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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Sep 20. 2024

6. 한 줌 재가 된 크서방!

시누이와 함께 한 장례식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장례식 준비는 조카들이 전부 일임해서 진행했다. 상조업체를 부르고, 빈소를 마련하고, 화장 일정을 조율하고, 조문객을 맞는 것까지.


빈소에 놓일 사진을 고르는 게 문제였다. 내가 건넨 몇 개의 사진들이 전부 퇴짜를 맞았다. 남편이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도, 대부분 나와 딸의 사진이었다. 본인 사진은 거의 없었다.


결국 고른 사진은 남편이 타이완에 갓 도착해 국빈호텔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활짝 웃고 있는 14년 전 그의 얼굴.  걱정이라고는 1도 없이 희망만 가득했던 모습이었다.  


연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조문객이 많았다. 대부분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대학 친구들, 중학교 동창들, 그리고 퀼트 친구 및 타이완에서 만났던 지인들.


중학교 동창들은 대부분 경남 부산 등지에서 올라왔다. 그들도 남편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워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남편을 한두 번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믿기 힘들어했다.


남편 회사 사람들은 대여섯 명 끼어 있었다.


특이하게도 남편이 타이완에서 근무하던 시절 동료라는 사람이 타이완에서 날아왔다. 남편이 자신의 후임으로 키운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서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 사람과 또 한 사람의 한국인 여직원이 남편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다. 한국인 여직원은 우리 집에 가족과 함께 온 적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 두 사람은 남편이 자신들의 롤모델이었다고 말했다. 안심이 됐다. 남편이 일하는 동안 그렇게 인심을 잃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 직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크***은 항상 우리에게 '인생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서 언젠가 갔던 발리 여행도 남편 덕분이었다고 덧붙였다.


그제야 생각났다. 아이가 어렸을 때 갔던 발리의 한 리조트에서 남편은 회사 직원 가족도 왔다면서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봤던 직원이 바로 이 사람이었다.







시누이는 12월 30일에 도착했다.


연세대 장례식장 안에는 호텔식 객실이 별도로 있었다. 아마도 멀리서 조문 오는 사람을 위한 시설로 보였다. 그 객실 2개를 예약했다.


룸 하나는 시누이가 쓰고, 다른 한 개는 나와 우리 가족이 쓰는 걸로 했다. 하지만 딸아이와 나는 남편의 빈소 앞에서 잠을 잤다. 그게 편하고 좋았다. 남편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딸아이와 나는 틈틈이 오는 조문객을 맞고 절을 했다. 그때 우리 표정이 어땠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슬픔에 찌든 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심지어 조문 온 친구들 테이블에 가서 웃기도 했다. 한 친구는 “소공이 표정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까지 했다.


딸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서너 명의 친구들과 함께 앉아 농담을 하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그 큰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오히려 웃을 일을 찾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웃을 일이 있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다.



그보다 어쩌면 우리는 그 당시 남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죽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입관하는 날. 딸아이와 나, 그리고 친정 가족들과 시누이라 줄지어 섰다.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틀니가 빠져 홀쭉해졌던 입도 뭔가로 채워졌는지 볼이 통통해져 있었다.


장례 지도사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고 했다.


딸아이가 남편의 볼에 키스하며 다시 한번 사랑한다고 말했다. 시누이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묵념을 했다. 나는 그의 볼을 쓰다듬고 손을 잡았다. 목이 메었을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나는 그의 생일 선물로 준비했던 퀼트 이불을 건넸다. 바다를 가득 담은 파란색 로그캐빈 퀼트 이불. 관에 넣어 달라고 했다. 틀니도 넣어달라고 줬다. 틀니는 미리 줬는지도 모르겠다.


통곡은 이번에도 언니 몫이었다. 언니는 “크서방”을 외치며 울고 또 울었다.


남편의 관을 장의차로 옮기는 일은 중학교 남자 동창 6명이 맡았다. 남편이 키가 크고 허우대가 좋은 편이라, 관이 꽤 무거웠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화장은 서울추모공원(서울 서초구 원지동)에서 진행됐다. 남편의 타이완 동료와 한국인 여직원도 화장장까지 동행했다.


남편의 시신이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고 화장이 끝날 때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긴 기다림의 시간에 우리는 대기석에 앉아 있다가 점심도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보다 여덟 살이 어린 장조카(큰오빠의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다녔다는 생각은 나는데,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시누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딸이 뭔가를 먹기는 했는지, 다른 가족이 어땠는지 기억에 없다. 시신을 분화구에 넣기 전과 중간에 분명히 어떤 절차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뭐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때 나는 이미 반쯤 죽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깊은 슬픔에 잠식당해 뇌의 작동이 멈춰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마침내 화장이 끝나고 그의 뼈가 하얀 항아리에 담겨 나왔다. 우리는 분당의 한 추모공원으로 가기 위해 장의차에 올랐고, 누군가가 나에게 항아리를 건넸다. 그 길 내내 나는 항아리가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그의 손을 잡았을 때처럼.


남편은 내 손을 잡고 있는 걸 좋아했다. 심지어 운전할 때조차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내 손을 잡고서 운전했다. 녹색으로 변한 눈동자로, 틈틈이 나를 보고 씩 웃으면서.


항아리를 품에 안고 가는 동안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따뜻함에 마음이 흐물흐물해져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장의차가 추모공원으로 가기 전 양평집을 들러야 할지 누군가가 물었다. 나는 당연히 들러야 한다고 대답했다.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집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장의차가 양평집에 들르면 추모공원에 안장하는 시간에 맞출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그럼 그냥 추모공원으로 가자고 말했다.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병, 다수의 이익을 위해 일단 양보하고 보는 병. 이때의 결정을 나는 오랫동안 후회했다.




추모공원에 그의 유골을 안장하고 양평 집으로 왔다. 친정 가족 대부분은 내려가고 언니와 형부, 서울에 사는 조카들, 그리고 시누이가 남았다.


집에 온 시누이가 남편의 유언장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유언장이 있을 리가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시누이는 한심해했다. 자신의 오빠, 즉 내 남편을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시누이의 부모(내 시부모님)는 이미 40대 때부터 유언장을 마련해 해마다 갱신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 시누이가 한 말은 더욱 놀라웠다.


“바**는 무서운 사람이야. 돈에 관한 한 악착같아. 아마 크***이 남긴 재산을 다 뺏으려 할 거야. 그러니 가급적 빨리 변호사를 선임해”


바**는 남편의 전처 이름이었다. 물론 법적으로 전처는 유산을 받을 권한이 없다. 하지만 자식들을 앞세워 권리행사를 할 수는 있었다.


나는 좀 충격이었지만 '설마!'라는 생각부터 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말하지, 하필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그 말을 해서 공포감을 주는지 시누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남편이 무책임하다고 비난했던 시누이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내 남편을 비난해? 이렇게 죽은 것도 억울한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누이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남편 #죽음 #장례식 #추모공원 #유언장 #시누이 #변호사



<작가의 말>


"인생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거야!" --남편은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어 했는데, 그렇게 같기도 합니다. ^^


"아무리 슬프고 힘든 상황에서도 웃을 일은 있다!" --딸아이와 저는 그 웃을 일을 열심히 찾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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