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소박한 아름다움을 위한 일상의 찬가

by 글섬

참 아름다운 영화다.

라는 한줄평으로 끝내도 충분할 만큼.


살아가는 데 주안점이란 게 있다면 개인적으로 '아름다움'을 꼽는다. 밥을 먹는 일상을 비롯해 걷고 말하고 웃는 몸태, 나 자신을 대하는 성향과 하루를 밀고 나가는 습관까지, 그 모든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름다움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행복의 의미를 묻는 영화라고 말했지만, 나로선 그저 아름다웠다. 남자의 몸태에는 그저 '행복'으로 규정해 버리기엔 부족한, 행복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남자는 묵묵히 하루를 살아간다. 도쿄 공중화장실 청소부인 그는 자칫 비천히 여겨질 수 있는 그의 하루를, 살아내거나 살아남는 게 아니라 선명히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방 창문에 이제 막 닿기 시작한 햇살과 파란 새벽 바람에 윤슬처럼 일렁이는 가로수 잎사귀의 움직임에 눈을 맞추며 미소 짓는다. 출근길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설 때면 훌쩍 끼쳐 오는 아침 공기에 또 다시 미소 짓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제와 다름 없이 똑같이 미소 지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의 모습은 오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걸 아는 그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고요히 읊조린다.


점심 시간, 일터 근처에 위치한 사원의 고목이 우거진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셔츠 앞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을 찍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친 뒤 어제와 똑같은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고 돌아와 노동의 피로로 잠이 쏟아질 때까지 갓등에 대고 책을 읽다 잠이 든다. 주말이면 집안을 청소한 뒤 자전거를 타고 인근 필름 인화소를 찾아 지난 주에 맡겼던 필름 사진을 찾고 이번 주에 찍은 필름을 맡긴 뒤에 중고 서점에 들러 낡은 서적을 구매해 들고는 단골 주점으로 향해 반주와 함께 식사를 하며 방금 구매한 책을 읽는다. 가끔씩 손님의 강요에 못 이기는 척 엔까를 부르는 주점 여주인의 구슬픈 선율에 마음을 적시기도 하며 주말을 보낸 뒤 다시 월요일 아침이 되면 똑같은 미소로 똑같은 한 주를 출발한다. 절제된 대사와 앵글을 통해 고요하지만 정확하고 세심하게 하루를 끌고 가는 그를 지켜보던 관객은 질박한 그의 하루에 전이되어 한껏 이완된다. 남들 눈에는 하찮은 일이지만 괘념치 않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신만의 원칙대로 성실히 청소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그가 지켜내는 자존의 방식은 존엄과 품위란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반면, 스마트폰과 스포티파이 대신에 손때 묻은 낡은 카메라와 카세트 테이프를 고집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든 매일 가는 식당 주인이든 인사 외엔 거의 말을 섞지 않는 그의 배타성은 한때 그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을지, 그로 인해 얼마나 크게 방전되었을지를 역으로 말해주는 듯해 아프다. 그가 고집하는 아날로그 방식은 오히려 우리네 삶이란 게 이제 아름다움을 지켜내기란 얼마나 요원해졌는지를 역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스마트폰과 스포티파이를 사용하고 직장 동료들과 거나하게 취하기도 하는 일상으로는 아름다움을 지키긴 어려운 걸까.


나라면, 내가 감독이라면 굳이 2G 폴더폰과 카세트 테이프 대신에 스마트폰과 스포티파이를 선택했을 듯하다. SNS를 하지 않거나, 스포티파이나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따르지 않는 등의 단지 '다른' 방식을 통해 굳이 시대 흐름을 배척하지 않고도 충분히 일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다. 외면은 유약함의 다른 얼굴이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의 강인함에서 기인하기에 시대 흐름을 외면하도록 연출된 그의 얼굴이 카세트 테이프 앞에서만큼은 아름답기보다는 슬프다. 또한 나라면, 굳이 도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중화장실 대신 집앞 공원의 공중화장실을 선택했을 것 같다.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건축한 그 화장실들은 일본인으로서 자랑스럽기 그지없긴 했을 테지만 영화가 추구하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반감시킨다.


완벽한 나날들. 그건 행복과 동의어가 아니다. 행복은 순간이고 일상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아침 창가에 일렁이는 풍경으로 미소를 짓거나, 뷰파인더를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그저 바람에 반짝이는 나뭇잎과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그는 분명 행복할 것이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평화롭게 반복되는 그의 하루하루가 그에겐 분명 완벽한 나날들일 테지만, 그 날들이 완벽한 건 행복해서가 결코 아니다. 오랜 시간 연락을 끊고 지냈던 여동생과 조카와의 짧은 조우 끝에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내내 말없이 무심했던 그는 뜻밖에도 흐느낀다. 그저 단골일 뿐이었던 주점의 여주인이 낯선 남자와 포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도망치듯 자전거 페달을 밟아 향했던 작은 상점에서 그가 사들고 나온 건 뜻밖에도 오래전에 끊었던 담배였다. 어설프게 담배를 피우다 기침을 참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읽힌다. 담담하고 초연해 보였던 그에게 깃든 외로움이 차라리 장엄하다.


생뚱맞은 순간에 주점 여주인의 전 남편과 남자가 한밤 강가에서 벌이는 그림자 밟기 놀이는 삶의 축소판 같다. 실체가 아닌 한낱 어둠을 쫓아 부질없이 힘을 빼는. 그러고도 그저 뛰었음으로 즐거워지고 막역해지는 인간사.


클로징 씬으로 클로즈업된 남자의 표정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모든 걸 대변한다. 슬픔과 회한, 낙관과 비관, 충족과 수긍이 뒤엉킨 그의 일그러진 표정은 혼자 있을 때의 우리네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에 민망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일상을 밀어올리는 가장 밑바닥의 얼굴이다.


결핍이 없다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을까. 가지런한 그의 일상에 무딘 칼날로 오랜 시간 깊숙히 베인 듯한 고독의 상흔들이야말로 그를 그토록 아름답게 만들고 일상을 완벽하게 했음을 깨닫는다. 날마다 행복한 삶이 아니라서 오히려 완벽한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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