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여자

1882년 / 백선희 옮김

by 글섬

작품 배경


〈미친 여자(La Folle)〉는 1882년 12월 6일자 정치문예 일간지 《르 골루아(Le Gaulois)》 지에 처음 발표된 소설로, 이듬해에 출판된 단편집 〈멧도요새 이야기(Contes de la bécasse)〉에 수록되었다.

이 소설은 로베르 드 보니에르(Robert de Bonnières)에게 헌정되었다.





마티외 당돌랭(Mathieu d’Endolin) 씨는 멧도요새만 보면 아주 음산한 전쟁 일화가 떠오른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로이센 군대가 들이닥쳤을 때 그는 코르메유(Cormeil) 근교에 있는 자신의 영지에 살고 있었다. 당시 그의 이웃집에는 정신 나간 여자가 살았다. 그녀는 오래전, 스물다섯 살 때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갓난아기를 불과 한 달 사이에 모두 잃었고, 그로 인해 정신이 나가버린 여자였다.


그 가련한 여자는 슬픔에 큰 충격을 받아 몸져누웠고, 6주 동안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격렬한 발작에 뒤이어 일종의 평온한 무기력증이 찾아왔고, 그녀는 거의 먹지도 않고 눈만 움직이며 꼼짝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일으키려고 하면 여자는 마치 누가 죽이기라도 하는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가 계속 침대에 누워 지내도록 내버려 두었다.


늙은 하녀 한 명이 그녀 곁에 머무르며 이따금씩 물을 마시게 하거나 식은 고기를 씹게 했다. 절망한 그녀의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했다. 그녀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외부와 단절된 채 15년 동안 꼼짝 않고 집 안에 있었다.


전쟁이 일어났고, 12월 초순에 프로이센 군대가 코르메유로 침투했다.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던 날이었다. 당돌랭 씨는 통풍 때문에 꼼짝 못하고 안락의자에 기대 누워 있었다. 그때 군인들의 묵직한 군화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너머로 군인들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장교들이 병사들을 마을 주민들의 집에 배정했다. 당돌랭 씨는 열일곱 명을 배정 받았다. 이웃집의 미친 여자에게는 열두 명이 배정되었다. 그들의 지휘관은 정말이지 난폭하고 거칠고 퉁명스러운 사내였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무 일 없이 순조롭게 지나갔다. 사람들은 장교에게 이웃집 여자가 아프다고 말해 두었다. 장교는 그다지 괘념치 않았다. 하지만 이내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 여자가 장교의 신경에 거슬렸다. 장교는 그녀의 병명을 물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극심한 슬픔을 겪은 뒤로 15년째 누워서만 지낸다고 대답했지만, 장교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그녀가 프로이센 군인들을 보기 싫고 그들과 말도 섞고 싶지 않아서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장교는 여자에게 그를 접견하라고 요구했다. 사람들이 그를 여자의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는 그녀에게 거친 말투로, 일어나서 좀 내려오시라고 말했다. 여자는 흐릿하고 멍한 눈길로 그를 돌아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장교는 이런 무례는 용인할 수 없다며 여자가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강제로 내려오게 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자는 마치 그를 보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교는 그녀의 평온한 침묵을 극단적인 멸시의 표시로 여기고 격분해서, 내일도 내려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은 뒤 방을 나갔다.


이튿날, 늙은 하녀가 필사적으로 여자에게 옷을 입히려 했지만 여자는 발버둥을 치고 고함을 지르며 거부했다. 장교가 곧장 올라왔다. 늙은 하녀는 털썩 무릎을 꿇고, 도무지 옷을 입으려 들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불쌍한 분이니 부디 용서해달라고 애원했다.


장교는 몹시 화가 난 동시에 당황했기 때문에 감히 부하들을 시켜 여자를 침대에서 끌어내지 못하고 난감한 채로 서 있었다. 이윽고 장교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독일어로 명령을 내렸다.


곧 프로이센 분견대가 마치 부상자를 운반하듯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조금도 손대지 않은 그 침대에서 미친 여자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심한 채 여전히 말없이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 뒤에서 여자의 옷가지가 든 꾸러미를 든 장교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혼자서 옷을 입을 수 없고 산책도 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하게 해드리지요.”


침대를 든 군인들의 행렬이 숲을 향해 멀어져 갔다. 그리고 두 시간 뒤, 군인들만 돌아왔다. 그 뒤로는 그 미친 여자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녀를 어디에 데려다 놓은 걸까?


사라진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이 당돌랭 씨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프로이센 장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가 하마터면 총살당할 뻔했다.


봄이 왔고, 프로이센 점령군은 마을을 떠났다. 이웃 여자의 집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집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늙은 하녀는 겨울 동안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 일에는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직 당돌랭 씨만이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군인들이 그 여자를 어떻게 한 걸까? 여자는 숲속으로 달아났을까? 누군가 어딘가에서 여자를 발견하고 그녀의 신원을 알 수 없어 병원에 데려다 놓았을까? 하지만 그 어떤 의혹도 풀리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그해 가을, 멧도요새들이 떼를 지어 그 고장을 지나갔다. 당돌랭 씨는 통풍 증세가 잠시 잦아들어 숲까지 살살 걸어가 보았다. 사냥한 새 한 마리가 덤불 속으로 떨어져, 그는 덤불 속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그 새 옆에서 신원미상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는 불현듯 그 미친 여자가 떠올라 가슴이 서늘해졌다. 왠지 모르게 그 시체가 분명 그 여자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문득 모든 걸 간파했다. 그때 군인들은 그 여자를 매트리스째로 인적 없는 숲속에다 버렸던 것이다. 그 여자는 늘 그랬듯이 꼼짝 않고 누군 채 두터운 눈 이불을 덮고 가만히 죽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늑대들이 여자를 삼켜버린 게다. 계절이 바뀌자 새들은 찢어진 침대 매트리스에서 나온 양모로 둥지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그 서글픈 유골을 보관했다. 그리고 후손들은 절대로 전쟁을 경험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 참고 문헌 : 〈멧도요새 이야기〉, 모파상 저, 백선희 역, 새움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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