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 네이버 블로그
〈장작(La Bûche)〉은 1882년 1월 26일자 《질 블라스(Gil Blas)》 지에 모프리뇌즈(Maufrigneuse)라는 예명으로 처음 발표된 소설로, 이후 같은 해에 출판된 단편집 〈피피 양(Mademoiselle Fifi)〉에 수록되었다.
작은 응접실 안, 커다란 불길이 작열하고 있는 넓은 벽난로 앞에 남녀 두 사람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는 집주인 할머니였고, 남자는 그녀의 오래된 친구였다. 이미 머리가 하얗게 샌 그녀는 주름 하나 없이 고운 피부의 사랑스러운 할머니였다. 그녀의 피부에는 향수가 배어 있었고, 목욕을 할 때 쓰는 고급 향유가 온몸에 스며들어 기분 좋은 향기를 풍겼다. 평생 노총각으로 지내온 그는 그녀와 매주 얼굴을 보고 지내는 친구였고, 인생이라는 여행의 동반자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중단하고 벽난로 안 불길을 쳐다보며 침묵했다. 할 말이 없을 때는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사이였기에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염화미소의 침묵이었다.
바로 그때, 벽난로 안에서 타오르던 굵은 장작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더니 장작받침쇠 너머로 튕겨져 온통 불똥을 튀기며 응접실 양탄자 위로 굴렀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 사이, 남자는 장화발로 거대한 숯 덩어리를 벽난로 안으로 차 넣었고, 주변에 흩뿌려진 뜨거운 파편들을 장화 밑창으로 긁어모았다. 응접실엔 탄내가 진동했다. 남자는 친구 정면에 다시 앉으면서 미소를 띠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방금 전 발로 차 넣은 장작을 가리키며, 바로 이래서 자신이 결혼하지 않았던 거라고 말했다. 놀라고 의아한 그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러자 그는 꽤 오래 전 이야기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 쥘리앙(Julien)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과 함께 살았다. 그들은 항상 함께 있었고, 두 사람의 우정이 너무나 강해 아무도 그들의 우정을 끊어놓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쥘리앙이 그에게 자신의 결혼 소식을 전했다. 그는 마치 쥘리앙이 자신을 배반한 것 같은 상처를 받았다. 그는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도 결혼하면 그대로 끝난 거라고 생각했다. 여인의 질투 섞인 애정과 거침없는 육체적인 애정은 두 남자 사이에 존재하는 정신과 마음,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애착을 전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녀는 서로 종족이 달라서 서로 다른 영혼과 정신을 고수하고 있다. 항상 지배자와 피지배자, 주인과 노예가 존재해야 한다. 남녀는 절대로 평등한 존재가 아니다. 남녀는 열정으로 서로의 손을 잡지만, 결코 신의를 담아 대담하고 힘차게 악수하는 법이 없다. 현명한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노년에 위안을 얻기 위해 아이들을 낳아 믿음직스럽고 좋은 친구를 찾으려 하고,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공통된 생각을 나누며 친구로서 늙어가려 한다.
마침내 쥘리앙은 결혼을 했다. 그의 아내는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쾌활한 그녀는 쥘리앙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 같아 보였다. 처음에 그는 부부 사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쥘리앙 부부의 집에 거의 가질 않았다. 그러나 부부는 끝없이 그를 불러 들였다. 그는 자주 부부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렇게 차츰 그는 그들과의 공동생활이 주는 부드러운 매력에 빠져들었고, 밤에 혼자 집으로 돌아오면 빈 집이 쓸쓸하게 여겨져 자신도 결혼을 고려하게 되었다. 쥘리앙 부부는 서로 애지중지하며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쥘리앙이 일 때문에 나가야 하는데 11시 전에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며 그 동안 아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쥘리앙의 아내가 자기가 그를 부르자고 남편을 졸랐다며 미소 지었다. 이윽고 8시가 되자 쥘리앙이 집을 나섰다.
하지만 막상 쥘리앙이 사라지자 그는 쥘리앙의 아내에게서 기묘한 거북함을 느꼈다. 지금껏 친밀하게 지내왔지만 단둘이 있었던 적은 없었기에 그는 여간 당황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침묵을 채워줄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한참동안 늘어놓았고, 그녀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윽고 진부한 이야깃거리도 말라버렸고, 그는 이제 할 말이 없었다. 한동안 고통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그녀가 벽난로에 장작을 좀 넣어달라고 청했고, 그는 장작을 넣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쯤 지나자 장작이 활활 타올라 벽난로 주변이 열기로 가득해졌다. 그러자 그녀는 너무 덥다며 소파 위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소파에 나란히 앉자 갑자기 그녀가 그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만약 어떤 여자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는 몹시 당황해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답하고는, “어떤 여자냐에 따라 다르겠죠.”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녀는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일종의 거짓 웃음 같았다. 그러더니 그에게 사랑에 빠진 적은 있냐고 물었다. 그가 그렇다고 답하자 그녀는 그 얘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그의 연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그녀는 갑자기,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평온하고 쉽고 위기가 없고 합법적인 건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고 신경을 비틀고 번민하게 해야 하는, 위험하고 끔찍하고 거의 범죄나 신성모독에 가까워야 하는 거라고 단언했다. 그는 정숙한 듯 보였던 이 여자의 머릿속에 충격을 받았다.
말을 마친 그녀는 갑자기 그의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러더니, 완전히 그의 가슴에 몸을 밀착시키며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물었고, 그가 미처 답을 생각해내기도 전에 갑자기 그녀는 그의 목을 팔로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 그는 아연실색했다. 분명 너무도 육감적이긴 했지만, 쥘리앙을 속이는 일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를 배반하고, 벌써부터 남편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이 타락하고 교활한 여자의 정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의 부정한 생각에 미쳐 불타오르듯 대담해져 있었고, 몸을 바칠 준비가 된 여자의 진한 입맞춤은 떨쳐내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아마도 그 순간이 일 분만 더 지속됐다면 그대로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바로 그때, 벽난로 안에서 활활 타오르던 장작이 응접실 안으로 튕겨 나와 순식간에 양탄자에 불을 내고 소파 아래로 옮겨 붙었다. 그가 미친 듯이 달려들어 장작더미를 벽난로 안으로 도로 밀어 넣으려 쩔쩔매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쥘리앙이 돌아왔다. 예정보다 일이 두 시간 일찍 끝났다며 아주 즐거운 얼굴이었다. 만약 갑자기 튕겨 나온 장작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불륜의 현장을 들켰을 것이다.
그날 이후 쥘리앙이 그에게 냉담해졌다. 틀림없이 쥘리앙의 아내가 그들의 우정을 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래서 쥘리앙은 점차 그를 초대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엔 완전히 멀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는 결코 결혼하지 않았다.
▶ 발췌 사이트 : 네이버 블로그(https://lavendetta.blog.me/110179700849)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