 흔적을 따라 녹이 슬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 면에는 군데군데 연필 자국 가득하다. 눈대중으로 대충 훑어도 오래됐다. 닦아도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눈에 거슬린다.


여기에 둘까 저기에 둘까 물어보는 목소리에 현실감이 생겨버렸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 않겠냐며 마음을 다독이며 찬찬히 책상을 들여다봤다. 노트북과 마우스를 올리면 딱 맞는 작은 크기의 책상이다. 의자와 일체형 구조의 특이한 책상이다. 어머나 세상에. 변신도 가능하다. 나와라 만능팔 정도의 획기적인 장치는 아니지만 책상 상판을 열면 수납공간이 나온다.(아직 아이들에게 변신 기능을 들키지 않았다. 보물창고 득템)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책상이다. 아버님이 날 위해 준비해 두신 선물일까.


마음가짐이 달라지자 덩달아 정도 붙는다. 메뚜기처럼 식탁을 오가며 들고 다니던 노트북을 떳떳하게 올려놓고, 쿠션 없는 딱딱한 의자에 엉덩이가 아픈 줄도 모르고 글을 썼다. 새 책상을 안사준 미안함인지 정말로 엉덩이가 아파 보였는지 신랑이 방석을 주문했다.(일명, 서울대 방석. 서울대를 가야겠다는 미친 상상도 해본다.) 책상 옆에 있던 책장에 아이들 책은 싹 다 치워버렸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만의 공간을 드디어 만들었다. 글도 쓰고 책도 읽는 시간이 켜켜이 모여 엉덩이와 서울대 방석에게 끈끈한 정을 옭아매고 있다. 엉덩이 힘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작고 오래된 책상에서 저는 글을 씁니다.


초록 잎 풍성한 잘 자란 식물을 뽑아 올리면 그 뿌리 또한 튼튼하다. 흙을 파헤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뿌리가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도 없고,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도 없다. 오로지 흙 위의 줄기와 잎 그리고 꽃이 대변한다. 결국엔 보이지 않는 뿌리가 튼튼하면 보이는 외면도 멋진 삶,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삶. 튼튼한 뿌리의 삶, 멋지지 아니한가.


겨울 추위에 웅크려 곧 다가올 따스한 봄에 뻗어낼 줄기와 잎을 위해 자그마한 뿌리들을 뻗어내려 용을 쓴다. 책상에 앉아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가는 일은 알 수 없는 뿌리의 시간을 견뎌내는 일이다. 시간을 믿고 찬찬히 뿌리내리길 바라고 있는지 되물어본다.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박사 졸업 후 10년, 근근이 시간 강사로 버텨왔다. 첫째를 낳고는 한숨 돌렸다 생각했다. 젖먹이를 떼어놓고 지방 강의도 다녔다. 둘째를 낳으면서 이젠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아이들만 키우기에도 체력은 버거웠다. 예상치 못한 셋째와 코로나가 삶을 휩쓸었다. 쓰나미가 밀려오는 중에 그래도 이젠 출산은 끝이겠구나. 생각을 하며 이제는 정말 내 삶을 찾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보니 10년이다.


결혼식에서 만난 선배에게 신세한탄을 했다.


"선생님. 저는 10년 동안 애만 낳았어요. 한 게 없어요."

"왜 한 게 없어 강의도 했고, 애도 키웠잖아.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선배의 한마디에 용기가 생겼다. 희생을 강요하지도, 희생만 할 마음도 없었지만, 아이들을 봐줄 이가 없으니 온전히 나의 몫이라 생각했다. 아까워서 학교에 발을 걸치고 어기적 걸었는지도 모른다. 실오라기라도 걸쳐놨더니 불안한 마음은 아주 조금 떠나갔다. 그럼에도 언제 잘릴지 모를 파리 목숨 같은 자리에 미련은 있었고, 가끔은 욕심도 생긴다. 터널 바깥의 빛이 찬란해 보여서 어떻게든 어둠을 뚫고 달려왔는데, 또다시 컴컴한 밤이 되어버렸다. 어둠을 뚫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린 시간이 10년. 아직도 새벽녘 해 뜰 시간을 기다린다.


해는 언제 떠오를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왠지 또 하나의 터널을 뚫고 나올 수는 있을 것만 같다. 10년을 버티던 아까운 마음에서 벗어나 다른 땅을 파헤쳐 본다. 이 오래된 책상의 시간처럼 오랫동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머금으며 자판을 두드린다. 초록빛 반짝이는 커다란 잎으로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나무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두드려본다.






<오래된 집이 말을 걸었다.> 연재를 마무리하는 날이 왔습니다.


겨울 내 집안에서 종일 뒹굴거리는 집순이의 삶을 써보려 했으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집태기가 왔다고 해야 할까요. 싫은 마음에 욕을 할까 하다가 글 쓰면서 정 붙었어요.


연재는 너무나 힘든 일인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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