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 최내경 옮김
〈몽생미셸의 전설(La Légende du Mont-Saint-Michel)〉은 1882년 12월 19일자 《질 블라스(Gil Blas)》 지에 모프리뇌즈(Maufrigneuse)라는 예명으로 처음 발표된 소설로, 1884년에 출판된 단편집 〈달빛(Clair de lune)〉에 수록되었다.
바다에 세워진 그 요정의 성을 처음 본 것은 캉칼(Cancale)에서였다. 어슴푸레 나타난 성은 안개 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잿빛 그림자였다.
그 성을 다시 본 것은 석양 무렵의 아브랑쉬(Avranches)에서였다. 광활하게 펼쳐진 모래밭도, 지평선도 모두 붉은색이었으며, 터무니없이 큰 만(灣)도 모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직 깎아지른 듯 가파르게 솟은 수도원만이 환상적인 대저택처럼 육지에서 멀리 저 너머로 물러난 채, 꿈의 궁전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는 해의 진홍빛 속에 검은 윤곽으로 남아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새벽부터 백사장을 가로질러 그곳을 향해 갔다. 가까이 갈수록 감탄은 커져만 갔다. 세상의 그 무엇도 그보다 놀랍고 완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신의 거처라도 발견한 듯 놀란 마음으로, 가볍거나 육중한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방들과 빛이 통과해 들어오는 복도를 헤매고 다녔다. 경이에 찬 눈길은 하늘로 쏘아올린 불꽃 형상의 그 작은 종루들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착잡하게 얽힌 망루, 이무깃돌, 날씬하고 매혹적인 장식물을 더듬었다. 돌로 만들어낸 불꽃놀이, 아니면 화강암으로 짜놓은 레이스라고나 할까. 거대하고도 섬세한 걸작 건축물이었다.
그렇게 황홀경에 빠져 있을 때 바스노르망디(Basse-Normandie) 출신의 한 농부가 내게 다가오더니 성 미카엘이 악마와 싸운 큰 싸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어느 천재적인 회의주의자가 말했던, ‘신은 자기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 역시 자기 모습을 신에게 되돌려주었다’는 말에는 영원한 진리가 담겨 있다. 각 대륙의 여러 민족이 섬기는 신이 서로 다른 얼굴이니 말이다. 흑인은 인육을 즐기는 잔인한 우상을 숭배하고, 일부다처제의 회교도는 여성들로 가득한 낙원을 꿈꾸었으며, 그리스인은 실질적인 민족답게 인간의 모든 정염을 신격화했다.
프랑스에서는 마을마다 지역 주민의 이미지에 맞게 변형된 수호성인을 모시고 있다. 바스노르망디 지방의 보호자는 성 미카엘(Michel)이다. 빛나는 승리의 천사, 칼을 차고 사탄을 물리친 하늘의 영웅 미카엘.
그러나 약삭빠르고 교활하며 음험하고 억지를 잘 쓰는 바스노르망디 사람은 천사장과 악마의 싸움을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성 미카엘은 이웃에 사는 악마의 심술을 피하기 위해 대양 한복판에 대천사에 걸맞는 집을 직접 지었다. 사실, 그런 성자만이 그 같은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악마의 접근을 두려워한 그는 영지 주위를 바닷물보다 위험한 유사(流砂)로 둘러쌌다.
악마는 해안가에 있는 허름한 초가집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짠물에 젖은 초원과 막대한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기름진 땅, 고장에서 가장 비옥한 계곡과 풍요로운 포도밭을 소유했다. 반면, 성자는 모래사장만 다스릴 뿐이었다. 그래서 사탄은 부유했고, 성 미카엘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몇 년 동안 굶주린 끝에 성자는 그런 상황에 진절머리가 나서 악마와 타협하기로 했다. 그러나 성자의 시도에도 사탄이 자기 수확물에 집착했기에 좀처럼 타협이 되지 않았다.
여섯 달 동안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성자는 어느 날 아침 육지로 향했다. 악마는 문 앞에서 수프를 먹고 있었다. 성자를 발견한 그는 황급히 뛰어나와 소맷자락에 입을 맞춘 다음, 집 안으로 인도해 마실 것을 권했다. 우유 한 잔을 마신 뒤 성 미카엘은 악마에게 악마의 땅을 모두 자신에게 양도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면 땅을 관리하는 일과 밭을 가는 일, 씨뿌리기와 비료 주기 같은 모든 일을 자신이 하고, 수확물은 악마와 반씩 나누겠다는 제안이었다. 천성적으로 게으른 악마는 성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악마는 성 주위에서 잡히는 맛있는 생선 몇 마리도 추가로 요구했고, 성자는 생선도 주기로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성자는 악마에게 땅 위의 수확물을 원하는지, 땅 밑의 수확물을 원하는지 선택하라고 제시했다. 악마는 땅 위의 수확물을 갖겠다고 대답했다.
이로써 협상이 타결되었고, 성자는 돌아갔다.
6개월 뒤, 악마의 거대한 영토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홍당무, 순무, 양파, 선모 등 모두 뿌리에는 맛있고 두툼한 열매가 열리지만, 잎은 쓸모가 없어서 기껏해야 가축의 사료로 이용되는 채소들뿐이었다. 악마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성 미카엘에게 계약 파기를 통고했다. 그러나 농사일을 좋아하게 된 성자는 다시 악마를 찾아가, 악마가 입은 손해를 보상하기 위해 올해는 땅 밑의 수확물을 악마가 가지라고 제안했다. 악마는 성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듬해 봄, 악마의 소유지 전체가 두툼한 밀, 커다란 귀리, 아마, 현란한 유채, 붉은 클로버, 완두콩, 양배추, 아티초크 같이 땅 위에 종자나 열매가 맺히는 식물로 뒤덮였다. 악마는 또다시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단단히 화가 났다. 악마는 성자와의 계약을 파기해 자신의 목장과 경작지를 되찾았고, 더 이상 그 어떤 제의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꼬박 1년이 지났다. 성 미카엘은 외딴 성에 서서 저 멀리 펼쳐진 풍요로운 대지를 굽어보았다. 악마가 일꾼들을 지휘해 수확물을 거둬들이고, 곡식을 타작하는 것이 보였다. 성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 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더 이상 악마를 속일 수 없게 된 그는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다음 주 월요일 저녁식사에 악마를 초대했다.
게으른 만큼이나 먹성도 좋은 악마는 성자의 초대를 수락했다. 약속한 월요일 저녁, 악마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고 몽생미셸을 향해 길을 나섰다.
성 미카엘은 악마를 으리으리하게 차려진 식탁으로 안내했다. 먼저 수탉의 볏과 콩팥이 잔뜩 들어간 크림파이가 살코기 만두와 함께 나왔고, 다음으로는 크림소스에 곁들인 커다란 노랑촉수 두 마리가 등장했다. 이어 포도주에 절인 밤을 집어넣은 흰 칠면조 고기와, 해변의 목장에서 길러 짭짤한 맛이 나며 케이크처럼 부드러운 양고기가 식탁에 올랐다. 그러고는 입에서 녹아내리는 따뜻한 팬케이크가 나왔다.
잔뜩 먹고 마신 악마는 건드리기만 해도 변이 나올 정도로 배가 몹시 거북해졌다. 그러자 성 미카엘이 벌떡 일어서며 감히 내 앞에서 이 무슨 천한 짓거리냐고 벽력같이 소리를 쳤다. 놀란 악마가 황급히 도망쳤고, 성자는 몽둥이를 들고 뒤를 쫓았다.
그들은 천장이 낮은 방들을 가로질러 뛰어다녔고, 기둥 주위를 돌고, 공중 계단을 올라가고, 장식물들을 건너뛰며 쫓고 쫓겼다. 심하게 탈이 난 가엾은 악마는 성자의 거처를 오물로 더럽히며 도망쳤다. 그러다가 마침내 맨 꼭대기 마지막 테라스에까지 도달했다. 악마의 눈에 멀리 펼쳐진 광활한 만과 함께 그가 소유한 마을과 모래사장, 목장이 들어왔다. 악마를 뒤쫓아온 성자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악마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고, 악마는 허공에 날린 공처럼 높이 솟아올랐다.
투창처럼 하늘을 날아간 악마는 모르탱(Mortain) 마을 어귀에 털썩 떨어졌다. 이마의 뿔과 발톱이 바위에 깊이 박혔다. 악마의 추락이 남긴 흔적이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세상 끝까지 쫓겨나 불구가 된 악마는 절뚝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멀리 석양 속에 우뚝 서 있는 숙명의 성을 바라보며, 이 불평등한 싸움에서 자기가 언제나 패자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밭과 언덕, 계곡, 목장을 적에게 넘겨준 채 발을 질질 끌면서 먼 곳으로 떠났다.
이것이 노르망디의 수호성인 성 미카엘이 악마를 이긴 전말이다. 다른 민족은 이 싸움을 다른 방식으로 꿈꾼 바 있다.
▶ 참고 문헌 : 〈모파상의 행복〉, 모파상 저, 최내경 역, 대교베텔스만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