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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Nov 12. 2024

곱창 먹다 울컥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는 우리 부부는 주로 낮에 시간이 될 때 데이트를 한다. 말이 좋아 데이트이지 아이들이 없을 때 맛있는 거라도 음미하면서 먹어두자며 돌아다닌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고기만 굽다가 먹지는 못한 생각이 나서 좋아하는 삼겹살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뜨거운 국물이 뜨거운 채로 먹고 싶은 날에는 동네 설렁탕 집에서 국물을 호로록호로록 마시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좋아하는 곱창은 낮에 먹기가 힘든 음식이다. 보통 곱창집은 주로 오후 5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5시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다.

오늘 괜히 청소를 하다가 옛날 물건들이 가득 담긴 박스 하나를 열었다. 거기에는 논문 심사 때 쓰던 제본 뭉텅이들과 결혼 전 보러 갔던 공연 팸플릿들이 뒤섞여 있었다.

"참 열심히도 살았네. 조선희."

치열했던 내 과거의 흔적들이 떠올라 괜히 울컥했다. 갑작스러운 추억 여행에 우울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박스라도 치우면 미련 없이 과거에서 벗어날까 싶어 남편한테 박스를 그냥 다 버려달라 부탁했다. 아이스커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시며 애써 요동치는 가슴을 눌러봤다. 그냥 버리지 말까, 아니 그냥 버려를 중얼거리며 버려 달라던 박스를 또다시 뒤적인다. 왔다 갔다 방황하는 나의 모습에 남편이 말을 건넨다.

"애들 오면 내가 데리고 있을 테니 혼자 곱창 먹고 올래?"

아. 이 남자 이제는 나를 너무 잘 안다. 심오하고 우울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머릿속에는 때 아닌 곱창만 가득했다. 지금이 기회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걸까. 이거라도 먹고 힘을 내 나의 미래를 설계해 보자며 당차게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저녁 6시쯤, 신나는 발걸음으로 식당을 향해 걸었다. 식당이 가까워질수록 내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혼자 왔다고 안 들여보내 주는 건 아니겠지.'

식당에 들어서자 맛있는 냄새는 풍기고 있었지만, 자리는 휑하니 비어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집으로 갈 수는 없다며 혼자 왔다고 외치며 용기 내 자리에 앉았다. 직원이 안내해 준 자리는 누구나 지나가다 혼자서 곱창을 구워 먹고 있는 나를 볼 수 있는 햇살 좋은 창가 자리였다. 피어오르는 숯불의 연기를 피하는 척 창 밖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휴일을 앞둔 저녁거리에는 팔짱 낀 연인들이 지나갔고, 술잔을 기울이러 건너편 포장마차로 들어가는 무리들도 여럿 지나갔다. 텅 빈 식당 안에 혼자서 이걸 먹겠다고 앉아있는 외로운 존재는 나뿐이었다. 익숙한 외로움이 안개처럼 내려앉았다.

질겅질겅 질긴 곱창을 씹다가 울컥했다. 훗날 아이들도 떠나고 남편도 없다면 나는 혼자서 곱창을 먹을 수 있을까. 곱창을 질겅질겅 씹을 힘이 없어 못 먹을 것 같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써준 마음이 생각나서 못 먹을 것 같다. 그땐 집에서 기다리는 신랑이 없을 테니깐. 지금 잠시 느끼는 외로움은 신랑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시간이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먹으면서 우울한 시간을 달래고 오라는 그의 마음은 온전히 나를 위한 마음이라 감사했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꾸역꾸역 열심히도 먹었다.




결국 곱창 5인분에 양밥을 해치우고 우울함을 떨쳐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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