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이 좋다. 일하는 내가 좋다. 일에서 오는 에너지가 좋다. 일을 해야만 얻어지는 휴일의 달콤함은 더할 나위 없다.
아주 많이 무리해서 집을 샀었다. 일단 집을 저지른 뒤에 대출 이자에 맞춰 일했다. 어린 딸아이에게 비교적 안락한 환경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으로 여러 회사에서 일감을 받아 기한을 맞추느라 여러 새벽을 밝혔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그땐.
대출도 육아도 모두 끝나고 오롯이 남은 나에게 집은
출근길, 신발을 신고 현관에 서서 집안을 바라보며 말한다. 다녀올게. 퇴근길, 따뜻한 집안을 생각하면 이미 잔뜩 평온하다. 휴일날, 거실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볼을 부비며 마시는 커피는 황후가 부럽지 않다. (아, 뭐, 이건 황후가 되어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말일지라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점심시간, 딸아이가 보내준 카톡을 보며 푸하하, 웃다 말고 생각한다.
난 아닌데...
갑작스레 든 생각이다. 실은 여태 몰랐다. 이제는 딸아이 때문도 집 때문도 가난 때문도 아니다. 일을 위해서 일을 원한다. 놀고 먹을 만큼 벌어서가 전혀 아니다. (머스크도 일하는걸) 놀고 먹으면 할 일이 없어서도 전혀 아니다. (원래 백수가 제일 바쁜걸)
일하는 내가 좋다. 일할 때의 내가 제일 내 맘에 든다. 일할 때의 피로감과 예민함, 기만함까지 포괄해야 나답다. 돌이켜보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조차 어쩌면 이미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 끔찍해 했을 때조차 나와 일은 한몸이었던 것도 같다. 가난이나 집이나 딸아이 때문에 일한다고 생각했던 그 날들에 내가 가지려 애를 썼던 건 집이나 부가 아니라 나 자신이나 내 이름을 지켜내는 오늘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생각을 조금 뒤집어도 좋겠다. 가난이나 집 때문에 출근하는 게 아니다 사실. 그냥 출근을 위한 출근이거나 휴일을 위한 출근이거나 것도 아님 퇴근을 위해 출근하자. 돌아올 곳이 있다는 행복감은 떠나봐야만 아니까. 매일 떠나고 매일 돌아와야 안정감이 뭔지, 내가 가진 게 뭔지 아니까.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나 자신을 가질 수 있으니까.
결국 난 나를 위해 일한다. 나를 가질 수 있도록 일에 투영해 나를 쌓는다. 가난이든 집이든 자식이든 그런 것들은 일종의 핑계다. 너무 거대해 도망치고 싶은 나 자신을 안전하게 가려주는 아주 예쁘고 소중한 핑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