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놀이라는 거대한 미션을 무사히 통과하고 3일째를 맞았다. 오늘은 미리 예약한 경주 자동차 박물관에 가기로 한 날이다.
보문사 오리배를 타려다 통구이가 될지도 몰라서 실내로 장소를 정했다. 국립 경주 박물관도 있고, 로봇 박물관도 있는데, 아들 셋은 만장일치로 자동차를 골랐다. 문제는 어른이다. 엄마는 박물관을 갈 거냐고 백번은 물었고(안 간다는 뜻), 아빠는 자동차 박물관이라니 가신다고 한다.간다. 안 간다. 간다. 안 간다. 결국 다 같이 갔다.
드디어 출발 전 엄마의 닭백숙을 아침으로 먹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 했건만, 엄마는 닭을 삶았다. 첫째 날은 회 먹느라 못 먹고, 둘째 날은 계곡에서 닭백숙을 먹어야 해서 못 먹고, 엄마가 만든 닭백숙은 계속 우리를 기다렸다. 어제도 닭을 먹었지만 문어도 넣고, 전복도 넣은 닭백숙을 우린 맛있게 먹었다.남편은 오늘도 커피를 사 왔고, 원샷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점심이다.
점심은 한우를 먹기로 했다. 경주가 한우가 유명하다는 걸 40년 만에 알았다. 어릴 때는 구경도 못하던 소고기를 싼 가격에 배불리 먹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소고기 맛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자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경주에서 먹은 그 고기, 소고기가 먹고 싶다고 한다. 나는 급하게 저녁거리로 고기를 샀지만, 그것이 호주산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자동차를 보러 갔다. 생각보다 조용해서 좋았고, 생가보다 작아서 좋았다. 여러 나라의 옛날 차들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옛날 차 트렁크는 분명 세단인데 어른 세명은 거뜬히 누울 수 있을 만큼 트럭 트렁크만큼 커서 깜짝 놀랐다. 역시나 아들 셋과 아빠는 자동차 구경에 신이 났고, 엄마는 막상 와보니 차 앞에서 사진 찍는 걸 좋아라 하셨고, 남편과 난 이동거리가 짧고 시원한 실내라서 대만족 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자동차 박물관이었다.
트렁크가 엄청 큰 차들
3층으로 올라가자 카페가 있었다. 음료를 시키면 아동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작은 놀이방도 있었다. 태어나서 키즈 카페를 한 번도 안 가본 셋째는 그곳을 보자마자 뛰어갔고, 그곳에 들어갈 수 없는 형아들을 놀리며 신나게 놀았다. 막내가 땀범벅이 돼서 신나게 노는 동안 첫째가 노랗게 질린 얼굴로 배가 아프단다. 아까 한우를 신나게 먹더니 안 먹던 소고기를 먹어서 탈이 난 걸까. 며칠 낯선 곳에 다녀서 탈이 난 걸까. 손을 주무르고, 배를 만져주고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다행히 배 아픈 건 진정이 됐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진정되자 집으로 가기 위해 나섰다.
경주에 왔으니 집에 가는 길에 드라이브도 할 겸 찰보리빵을 사가자고 했다. 보문단지 호수는 엄청 잘 자란 나무들 덕분에 보이지도 않았고, 길에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 단골 찰보리빵 가게는 꽤 먼 거리의 외곽에 있었고, 드라이브를 원 없이 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던 그때, 첫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했다. 갓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길을 모르고, 조수석에 앉은 아빠는 찰보리빵 집에 다 왔다고는 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폭발하기 직전, 다행히 가게에 도착했다. 천만다행으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훗날, 둘째는 급똥의 추억(만화책 마법 천자문에서 주워들은)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며형아를 놀렸다.
찰보리빵을 나눠 먹으며 포항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은 어제 계곡에서 터져버린 엄마의 신발이 맘에 쓰였는지 가는 길에 신발을 사러 가자고 했다. 시내로 향했다. 옛날엔 약속 장소는 무조건 우체국 앞이었는데, 오늘 보니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는 구도심이었다. 여기저기 비어있는 가게들을 보니 기분이 착잡했다. 이대로 시내의 추억은 사라져 버리는 걸까.
안 산다고 손사래 치던 아빠, 엄마는 신발을 두 켤레씩 샀고, 때마침 저녁때라 밥도 먹고 가기로 했다. 어릴 때 잘 가던 만두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여전히 추억이 서려있는 쫄면과 만두로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많이 돌아다닌 것도 아닌데, 더 피곤하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혼자 8시에 잠들었다. 피곤하다.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