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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Sep 13. 2024

4. 내가 살인 용의자라니!

부검을 결정하기까지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사망이라니. 아니, 왜? 병원에 왔는데, 왜 죽어? 구급차가 싣고 왔잖아. 병원에 왔으면 살아야 되는 거 아냐?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곁으로 갔다. 남편 얼굴이 보였다. 틀니가 없는 그의 입은 홀쭉했다. 입 주변으로 피가 흘러나온 흔적이 보였다. 가슴에도 피멍이 들어 있었다. 장시간의 심장충격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남편의 눈을 봤다. 감지 못한 그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 있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그리고는 환상이었는지, 새 한 마리가 보였다. 날개가 꺾인 듯,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 새가 바로 나처럼 보였다. 내 인생이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발을 동동거리며 울었던 것 같다.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우는 일 밖에.


내가 울고 있는 사이 딸아이가 들어왔다. 놀랍게도 딸아이는 울지 않았다. 남편의 손을 잡고, 남편의 얼굴에 키스를 하며, “아빠, 사랑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렁그렁했던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나처럼 통곡하지는 않았다.


그런 딸아이의 모습이 나는 생소하고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때는 대견하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남편의 부릅뜬 눈을 보며, 마지막 가는 길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은 생각도 나중에 들었다. 그 와중에 남편의 눈 색깔이 언뜻 녹색으로 보였다.


남편은 농담 삼아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여보, 내가 사랑에 빠지면 눈 색깔이 녹색으로 변해. 어때, 지금 녹색이지?”


뜬금없이 사랑에 빠지곤 했던 남편, 죽을 때까지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았던 남편의 눈.


그 눈을 감겨 주고, 다시 통곡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 인생에 엄청나게 큰일이 일어난 것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남편을 부여잡고 동동거리고 있을 때, 경찰이 다가왔다. 경찰서에 가서 무슨 조서를 꾸며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절차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나는 남편을 그대로 두고 가는 게 망설여졌다. 이제 막 숨이 끊어진 사람을, 아직 작별 인사도 제대로 안 했는데 그를 떠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우리 남편은 이제 어디로 가느냐?”라고 물었다. 참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경찰은 냉동 사체 보관소에 안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몇 시간 전까지 내 남편이었던 사람이, 삼겹살을 먹고 소주를 마시며 웃던 그 사람이 이제 ‘사체’가 되어 냉동 보관실에 ‘보관’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남편을 차라리 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다. 그의 옆에서 오래오래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경찰이 말한 그 절차를 나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겨우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추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정도였다.


경찰서에 가기 전에 언니와 조카에게 전화를 했다. 이 순간의 막막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내 입으로 남편의 죽음을 알려야 하는 이 순간의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알려야 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는 당시 포항 쪽으로 당일치기 짧은 여행을 떠나 있었다. 무슨 계모임이라고 했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왁자지껄했다.


전화의 첫마디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울다가 간신히 “크서방이 죽었다”고 말한 것 같다. 우리 친정 식구들은 남편을 크서방이라고 불렀다. 남편 이름의 첫 글자가 ‘크’ 자 여서 그랬다.


언니는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랐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그날 아침에 나는 언니와 전화통화를 했다. 1월 2일이 크서방 생일인데, 놀러 오라고 말했다. 언니가 포항으로 놀러 가는 중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버스 안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짧은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저녁 식사를 하는 중에 제부의 부음을 받아야 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딸아이를 데리고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서울에 살던 조카도 왔다. 조카에게 딸아이를 맡기고 경찰과 마주했다. 병원에 왔던 경찰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 경찰은 남편이 죽기 전 일어난 상황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있었던 그대로 대답했다.


아침을 늦게 먹고, 산책을 하고, 삼겹살을 먹고, 돌아와 잠시 졸다가 남편의 다급한 외침을 들었다는 식으로.


그런데 이 경찰은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이미 물었던 질문을 하고 또 했다. 아주 구체적인 것까지 물었다. 집에서 강변까지 거리가 얼마냐 같은.


거리가 얼마인지 모르는데,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그게 남편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집에 와서 내가 뭐 했는지, 남편이 뭐 했는지도 몇 번씩 되물었다. 나는 소파에서 TV를 보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고 대답했고, 남편은 아마도 방에 들어가서 쉬었을 거라고 대답했다.


계속 묻기에 내가 뭘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도 한심했다. 남편이 뭘 하고 있었는지 몰랐다는 생각에 자책감도 들었다.


그런데 경찰의 다음 말에 나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았다.


“침착하게 대답을 참 잘하시네요. 이런 경우에 보통 보호자들은 횡설수설하는데요!”


헉, 그랬다. 나는 온갖 자책을 하면서도 경찰이 묻는 질문에 따박따박 대답을 ‘’했다. 그때는 그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서너 번째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아까 대답하지 않았느냐"라고 짜증까지 냈다.


그제야 알았다. 그게 일종의 범인 심문 과정이었음을. 나는 남편의 죽음에 연루된 가해자일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남편의 살인 용의자로 내가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얼핏 인지하면서, 그동안의 나를 되돌아봤다.


내가 남편에게 화를 내며 “제발 혼자 좀 내버려 두라!”라고 외쳤던 장면, 산책길에 느릿느릿 걷는 남편에게 다가가지 않았던 장면, 얼굴이 창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내 모습.


게다가 병원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는 그다지 슬퍼하지도 않았다. 기도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 모든 것이 내가 살인 용의자임을 증명하는 행동 같았다.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나는 남편의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 그냥 쓰러졌어야 했다. 왜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 스스로의 강인함이 원망스러웠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애도해도 모자랄 그 시간에 살인 용의자로 몰려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저 황망했다. (나중에야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경찰이 으레 하는 절차라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그걸 생각할만한 이성이 없었다.)




그런데 숙제가 또 한 가지 남아 있었다. 경찰이 부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새는 하도 이상한 일이 많이 생겨서요. 아내가 남편을 독살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고요. 부군은 외국인이고 병원 기록이 없으니, 틀림없이 검찰이 부검을 하자고 할 겁니다.”


내가 의심받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착잡했다. 생전에 병원을 그토록 싫어했던 남편을 생각하면 부검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검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내 누명부터 벗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사실은 나도 궁금했다. 그렇게 건강했던 남편이 왜 그렇게 갑자기 가야 했는지, 진심으로 알고 싶었다.


부검을 신청하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그때부터 내 진짜 지옥이 시작됐다. 나는 마치 내가 뱉어 낸 어떤 뼈아픈 말이나 어떤 음식이 독소가 되어 그를 죽인 것만 같았다.


모든 게 내 잘못으로 일어난 것만 같았다. 도대체 그는 왜 죽었는지, 한편으론 궁금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두려웠다.


내가 마치 남편을 죽인 것만 같아서, 그 사실이 부검으로 밝혀질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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