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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Sep 10. 2024

3. 사망하셨습니다!

119가 오면 살아나는 줄 알았더니...

(2편을 분명히 발행했는데, 안보여서 찾아 보니 브런치북이 아닌 다른 곳에 발행되어 있더군요. 순서를 어떻게 바꾸는지 몰라, 3편 뒤에 2편을 그냥 발행했습니다. 얘기의 순서상 뒤에 발행한 2편을 보고 오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ㅠㅠ)


“여보, 119!”


놀라서 2층에 있는 방으로 뛰어올라갔더니 남편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벌써 입술이 새파랬다. 그런데 전화기가 없었다. 남편의 전화기가 옆에 있었지만 그때는 눈에 띄지 않았다.


급히 딸아이를 불렀다. 빨리 전화기 가져오라고, 아빠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딸아이도 놀라서 뛰어왔다.


그 사이에 남편의 입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나오고 있었다. 틀니였다. 남편이 혀로 틀니를 밀어내고 있었다.


남편은 40대 초부터 틀니를 했다. 이빨에 문제가 많아 치과에 자주 가는 것이 싫어서 차라리 틀니를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 한 선택이었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야 남편이 틀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


신혼여행지에서 우리는 스킨스쿠버 다이빙 고급과정을 배웠다. 물속에서 산소 호흡기를 뺐다가 다시 넣는 연습을 하는 중에 남편 입에서 뭔가가 훅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공기압이 센 탓이었다.


저게 뭔가 하고 봤더니, 틀니였다. 좀 놀랐지만, 남편이 말하지 않기에 나도 모른 체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다른 사람의 틀니에 대해 얘기하다가 남편이 털어놨다. 사실 틀니를 하고 있다고, 당신이 본 걸 알고 있다고.


그만큼 남편은 자신이 틀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딸은 당연히 몰랐다. 그랬기에 딸아이가 오기 전에 급히 틀니를 서랍에 넣었다. 일단은 딸아이에게 숨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119 안내원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라고 했다. 심폐 소생술을 실시하기 전에 '환자'를 침대가 아닌 방바닥에 누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런데 남편은 키가 컸다. 뚱뚱하진 않았지만 덩치도 있는 편이었다. 침대 밖으로 끌어내리기가 힘들었다. 남편을 침대 밖으로 끌어내리느라 몇 분을 허비했다.


전화기를 스피커폰 상태로 둔 채 119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심폐 소생술을 실시했다. 내가 하다가 힘이 달려 딸까지 합세했다. 숨이 찼다. 남편도 숨을 헐떡였다. 아니 헐떡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분이나 했을까? 10여 분은 된 것 같은데, 마침내 119 구조 대원이 왔다. 3명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나와 딸이 하던 심폐소생술을 이어서 했다. 그리고 무슨 주사를 놓으려고 했지만, 혈관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놓기는 했다(고 믿고 있다.)


구조대원들이 30분 넘게 심폐 소생술을 했다.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흡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금 전까지 숨을 헐떡이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게 숨을 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종의 반사 반응이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병원으로 싣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 구급차에 남편을 실었다. 그런데 구급차에는 보호자 1명만 탈 수 있다기에 딸아이를 구급차에 태워 보냈다. 딸아이 혼자 집에 두고 갈 수는 없었기에.


나는 대충이나마 집안 정리를 하고, 남편의 틀니를 챙겨 차를 운전해 급히 양평 병원으로 갔다. 남편이 그 사이에 살아 있으리란 기대를 걸면서.


병원에 도착했더니, 딸아이가 응급실 밖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응급실에선 남편 심장에 전기 충격을 가하고 있는 듯 부산해 보였다. 내가 들어가 보려 했지만,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딸아이 옆에 다른 한 명의 남자가 있다는 게 그제야 눈에 띄었다. 병원 관계자는 아닌 것 같았다.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경찰이라고 했다. 경찰이 왜?라는 듯이 쳐다봤더니, 119를 통해 응급환자가 응급실로 실려 오면 경찰도 출동한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딸아이와 나는 긴장하긴 했지만, 그렇게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봐왔던 TV 드라마나 프로그램에서 119 구조대가 오면 대부분 살아나는 것을 봤기에 남편도 당연히 살아나리라 믿었다.


죽으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기도도 하지 않았다. 약간 웃으면서 농담도 했던 것 같다. 심각할수록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는 내 이상한 성향도 한몫했다.


다만 걱정은 됐다. 남편이 오랫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기에 뇌에 이상이 생기거나 잘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2층 방에 올라가기 힘들 텐데, 1층에 침실을 만들어야 하나와 같은 궁리도 했다.  


또 한편으론 남편의 치매 비슷한 증상이 심해지면 어떡하나 같은 걱정도 들었다. 깨어나면 치매검사도 받게 해야지 싶기도 했다.    




남편은 최근 한두 달 사이에 유난히 기억력 감퇴 증상을 보였다. 치매 증상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그저 회사를 퇴직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 생활의 리듬도 깨지고 뭔가를 특별히 기억할 필요도 없으니 기억력이 무디어진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딸아이가 학교에 가져가겠다고 사온 스낵을 다 먹어버리고는, 자기는 몰랐던 일인 양 시치미를 뚝 떼기도 했다. 딸아이가 분명히 학교에 가져갈 것이라는 말을 남편 앞에서 했는데도 그랬다.


증상은 크리스마스 열흘 전에 갔던 필리핀 휴양지에서 더 심해졌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도 뭘 주문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한 번이 아니라 몇 차례 그런 모습을 보였다. 자신도 이상한지, 한국에 돌아가면 병원에 가보자는 내 말에 순순히 동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남편은 병원 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함께 사는 17년 동안 병원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아픈 적이 없이 건강했다. 심지어는 건강검진도 받지 않았다. 한국 회사는 건강 검진이 의무라고 했는데, 외국 회사라 그런지 건강 검진이 딱히 의무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한국에 오고 나서 맞는 첫 결혼기념일에 남편은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그때 나는 "결혼기념일 선물로 건강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남편은 그런 내 말도 화를 내며 무시했다.


"멀쩡한데 왜 건강 검진을 받느냐"는 것이 남편의 반응이었다. 남편은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 사람임을 알았기에 나는 더 이상 건강 검진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오죽하면 병원에 자주 가기 싫다는 이유로 40대 초반에 틀니를 했을까.


다만 농담 삼아 이 말만은 해주었다.


"당신이 이렇게 좋은 집을 지어 놓고, 게다가 돈도 충분히 벌어 두고 원인 모를 병으로 갑자기 죽어 버리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그런 남편이었기에, 자신의 증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겠다고 한 것은 큰 발전이라고 여겼다.


나는 남편이 치매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서둘러 검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양평에서 보내고, 1월 2일인 남편의 생일까지 보낸 후 검사를 받으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남편의 치매 증세는 필리핀에서 돌아와 양평으로 오는 길에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서울 연희동과 양평 집 사이를 백여차례 오간 북부간선도로. 그 도로 톨 게이트에 들어설 무렵 남편은 뜬금없이 도로에 표시된 파란 선을 보고 말했다.


"저 파란 선은 무슨 뜻이야?"


나는 이 어이없는 질문에 가슴이 쿵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지만, 이미 치매라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 놀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무심하게 말했다.


"하이패스라고, 톨게이트 통과선이야. 저 선을 따라가면 자동으로 통과비가 지불돼"

"그럼 우리 차에 그런 장치가 있어?"

"당연히 있지"


두 번째 질문에도 물론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긴가민가 했던 치매 의혹이 확신으로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지옥이었다.


남편은 우리가 양평에 집을 지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지 않을까. 남편은 나와 재혼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는 할까. 남편은 내 이름이나 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공교롭게도 남편은 최근 들어 몇 번 딸의 이름을 전처소생 딸의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딸이 자세히 듣지 못했기에 내가 무마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의사가 침통한 얼굴로 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의사의 한 마디!


"사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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