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 글섬 옮김
〈맹인(L'Aveugle)〉은 1882년 3월 31일자 《르 골루아(Le Gaulois)》 지에 처음 발표된 소설로, 1899년에 <《렌도르프(Ollendorff)》에서 출간된 모파상 사후 단편집 〈밀롱 영감(Le Père Milon)〉에 수록되었다.
아침에 새로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차오르는 이 기쁨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지로 쏟아지는 이 햇빛이 우리를 이토록 살아 있는 행복으로 가득 채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은 온통 파랗고, 들판은 온통 초록이고, 주택은 온통 하얗다. 황홀한 우리의 시선은 우리의 영혼을 환희로 채우는 이 생생한 빛깔들을 마신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으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애정이 충만해져 춤을 추고 싶고, 달리고 싶고, 노래하고 싶어진다. 가슴 가득 태양을 껴안고 싶어진다.
그러나 맹인들은 이 새로운 환희 속에서도 그들만의 영원한 어둠 속에서 무감동 상태로 평소처럼 차분할 따름이다. 이 환희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은 햇살의 환희 속에서 동요하려는 안내견을 계속 진정시킨다.
그들이 어린 동생과 팔짱을 끼고 황혼녘에 집으로 돌아갈 때 동생이 “황혼이 너무 아름다워!”라고 말하면, 그들은 “알지, 알지. 무척 아름답겠지. 룰루(Loulou)가 가만히 못 있고 계속 움직이니 말이야”라고 대답한다.
나는 맹인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의 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고통들 중 하나였다. 그는 노르망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살아 있는 내내 아들을 보살폈다.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는 그저 자신의 끔찍한 장애로 인해서만 고통 받았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자 존재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잔혹한 고통이 되기 시작했다. 누이동생이 그를 돌봐주었는데, 농장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남의 빵을 먹는 거지로 취급했다. 끼니때마다 사람들은 그가 먹는 게 아깝다고, 그가 게으르고 막돼먹었다고 비난했다. 매부가 그의 상속분을 전부 차지해버리고는 그에겐 죽지 않을 만큼의 수프만 주었다.
그는 얼굴이 해쓱했고 커다란 두 눈은 창백했다.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는 마치 모욕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냉정함을 유지했다. 게다가 그는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었기에 그 어떤 애정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대할 때 늘 애정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약간 거칠게 대했었다. 밭에서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쓸모없는 존재로 여겼던 농부들은 그를 존재할 필요가 없는 유해한 사람처럼 대했다. 수프를 먹고 나면 그는 여름엔 문 앞에 앉아, 겨울엔 벽난로 옆에 앉아 저녁때가 다 되도록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일종의 신경성으로 인해 가끔씩 눈꺼풀만 떨릴 뿐이었다. 그에게도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생각이 있었을까?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몇 해 동안 이런 날들이 흘러갔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의 무력 상태는 결국 동생 내외를 화나게 했고, 그는 그들 둘러싼 잔혹한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어 학대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먹을거리를 주는 대신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잔인한 장난으로 그를 괴롭히며 즐거워했다. 집집마다 오락거리 삼아 그를 불러들였다. 어떤 집에서는 식탁 위에 그의 접시 앞에다 개나 고양이를 놓아두었다. 그가 국물을 먹기 시작하면 개나 고양이가 본능적으로 그의 허약함과 장애를 감지하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소리 없이 그의 국물을 핥아 먹었다. 그러다 동물의 혓바닥소리 때문에 그가 뭔가를 감지하면 혹시라도 다른 사람과 숟가락이 부딪힐까 봐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그러면 그를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 그는 아무 말 없이 왼손으로 접시를 막은 채 오른손으로 다시 먹기 시작했다.
또 어떤 집에서는 뚜껑이나 나무, 잎사귀처럼 그가 구별하지 못하는 쓰레기들을 내놓아 씹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장난질마저 이내 지겨워졌다. 그를 건사하는 게 짜증스럽고 지긋지긋했던 매부는 그를 끝없이 구타했다. 그러자 새로운 양상이 벌어졌다. 하인들까지 가세해 틈만 나면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는 어디 몸을 숨길만한 데도 알지 못했기에 누구든 다가오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두 팔을 벌려 버둥대야 했다.
마침내 동생 내외는 그에게 구걸을 강요했다. 장날이면 그를 길바닥에 데려다놓았고, 그는 마차 굴러가는 소리나 발소리가 들리면 더듬더듬 “한 푼 줍쇼”라고 말하며 모자를 내밀었다. 그러나 농부들은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기에 몇 주가 지나도록 그는 한 푼도 얻지 못했다. 이는 그에 대한 냉혹하고 무자비한 증오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 대지가 온통 눈으로 덮이고 지독하게 추운 어느 날 아침 그의 매부는 그를 상당히 먼 대로까지 끌고 가 동냥하게 했다. 그리고 온종일 그를 버려둔 채 밤이 내리자 사람들에게 그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걱정할 거 없다고, 날이 이렇게 차니 누군가 그를 데려갔나 보다고, 길을 잃을 리는 없으니 수프를 먹으러 곧 돌아올 거라고 덧붙였다.
다음날에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길 위에서 추위에 떨던 그는 얼어 죽을 것 같아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에 파묻힌 길을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기에 그는 여러 차례 도랑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묵묵히 집을 찾아 방황했다. 그러나 눈으로 인해 사지가 점점 마비되어 갔고, 허약한 그의 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그는 들판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는 하얀 눈 조각들이 그를 파묻었다. 뻣뻣하게 굳은 그의 몸은 끝없이 내리는 눈 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시체가 어디쯤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의 동생 내외는 8일 동안 그를 찾는 척했다. 심지어 그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그 겨울은 혹독했고, 눈은 쉽게 녹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미사를 가던 농부들이 들판 위에서 같은 지점을 검은 비처럼 덮으며 끝없이 선회하는 거대한 까마귀 떼를 발견했다. 그 다음 주에도 까마귀 떼는 여전히 같은 지점을 맴돌며 반짝이는 눈 더미를 고집스럽게 파헤치며 큰소리로 울어댔다. 한 남자가 까마귀 떼가 떠나지 않는 그 지점을 확인하러 가보았고, 이미 갈기갈기 찢기고 절반쯤 파 먹힌 맹인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의 창백한 눈은 탐욕스러운 까마귀의 기다란 부리에 찔려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햇살이 가득한 날이면, 살면서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던 나머지 끔찍한 죽음마저 그를 알고 있던 모든 이들에게 안도감이 되었던 이 거지에 대한 슬픈 기억과 우울한 생각을 하지 않고는 햇살의 생생한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 〈L'Aveugle〉 원문 번역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