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1882년 / 글섬 옮김

by 글섬

작품 배경


〈어린아이(L'Enfant)〉는 1882년 7월 24일자 《르 골루아(Le Gaulois)》 지에 처음 발표된 소설로, 이듬해에 출판된 단편집 〈달빛(Clair de lune)〉에 수록되었다.

모파상은 1883년에도 같은 제목의 내용이 다른 소설을 발표했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오랫동안 맹세해온 자크 부르딜레르(Jacques Bourdillère)는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다. 어느 여름날, 해변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였다.


그 여름, 어느 날 아침에 자크는 한가롭게 모래에 누워 여자들이 해수욕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수욕을 하다 물에서 나오던 여인들 중 한 여인이 그를 순식간에 매혹시켰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운 뺨과 입술에서 발산되는 젊은 여인의 신선하고 온화한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는 멀리서 베르트 라니(Berthe Lannis)가 금빛 모래사장을 걸어오는 모습에 머리끝까지 전율했다. 막상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귀가 윙윙거리며 정신이 혼미해져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게 사랑인 걸까?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자크의 평판이 좋지 못했기에 베르트의 부모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에게는 아주 오래된, 결코 인연을 끊어낼 수 없는 정부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껏 여성 편력이 심했다.


그러자 자크는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여자를 만나보지도 않고 정리해 버리기로 결심했다. 한 친구가 그 여자의 연금 문제를 안전하게 처리해주었다. 자크는 여자의 연금은 지불해주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기에 이후로는 그녀의 이름조차 아예 모르는 척했다. 그 여자는 그에게 편지를 썼지만, 그는 편지를 열어보지도 않았다. 매주 더 큰 분노가 편지에 담겨 날아왔지만, 매주 그는 단 한 줄도 읽어보지 않았기에 편지에 포함된 비난과 분노를 알지 못한 채로 편지를 봉투째 찢어버리곤 했다.


아무도 그의 인내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겨울 내내 결혼 승낙은 내려지지 않았다. 마침내 봄이 되었을 때에야 베르트의 부모는 결혼을 허락했다.


결혼식은 5월 1일 파리에서 열렸다. 그는 평범한 신혼여행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신혼부부는 피로연과 무도회를 마치고 첫날밤을 가족과 함께 보낸 뒤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이 서로 사랑에 빠졌던 해변으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결혼식 날 밤, 하객들은 커다란 거실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신혼부부는 단둘이서 작은 일본식 내실로 물러났다. 그날 밤, 그곳은 평소와 달리 조명이 은은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봄 내음이 가득 들어차 실내는 따뜻하고 고요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씩 맞잡고 있던 서로의 손을 세게 때리며 서로를 향해 웃을 뿐이었다. 신부는 삶의 커다란 변화와 기쁨으로 기절할 지경이었고, 뭔지는 모르지만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믿었다. 그녀의 온 몸과 온 영혼에 야릇하고 감미로운 무기력감이 밀려들며 나른해졌다.


자크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집스럽게 그녀를 응시했다. 그는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뭐라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해 자신의 모든 격정을 온통 그녀와 맞잡은 손에다 쏟아 부었다. 가끔씩 그저 “베트르!”라고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게 다였다. 그러면 베르트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고, 몇 초 동안 그를 응시하다가, 타는 듯한 그의 시선에 매료되어 이내 시선을 떨구었다. 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옆문이 열리더니 하인이 방금 도착한 편지들이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 순간, 자크는 갑자기 모호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갑작스런 불행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는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뭔지 모르지만 절대로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봉투를 열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주머니에 넣어버리지도 못한 채 그저, 내일이면 해변에 가 있을 테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만 스스로 되뇌었다. 하지만, 그 봉투의 모퉁이에 커다란 글씨로 쓰인 ‘긴급’이라는 글자가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신부에게 양해를 구한 뒤 봉투를 열었다. 편지를 읽어 내리던 그의 얼굴이 극도로 창백해졌다.


그가 편지에서 눈을 떼고 머리를 들었을 때는 얼굴 전체가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베르트에게 가장 친한 친구에게 큰 불행이 닥쳤는데 생사가 달린 문제라서 지금 당장 친구에게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20분 정도면 될 거라고, 금방 돌아오겠다고 더듬더듬 말했다. 베르트는 공포가 서린 그의 표정을 보고 차마 무슨 일이냐고 물을 수 없었고, 어서 가시라고만 말했다. 자크가 사라지고, 베르트는 혼자 남아 내실과 연해 있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무도회의 춤추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자크는 모자를 쓰고 황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거리로 나가는 순간, 그는 잠시 멈춰 서서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의 정부였던 라베(Ravet)의 담당 의사가 보낸 편지였다. 라베가 자크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갓난아기를 출산했는데 산모가 위독해 죽어가는 와중에 자크를 간절히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크가 도착했을 때, 라베는 이미 빈사 상태였다. 의사가 그녀를 돌보고 있었고, 바닥에는 피로 가득한 양동이와 이불보들이 널려 있었다. 산모가 누워 있는 침대 뒤로 작은 요람 안에서 갓난아기가 울고 있었다.


라베는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자크를 알아보고는 팔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그럴 힘이 없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자크는 침대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열정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녀는 헐떡거리며 겨우 입을 떼었다. 그녀는 죽어가는 자신을 위해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달라고 간절히 청했다. 자크는 흐느껴 울면서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고, 곁에 있을 테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그녀를 다독였다.


라베는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영혼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며 자크 이외에 어떤 남자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그러니 저 아이는 자크의 아이이니 아이를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고 애원했다. 자크는 밀려드는 후회와 슬픔으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아이는 자기가 키우고 사랑할 거라고, 절대로 아이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은 듯이 입술을 내밀었다. 그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다소 진정된 라베는 자크가 아이를 사랑스럽게 품에 안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크가 요람에 다가가 부드럽게 아기를 안아 올리자 아기는 울음을 멈추었다. 라베는 그대로 있어달라고 요구했다. 자크는 아기를 안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자정이 지나 새벽 두 시가 되자 의사가 돌아갔다. 아기는 잠들었고, 산모도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커튼을 통해 부연 새벽이 밝아올 무렵, 갑자기 라베가 마치 아기를 빼앗아 바닥에 집어 던질 것처럼 격하게 팔을 뻗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목구멍으로 거친 숨이 넘어가더니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숨을 거둔 것이다.


자크는 한때 사랑했던 그녀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새벽 4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들렸다. 자크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그녀의 집을 나섰다.


자크가 나간 뒤 홀로 남겨진 베르트는 작은 일본식 내실에서 고요한 표정으로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실을 지나던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가 혼자 있는 걸 발견하고는 자크의 행방을 물었다. 베르트는 방에 잠깐 갔는데 곧 돌아올 거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자 모두가 자크의 행방을 물었고, 그제야 베르트는 자크가 어떤 편지를 읽고 몹시 창백하고 두려움에 휩싸인 얼굴로 나갔다고 털어놓았다.


이제 모두가 그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자 하객들은 모두 돌아갔고, 가까운 친척들만 남았다. 자정이 되자 신부는 오열하다 못해 실신할 지경이 되어 침대에 눕혀야 했다. 어머니와 두 고모가 베르트의 침대가에 앉아서 그녀를 위로하는 동안 아버지는 경찰서로 달려갔다.


새벽 5시가 되었을 때 복도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가 닫혔다. 그러자 갑자기 고요했던 집안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닮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침대가에 모여 있는 여자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났다. 자크가 품안에 어린아이를 안은 채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네 여자는 그 모습에 경악했다. 베르트는 고통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부질없이 무슨 일이냐고만 반복해서 물었다.


자크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는 더듬더듬 겨우 말을 이어갔다. 그의 아기이고, 아기 엄마는 방금 죽었다고. 그러면서 그는 그의 팔 안에서 울부짖고 있는 갓난아기를 서툰 몸짓으로 내보였다.


베르트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더니 자신의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에게 “아기 엄마는 죽었다고 하셨죠?”라고 물었다. 자크는 방금 전에 죽었다고, 지난여름에 헤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다고, 산모를 돌보던 의사가 편지를 보냈더라고, 더듬더듬 겨우 답했다.


그러자 베르트는 조용히 말했다. “이 아이는 우리가 키워요.”




▶ 〈L'Enfant〉 원문 번역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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