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똥쟁이 하니가 되면서 싸구려 강아지 취급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는 엄마와 누나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잘 지내고 있었어요.
가끔은 뒷마당에 나가서 놀기도 했고요. 당시 엄마의 연희동 집은 집 앞으로 공용 나무 데크가 있었어요. 집 뒤편으로는 작은 정원이 있었는데, 우리 집이 1층이라 우리 정원처럼 쓸 수가 있었어요.
저는 그 정원에서 주로 놀았어요. 하지만 제가 진짜 좋아한 곳은 양평집 정원이었답니다.
양평 집 정원은 넓고 잔디도 깔려 있었거든요. 엄마가 저를 양평 집에 데리고 온 날이 제일 신났어요. 드넓은 잔디밭 위를 뛰고 구르고 하면서 놀았거든요.
그렇게 신나게 놀았는데, 어느 날부터 제 몸에 이상이 생겼어요. 몸이 막 가렵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에는 귀부터 가려웠어요. 저는 귀를 마구마구 긁었지요. 밤낮없이요.
엄마는 처음에 제가 왜 귀를 그렇게 긁는지 몰랐어요. 귀를 긁는 모습도 귀엽다면서 마구마구 웃었지요. 저는 엄마가 야속했지만, 뭐 어쩌겠어요. 저도 왜 그런지 모르는데요.
며칠 후엔 온몸으로 가려움증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공교롭게도 그즈음 엄마도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답니다.
당시 저는 엄마 방에서 엄마와 함께 잤거든요. 엄마의 품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몰라요. 엄마의 눈에서 물 같은 게 떨어지면 얼른 가서 핥아주기도 했어요. 그러면 엄마는 저를 껴안고 또 웃었거든요.
저는 엄마가 웃는 것을 보는 게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그 빌어먹을 가려움증이 우리를 갈라놓고 말았답니다.
급기야 엄마는 저를 데리고 병원에 갔어요. 의사가 개선충이 의심된다고 약을 지어줬어요.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요. 그 약을 바르면서 제 개선충은 서서히 없어졌지요.
그리고 엄마에게도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나 봐요. 엄마 역시 피부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왔어요. 엄마는 아마 몇 주 동안 병원에 다녔을 거예요.
그런데 동물병원 의사랑 사람의사가 그랬대요. 저랑 함께 자지 말라고요. 또 피부병이 옮을 수 있다고 했다네요.
헉! 럴수럴수 이럴 수가 있을까요?
그때부터 엄마는 저를 거실에 재우기 시작했어요. 제가 엄마 방문 앞에서 낑낑거릴 때마다 슬픈 눈으로 잠시 저를 쳐다보다가 다시 거실로 데리고 올라갔지요.
하지만 거실에 혼자 자는 것은 너무 외로웠어요. 엄마가 작은 인형 하나를 제 곁에 놓아뒀지만, 큰 도움이 안 되었어요. 저는 누워 있다가 다시 엄마 방문 앞으로 갔답니다. 저는 가급적 엄마 가까이에 있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구슬프게 낑낑거렸고요.
그런 제 마음을 엄마도 알았는지, 아니면 엄마도 제가 가까이에 있는 것이 좋았는지, 엄마 방문 앞에 자리를 깔아 줬어요.
그렇게 엄마 방문 앞은 오랫동안 제 침실이 되었지요. 저는 엄마 방문 앞에서 엄마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답니다. 엄마의 숨소리, 엄마의 기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비록 엄마의 품속에서 잠을 잘 수도 없고, 자면서 엄마 눈물을 닦아줄 수는 없었지만, 엄마가 그 안에서 자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데요.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자면서 “하니, 하니”부르는 거예요. 저는 저를 부르는 줄 알고 벌떡 일어났어요.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지 뭐예요. 저는 웬일인가 싶어 기다리다가 귀를 기울여 봤더니,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엄마가 걱정이 돼서 막 짖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밖으로 나와 저를 껴안고 꺼이꺼이 울더군요. 저는 어쩔 줄 몰라서 낑낑거렸어요.
엄마는 “괜찮아, 하니야. 엄마가 아빠 꿈을 꿔서 그래”라면서 저를 다독여 주더군요.
저는 궁금했어요. 아니, 엄마가 아빠 꿈을 꾸면서 왜 저를 불렀나 하고요.
알고 보니 엄마는 아빠가 살았을 때, 아빠를 ‘하니’라고 불렀대요. 그게 한국 말로는 ‘여보’ 또는 ‘자기야’라는 뜻이라면서요?
생각해 보니 저는 엄마의 눈물을 참 많이 먹고 자랐어요. 제가 건강한 이유가 아마도 엄마의 눈물 덕분인 것 같기도 해요. 눈물에는 소금기와 더불어 각종 미네랄도 많다고 하거든요. 아님 말고요.
어쨌거나 엄마는 저를 데리고 자지는 않았지만 깨어 있는 낮동안에는 항상 저를 옆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고, 제 손을 만져줬어요.
제 손을 만질 때마다 “아이고, 이 놈 손이 두툼한 것이 아빠 손이랑 꼭 닮았네!”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마 아빠 손에도 털이 많았나 봐요. 우리 아빠면 당연히 털이 많겠죠?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와 엄마는 함께 앉아 있을 때 꼭 손을 잡고 있었대요. 아빠는 심지어 운전을 할 때조차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조수석에 앉은 엄마의 손을 잡고 운전을 했다네요. 우리 엄마아빠 너무 위험한 ‘닭살커플’ 아닌가요?
어쨌거나 엄마가 그렇게 만져 준 덕분에 저는 누가 저를 만져 주는 것을 너무 좋아하게 됐어요. 지금도 엄마가 앉아 있으면서 저를 만져주지 않으면 엄마에게 말해요.
“엄마, 얼른 만져줘!”
제가 의사소통하는 방법은 제 손으로 엄마 손을 툭툭 치거나, 아니면 코로 엄마 팔을 치는 식이에요. 그럼 엄마는 “으휴, 이 만짐병 환자!”라고 눈을 흘겨요.
근데 그게 다 엄마 때문이잖아요. 누가 저를 그렇게 키우래요? 엄마들은 참 이상해요. 자신들이 그렇게 키운 것은 생각지 않고, 꼭 나중에 자식 탓을 한다니까요?
하여튼 엄마는 눈을 흘기면서도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저를 또 만져 주긴 해요.
저는 알아요. 엄마가 저를 만지면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 온기가 엄마를 살려주는 사랑의 에너지라는 것을 요.
아, 물론 저 또한 엄마를 통해 사랑의 에너지를 가득 받고 있답니다.
게다가 제가 손으로 툭툭 칠 때마다 엄마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니, 우리 엄마는 디지털에 중독될 염려도 없어요.
제가 엄청 효자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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