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섬 옮김
〈녹슨 사랑(La Rouille)〉은 1882년 9월 14일 《질 블라스(Gil Blas)》 지에 모프리뇌즈(Maufrigneuse)라는 예명으로 처음 발표된 소설로, 같은 해에 단편집 〈피피 양(Mademoiselle Fifi)〉에 수록되었다.
그는 거의 평생 동안 사냥에 대해 끝없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숲이나 평지, 습지를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밖으로 나가 사냥개를 풀고, 매복하고, 총을 쏘았다. 그는 오로지 사냥만을 말하고 사냥만을 꿈꾸며 “사냥을 즐기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불행한가!”라고 되뇌었다. 이제 막 오십을 넘긴 그는 대머리에 약간 뚱뚱했지만 건강하고 활력 넘쳤다. 사냥용 뿔피리를 부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콧수염은 짧게 깎아 입술을 가리지 않게 했다.
그의 이름은 엑토르 공트랑 드 쿠틀리에(Hector Gontran de Coutelier) 남작이었지만, 그 고장에선 주로 엑토르 씨(M. Hector)로 불렸다. 그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숲속의 작은 저택에서 살아왔던 터라 그 고장의 모든 귀족들과, 사냥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친하긴 했지만, 특히 수세기 전부터 그의 가문과 인척 관계였던 쿠르빌(Courville) 가족은 그가 유일하게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친분을 이어온 사이였다.
쿠르빌 가족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온 그는 항상 사냥만 아니라면 이 집에서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쿠르빌 씨는 어렸을 때부터 그의 친구이자 동지였다. 쿠르빌 씨는 아내와 딸, 그리고 역사 연구에 전념한다는 구실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위인 드 다르네토(Monsieur de Darnetot)와 함께 농장을 관리하며 조용히 살고 있었다.
쿠틀리에 남작은 쿠르빌 씨의 집에 자주 가서 식사를 함께 했는데, 다른 무엇보다 사냥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마치 그들이 아주 잘 알고 있을 법한 유명 인사들에 대해 떠벌이듯이 사냥개와 흰담비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는 사냥터에서 보여주었던 사냥개와 흰담비의 행동을 분석하고, 그들의 생각과 의도를 설명했다. 쿠르빌 씨와 다르네토, 그리고 그들의 아내는 남작이 신이 나서 풀어놓는 사냥 이야기에 진심으로 웃곤 했다. 남작은 팔을 이리저리 휘둘러대며 온몸으로 사냥에 대해 이야기했고, 쿠르빌 가족이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할 때면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혼자 사냥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렇듯 오로지 사냥만을 위해 살아온 남작에게 어느 날 갑자기 극심한 류머티즘 발작이 일어났다. 그는 두 달 동안 침대에 자리보전해야 했는데 류머티즘 때문이 아니라 사냥을 나가지 못하는 슬픔과 권태로 거의 죽을 뻔했다. 남작은 여자 하인을 두지 않고 늙은 하인이 그의 식사를 준비했기 때문에 온찜질 같은 세세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다. 그를 간병해주는 사람은 조마사뿐이었는데, 남작만큼이나 남작의 류머티즘이 지루했던 이 조마사는 밤낮없이 안락의자에서 잠이 들기 일쑤였다.
쿠르빌의 아내와 딸이 가끔씩 그를 문병 왔는데 남작은 그 시간만큼은 평온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들은 그의 침대 옆을 종종대며 그를 위해 세심하게 허브차와 아침식사를 준비해주곤 했다. 그녀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남작은 다음엔 자고 가시라는 인사로 그녀들을 파안대소하게 했다.
몸이 회복되어 다시 사냥을 나가기 시작한 남작은 어느 날 저녁 쿠르빌 가족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 다시 류마티즘의 고통에 휘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예전의 활기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에게 쿠르빌의 아내와 딸이 어깨에는 숄을, 목에는 스카프를 둘러주었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여인들의 손길에 몸을 내맡긴 채, “이렇게 되면 망한 건데”라고 중얼거렸다.
그가 돌아간 뒤, 다르네토 부인은 어머니에게 남작을 결혼시켜야겠다고 말했고, 쿠르빌 가족은 그녀의 말에 모두 동감했다. 그들은 저녁 내내 남작의 결혼 상대자에 대해 의논했고, 그들이 알고 있는 과부들 중에 여전히 예쁘고, 부유하고, 성격 좋고 건강한 마흔 살의 베르트 빌레르(Berthe Vilers) 부인을 남작의 결혼 상대자로 선택했다.
쿠르빌 가족은 그녀를 집으로 초대해 한 달 동안 함께 지냈다. 그녀는 활기차고 활동적인 성격이었다. 그녀는 쿠틀리에 남작과 금세 친해져, 그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토끼의 감정이나 여우의 간계 등 사냥감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녀는 남작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를 기쁘게 했다. 어느 날 저녁 남작은 그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녀에게 사냥을 함께 가자고 청했다. 그로서는 그 어떤 여인에게도 해본 적 없는 청이었다. 그녀는 남작의 이 특이한 데이트 신청을 수락했다.
쿠르빌 가족은 다 같이 즐겁게 그녀의 사냥을 준비했다. 모두가 그녀에게 뭔가 하나씩 준비해주었고, 드디어 그녀는 남성용 부츠와 속바지, 짧은 패티코트와 벨벳 재킷, 사냥용 검은 벨벳 모자 등 아마존 의상처럼 입고 나타났다.
남작은 처음 사냥을 나가는 사람처럼 흥분한 듯 보였다. 그는 그녀에게 바람의 방향과 사냥개들의 움직임을 읽는 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데리고 들로 나갔고, 처음 사냥을 나서는 그녀의 뒤를 간호사처럼 걱정스럽게 따라다녔다.
사냥개 메도르(Médor)가 꼬리를 곧추세우고 한쪽 발을 치켜든 채 멈추자 그녀 뒤에 서 있던 남작은 “조심해요. 자고새 무리예요.”라고 속삭였다. 남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커다란 자고새들이 잔뜩 날아오르며 엄청난 소리를 냈다. 빌레르 부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질끈 감은 채 총을 발사해버렸다. 그녀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가 잡은 자고새 두 마리 중 하나를 메도르가 물어오고 있었다.
그날부터 쿠틀리에 남작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매일 저녁 쿠르빌 가족을 찾아가 사냥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 쿠르빌 씨가 남작과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남작에게 빌레르 부인과 결혼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결혼 얘기에 깜짝 놀란 남작은 말을 더듬다가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작별 인사를 하더니 재빨리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사흘 동안 남작은 쿠르빌 가족을 방문하지 않았다. 사흘 뒤 남작이 다시 쿠르빌 가족을 방문했을 때는 그 동안 결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느라 창백해진 얼굴이었다. 남작은 쿠르빌 씨에게, 빌레르 부인은 자신을 위해 태어난 여인 같다며, 그녀에게 자기와 함께 일 년 내내 함께 사냥하며 살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대신 청해달라고 부탁했다.
쿠르빌 씨는 그녀가 분명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며, 그런데 남작이 지금 당장 직접 청혼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권했다. 하지만 남작은 갑자기 불안스레 말을 더듬으며 자신은 잠시 파리를 여행하고 올 예정이라고, 파리에서 돌아오면 그때 확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런 말없이 다음 날 아침 파리로 출발했다.
남작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고, 삼 주가 지났지만 남작은 돌아오지 않았다. 놀라고 불안해진 쿠르빌 가족은 빌레르 부인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고, 이틀에 한 번씩 남작의 집에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봤지만 남작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빌레르 부인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하녀가 어색한 태도로 들어와 신사 한 분이 쿠르빌 씨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그 신사는 다름 아닌 쿠틀리에 남작이었다. 여행복 차림의 남작은 쿠르빌 씨를 보자마자 두 손을 꼭 잡더니 다소 지친 목소리로 이제 막 돌아왔다고,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당혹감이 역역한 표정으로 주저하며 결혼은 안 되겠다고 말했다. 쿠르빌 씨가 놀라서 이유를 물었지만 남작은 대답할 수 없으니 이유는 묻지 말라고, 자신은 그녀와 결혼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녀를 다시 만나기가 너무 고통스러우니 그녀가 쿠르빌의 집을 떠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고는 곧장 몸을 돌려 뛰어나가 버렸다.
쿠르빌 가족은 남작이 이 결혼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오만 가지 추측을 해대다가, 아마도 남작이 과거의 인연으로 인해 숨겨둔 자식이 있었나 보다고 결론 내렸다. 쿠르빌 가족은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빌레르 부인에게 사실 그대로 알렸고,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쿠르빌 가족에게 처음 올 때처럼 홀로 돌아갔다.
그리고 삼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저녁, 저녁식사를 마친 뒤 남작이 쿠르빌 씨와 함께 파이프 담배를 피우다가, “내가 그녀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면 아마 나를 동정할 걸세.”라고 말했다. 그러자 쿠르빌 씨는 결국 그렇게 물러나야만 할 그 어떤 비밀이 있었다면 애초에 그렇게까지 친밀한 관계를 맺지 말았어야 한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자 남작은 그렇게 될지 몰랐다고 사과하더니, 비로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작은 무려 20년 동안 오로지 사냥만을 위해 살아왔고, 사냥만을 좋아했고, 사냥밖에 몰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되자 그 어떤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그로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쿠르빌 씨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마지막 사랑이 정확히 16년 전이었던 남작으로서는 사랑보다는 총 쏘는 게 더 좋았다. 시장과 사제 앞에서 결혼을 서약하는 순간을 생각하자 그는 두려웠다. 정직한 남자라면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기에 그녀와 신성한 약속을 하기 전에 이런 불안감을 떨치고 확신을 갖기 위해 8일간 파리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던 거였다.
그런데 8일이 지나도 아무런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 주가 지나고, 삼 주가 지나는 동안 계속해서 기다렸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즐겨 찾던 식당의 각종 요리에 질력이 날 지경이 되자 그는 이제 그만 물러나야 할 때라는 걸 인정해야 했고, 그래서 그는 물러났다.
쿠르빌 씨는 남작의 얘기에 웃지 않으려 기를 써야 했다. 그는 남작과 헤어지며 이제야 남작을 이해했고, 동정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남작에 대해 이야기하며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 되도록 웃었다. 하지만 아내는 웃지 않고 매우 주의 깊게 듣더니 남작은 그저 바보처럼 겁을 먹었던 거라고, 그러니 베르트에게 지금 당장 돌아오라고 편지를 써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말도 안 돼요! 남자가 아내를 사랑하면 그런 일은 저절로 해결되는 거잖아요.”라고 아내가 말했다. 그러자 쿠르빌 씨는 다소 혼란스러운 마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La Rouille〉 원문 번역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