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의 연인

1881년 / 방곤 옮김

by 글섬

작품 배경


〈폴의 연인(La Femme de Paul)〉은 〈봄(Au printemps)〉처럼, 1881년 단편집 〈텔리에 집(La Maison Tellier)〉에 수록되면서 처음 발표되었다.



노 젓는 남자들의 아지트인 그리용(Grillon) 식당 문 앞이 외침과 부르는 소리들로 소란스러웠다. 운동복을 입은 키 크고 건장한 남자들이 어깨에 노를 멘 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밝은 봄 화장을 한 여자들이 드레스 자락을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배에 올라탔다.


배들이 한 척씩 부교를 떠났다. 연인 한 쌍만 남았다. 모두가 폴 씨(Monsieur Paul)라고 부르는 폴 바롱(Paul Baron)은 그의 애인 마들렌(Madeleine)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폴 씨는 몸매가 날씬하고 얼굴이 창백한 젊은 남자였고, 그의 애인은 키가 작고 야윈 갈색 머리 여자였다.


폴 씨는 손님들 중에서 가장 사랑받고 존중받는 손님이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후하게 돈을 지불했고, 상원 의원인 아버지 덕분에 일종의 살아 있는 광고가 되어 주었다.


폴 바롱과 마들렌은 배가 준비되자 배에 올라탔고, 배에 오르자마자 서로에게 입을 맞추었다. 폴 씨의 배는 라그르누예를(la Grenouillère)를 향해 출발했다. 이윽고 배가 강기슭에 이르자 폴 씨는 배를 비끄러매고, 먼저 내린 뒤 애인을 안아 올렸다. 두 사람은 수상 카페의 난간을 올라 탁자 끝에 마주 앉았다.


강의 다른 쪽 기슭 예인로 위에는 삯마차들과 고급 자동차들이 길게 열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배들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이 배에서 저 배로 웃음소리, 부르는 소리, 불러 세우는 소리, 언쟁하는 소리가 오갔다.


7월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가운데 대기에는 열정적인 즐거움이 가득했다. 라그르누예르 주변의 커다란 나무들 밑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고 있었다. 섬은 라그르누예르에서 폭이 좁아졌고, 다른 쪽 기슭에서는 바닥이 평평한 도선 한 척이 사람들을 끝없이 실어 왔다.


수상 카페 안에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반쯤 취해 고함을 치느라 떠들썩했다. 그들 중 하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고군분투했고, 네 쌍의 남녀가 카드리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파리 사교계의 온갖 부도덕과 부패의 냄새가 났다. 양품점 점원, 하급 저널리스트, 수상쩍은 증권 거래자, 늙고 부패한 도락가, 교활한 상인, 여자를 소개해주는 뚜쟁이 등이 뒤섞여 상스러움과 저급한 우아함이 역한 냄새를 풍겼다.


그곳이 라그르누예르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했다. 몇몇 젊은이들은 매년 거기에 와서 사는 법을 배웠고, 몇몇 순박한 사람들은 거기서 길을 잃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지붕 달린 뗏목 옆에서 몸매가 탐스러운 여자들은 벌거벗고 미역을 감았다. 남자들은 헤엄을 치다 다이빙을 해댔다. 독주 냄새가 사람들의 체취와 강렬한 향수 냄새와 섞였다.


강 위에는 배들이 끊임없이 왕복하는 가운데, 여자 네 명이 탄 천막 덮인 배 한 척이 물결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노를 젓는 여자는 키가 작고 야위었고, 그녀의 맞은 편에는 뚱뚱한 체격의 연한 금발 머리 여자가 벤치 위에 누워 있었다. 배이 끄트머리에는 갈색 머리 아가씨와 금발의 키 크고 날씬한 아가씨가 서로의 허리를 붙잡고 서 있었다. 그녀들을 발견한 라그르누예르에서 격분한 함성이 일었다. 노 젓는 여자는 환호를 받으며 평온하게 배를 멈추었다. 뒤쪽의 아름다운 두 아가씨는 군중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함성 소리가 더욱 커지며 남자들도 여자들도 다 함께 “레스보스!”를 외쳤다.


폴 씨는 본능적인 격분이 일며 분노로 입술을 떨면서 저런 여자들은 목에 돌멩이를 달아 물속에 빠뜨려야 한다고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애인 마들렌이 갑자기 화를 내며, 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들한테 괜한 성질부리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폴 씨는 저 여자들이 마들렌에게 말도 시키지 못하도록 경찰을 개입시켜 내쫓아버릴 거라고 단언했다. 그러자 마들렌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기는 폴의 아내가 아니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고 일축했다. 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입에 경련이 일고 호흡이 빨라지며 서로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수상 카페의 다른 쪽 끝으로 문제의 여자 네 명이 걸어 들어왔다. 앞의 두 여자는 남자 옷을 입고 있었다. 노 젓는 남자들이 와서 그녀들과 악수했다. 그녀들은 물가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 네 채를 전부 빌려 두 쌍의 부부처럼 지내고 있었다. 이웃 남자 하나가 그녀들을 헌병대에 고발했고, 헌병 대장이 조사하러 왔지만, 그 여자들이 매춘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난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수상쩍은 범법 행위를 적발하지 못한 헌병대 대장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무죄로 결론지어졌다.


그녀들은 여왕처럼 라그르누예르를 통과했다. 자신들의 유명세를 자랑스러워했고, 군중의 시선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그녀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마들렌의 눈 속에 불길이 일었다. 뚱뚱한 여자가 마들렌을 불렀고, 폴이 마들렌의 손목을 꽉 쥐었지만, 마들렌은 폴을 떨치고 그녀들에게 갔다. 그녀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다를 떨었고, 이따금 빈정거리는 것 같은 미소를 띠고 폴에게 시선을 보냈다.


마침내 폴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마들렌의 어깨를 움켜쥐더니 이런 매춘부들과 이야기하도록 가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뚱뚱한 여자 폴린(Pauline)이 걸쭉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구경거리가 생겨 신이 난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폴은 폴린의 치욕스러운 욕설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그는 뒤로 돌아서서는, 여자들을 등진 채 강물 쪽으로 난간에 팔꿈치를 괴었다. 그리고 한쪽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신경질적인 몸짓으로 재빠르게 닦았다.


폴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마들렌에게 몹시도 끌렸다. 진창에 빠지듯 사랑에 빠졌다. 감수성 넘치고 섬세한 그는 감미롭고 열정적이며 이상적인 관계를 꿈꾸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모든 여자들처럼 바보 같고 예쁘지도 않고 성질 사나운 여자에게 매혹되어 버린 것이다. 그 어떤 것도 그녀의 치명적이고 절대적인 매력을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의 등 뒤로 흐르는 파렴치한 웃음소리가 그의 심장 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눈길이 고정된 맞은편의 제방에 어부 한 명이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어부가 낚아 올린 작은 물고기의 피 흐르는 목구멍에서 빠져나온 내장이 보이자 폴은 마치 자신의 심장이 찢긴 듯 전율했다. 마치 마들렌이 쥐고 있는 낚싯줄에 걸려 가슴속 모든 것이 뿌리째 뽑혀 나올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는 소스라쳐 뒤를 돌아보았다. 마들렌이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녀도 난간 위에 팔을 괸 채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지금 그의 곁에 다시 와 있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다. 그는 그녀가 그를 떠나지만 않는다면 모든 것을 허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분 뒤 그들은 다시 배에 올랐고, 그들은 다시 입맞춤을 했다. 폴은 너무나 감동해 눈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그리용 식당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막 6시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배를 놓아두고 초원을 통과해 브종 쪽으로 걸어갔다. 기울어 가는 햇살이 층을 이뤄 펼쳐지며 대기에 가벼운 행복감과 부드러운 우울감이 배어들었다. 저녁의 이 고요한 찬란함과 생기가 가져다주는 신비로운 전율이 마음을 파고드는 우수 어린 서정과 만나 꽃처럼 피어나는 것 같았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느꼈지만,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지루한 나머지 노래를 불렀고, 그녀의 날카로운 노랫소리가 깊고 차분한 저녁의 조화로움을 찢어 놓았다.


그는 그들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심연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의 머릿속은 텅 비어 노래만 가득했다. 그녀는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아주 먼 존재였다.


이윽고 그녀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고 미소 지었다. 그러자 그는 뼛속까지 흔들렸고, 다시금 커진 사랑으로 그녀를 열정적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희열에 사로잡혀 그녀의 뺨과 관자놀이와 목에 입을 맞추었다. 그들은 기우는 햇살에 헐떡거리며 수풀 위로 쓰러졌고 결합했지만, 그녀는 그의 흥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손을 맞잡고 나무들을 지나 돌아왔다. 강물 위에 떠 있는 배 한 척에서 폴린이 손으로 마들렌에게 입맞춤을 보내더니 오늘밤에 보자고 외쳤다. 그러자 마들렌도 그러자고 답했다. 폴은 갑자기 마음이 얼어붙었다.


폴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들렌의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오늘은 무척 피곤하니 일찍 잠자리에 들자고 청했다. 하지만 그녀는 야릇한 눈빛을 빛내며 잠시 생각하더니 오늘밤에 라그르누예르의 무도회에 가기로 약속했으니 먼저 자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폴은 무도회에 가지 말고 자기 곁에 있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마들렌은 요지부동이었다. 폴은 고통스러웠다.


하는 수 없이 폴은 마들렌과 함께 무도회를 향하는 배에 올랐다. 배가 강의 굽이진 곳을 돌자 라그르누예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티가 열리는 카페에는 색색의 등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변두리 카바레 음악이 연주되어 있었다.


무도회 참석자들은 세련된 사람들이었다. 폴린과 그녀의 여자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폴은 안도했다. 사람들이 춤을 추었다. 여자들은 엉덩이와 가슴을 흔들며 치마 속이 훤히 드러나도록 펄쩍펄쩍 뛰었고, 남자들은 음란한 몸짓을 하며 몸을 비틀거나 옆으로 돌았다.


맞은편 산이 불이라도 난 것처럼 강렬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폴은 잠시 마들렌을 잊고 해가 이울고 달이 떠오르는 광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윽고 달이 수평선에서 떨어져 나와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폴이 달을 등지고 마들렌 쪽으로 돌아섰을 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불안해진 폴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으며 애타게 마들렌을 찾아다녔다. 그녀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웨이터 하나가 폴에게 마들렌이 방금 전에 폴린과 함께 떠났다고 말해주었다. 폴은 미친 사람처럼 섬으로 뛰어내려 두터운 잡목림을 뒤졌다. 치밀어 오르는 흐느낌을 틀어막고 달리던 그는 덤불 뒤에서 입맞춤 소리를 들었다. 그는 거기로 달려갔다. 그러자 입맞춤을 하던 두 사람의 윤곽이 재빨리 서로 떨어졌다. 그는 두려워서 감히 그녀를 부르지도 못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무도회장 쪽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무도회장에 없었다. 폴린을 제외한 세 여자가 눈에 띄었다. 세 여자가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리며 재미있어 했다. 폴은 다시 섬으로 가서 잡목림을 통과해 마구 달렸다. 그리고는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 쪽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폴은 달아나고 싶었다. 결코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그 맹렬한 열정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쳐 다시는 그녀를 보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아침에 그녀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와락 안기는 모습이, 그 아침의 강렬한 애무의 추억이 열렬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폴은 이야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나뭇가지 밑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사랑을 나눌 때 내는 신음 소리였다. 폴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보고야 말았다. 차라리 그녀의 상대가 남자라면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폴은 반인륜적이고 흉악한 범죄라도 목격한 것처럼 충격을 받고 기진맥진한 채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까 본 내장 뽑힌 작은 물고기가 떠올랐다. 그 순간 마들렌이 자신을 부를 때와 똑같이 열정적인 어조로 폴린을 불렀고, 폴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온 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무에 부딪히고 넘어지며 미친 듯이 달리던 폴은 갑자기 달빛이 비치는 강물 앞에 다다랐다. 급류가 만들어내는 큰 소용돌이가 달빛에 드러났다. 폴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모든 게 끝장난 것만 같았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갑자기 그가 섬 쪽으로, 마들렌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마들렌을 불렀다. 그의 애절한 외침 소리가 지평선을 뚫고 퍼져 나갔다.


그러더니 폴은 강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두 여자는 그 소리를 들었다. 마들렌은 폴이 물에 빠졌다는 걸 알아채고 강기슭으로 달려갔다. 폴린도 뒤따라 달려갔다. 그녀들이 강기슭에 도착했을 때, 남자 두 명이 탄 도선 한 척이 강물 위를 맴돌며 시신을 수색하고 있었다.


수색에는 시간이 걸렸다. 마들렌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기다렸다. 이윽고 시신이 수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남자는 힘을 합쳐 시신을 배 위로 끌어 올렸다.


잠시 후, 그들의 배가 뭍에 다다랐다. 시신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무시무시했다. 얼굴은 부풀어 올랐고, 진흙 때문에 머리카락이 엉켜 있는 얼굴에 더러운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두 남자 중 한 사람이 시신을 알아보았다. 상원 의원의 아들 폴 바롱 씨였다. 마들렌이 바닥에 쓰러져 흐느꼈다. 폴린은 마들렌을 두 팔로 꼭 껴안고 오랫동안 입을 맞추며 위로했다. “어쩌겠어요. 이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우린 남자들의 어리석은 짓을 막을 수 없어요. 그가 원했던 일이에요.” 그러고는 마들렌을 일으켜 세우더니 오늘밤엔 그리용 여인숙으로 돌아가지 말고 자신과 함께 가자고 권했다.


마들렌은 여전히 울면서 몸을 일으켰지만 흐느낌이 한결 잦아들었다. 그녀는 더 친근하고 확실하고 익숙하고 신뢰감 가는 애정 속으로 피신하려는 듯 폴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는 그곳을 떠났다.



▶ 발췌 문헌 : 〈기 드 모파상〉, 모파상 저, 방곤 역, 현대문학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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