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은 말이 없다
그에겐 하루치 분량의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은 주인도 목적지도 심지어 특정한 양상이나 의미도 없다. 그저 있다. 일정치의 말들을 쏟아내는 것만이 그가 원하는 하루다. 태초에 말이 있고 그 다음으로 그가 존재했던 양.
말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누군가에겐 불면으로, 누군가에겐 잊히지 않는 주홍 글씨로 변이하는 말들은, 실은 그저 말이다. 다만 배설되는 것 외엔 이유가 없는 그 말들은 뱉어낸 그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뻗어 그와 그를 둘러싼 온 우주를 에워싼다. 이건 나의 우주가 아니야. 이건 그의 말들도 아니야. 이건 그냥 말이야. 말은 말밖에 되지 않는데 말도 되지 않는 말들이 주인인 척하게 둘 수는 없지, 해도 일단 그를 벗어난 말들은 그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시공간을 헤친다.
첫 출근하는 날에 내심 많이 놀랐다. 너나 할 것 없이 돌아가면서 남들 뒷담화에 심취하는 집단이라니. 원래도 남들 얘기에 취미가 없던 나로서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날 첫 출근하는 사람은 나였는데 아무도 내겐 관심이 없고, 거기 없는 사람들 얘기로만 점심 시간을 통째 바치는 그들이 낯설다 못해 두려웠다.
그리고 1년. 어느 날 문득, 누구보다 열심히 남들 뒷담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건 낯설음 정도가 아니라 섬뜩함이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삭제되었거나 내가 흐릿한 사람들이 거론할 내가 없어진 탓에 남 얘기밖에 없다는 걸. 업무 강도가 말도 안 되게 높은 집단이었다. 도무지 생각이라는 걸 할 여력이 없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쓰러져 잠이 들기 일쑤였다. 처음엔 피아노가, 다음엔 운동이, 그 다음엔 독서까지 점차 삭제되어가던 중이었다. 그나마 아프지 않고 넘어가주는 주말엔 밀린 집안일로, 주중엔 강도 높은 업무로, 연휴엔 긴장이 풀린 탓에 어김없이 몸살로,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나는 삭제 중이었다. 내가 없으니 생각이 멈추고 생각이 멈추니 입은 쉴 새가 없어 남 얘기에 열을 올린다. 나는 없고 말만 남는다.
그에겐 하루치 분량의 말들이 있다. 오늘도 그는 하루치 분량의 말들을 쏟아내며 으스댄다. 내가 이래 봬도 얼마나 아무 생각 없는데. 어쩌면 시간은 직선이나 포물선이 아닌 원형일 수 있어서 오늘 그를 떠나간 말들이 시간의 띠를 돌고 돌아 마침내 헤치거나 해치는 건 그 자신일 수 있다. 생각이 없는 그로서는 다다를 수 없는 생각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