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 / 바바라 수코바, 마틴 슈발리에 주연

by 글섬


여느 신혼부부 부럽지 않게 서로에 대한 애정이 한껏 묻어나는 노년의 두 여인, 니나와 마도는 언제 어디서나 애틋한 시선을 교환하며 늘 함께 지내지만 실은 계단식 아파트 꼭대기 층 맞은편에 서로 마주보고 살고 있다. 싱글인 니나에 반해 마도에겐 장성한 아들과 딸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들은 마도가 죽은 남편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를 마뜩잖게 대한다. 두 채의 아파트를 팔아서 여생은 마도와 단둘이 로마에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 지난 20년을 숨어서 사랑했던 니나는 이제 그만 떠나자고 종용하지만 마도는 차마 자녀에게 동성애를 고백할 엄두가 나지 않아 번번이 말도 꺼내지 못한다.


로마로 떠나기 위해 둘이 동시에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고 좋은 가격에 매매가 성사되기 직전까지 자녀에게 입도 벙긋 못했던 마도는 끝내 아파트 매매 계약을 번복하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니나가 불같이 화를 낸 바로 그날에 마도가 뇌졸증으로 쓰러진다.


그녀들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세상을 상대로 니나가 마도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사랑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자, 그러자, 애초부터 엄마의 외도를 의심했던 아들은 차치하고, 여태 엄마를 누구보다 아껴주고 보살펴온 딸이 엄마를 요양원에 가두고 투약용량을 늘려 하루 종일 잠만 재운다. 딸에게 있어 엄마는 결혼생활 내내 아내를 박대했던 남편 곁을 끝까지 떠나지 않고 오로지 자녀를 위해 희생했던 존재였다. 말하자면 여자 말고 엄마여야만 했다. 어쩌면 딸 역시 싱글맘이었기에 더욱 그래야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들은 지금의 마도의 딸 나이 무렵에 로마에서 처음 만났다. 마도의 어린 딸아이를 손잡고 찍은 단체 관광 사진에 니나가 함께 있었으니 외도가 맞긴 맞는다. 그런데 만일 마도의 사랑이 동성이 아닌 이성이었다면 가정은 지켜지지 못했을 테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단순히 억눌린 욕망이나 욕정이었다면 20년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금단의 단맛은 그런 것이라고들 하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뇌졸증 여파로 거동이 불편하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된 마도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외도에 대한 대가는 이미 충분히 치르지 않았을까.


퀴어 영화는 기본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목적이기에 아름답게 그려지도록 애를 쓰기 마련이고, 그러자면 청춘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려 20년을 끈질지게 지켜온 사랑을 이야기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그녀들은 무참히 늙어 있다. 고운 할머니들이 아니라 그냥 제대로 늙은 여자들이다. 동유럽 정서답다. 덕분에 보기에는 다소 불편한 만큼 관계는 더더욱 진실되어 보인다.


대사와 사건을 최소화하고도 카메라 앵글만으로 서스펜스를 자아낸 감독의 감각이 노련하다.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수 분 만에 한 씬도 놓치지 않으려는 집중력이 솟구쳤다. 애정해 마지않던 유럽 영화 특유의 정서를 오랜만에 접하니 가슴이 뻐근했다. 구체적인 애정 행각 없이도 시선 하나, 손길 하나에 사랑을 담아 전달해내는 두 배우의 열연에 기립 박수를 보낸다.


말하자면 그저 사랑이었다. 그녀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서로를 쓰다듬는 손길이 한없이 부러웠다. 20년의 시간 동안 누군가 저토록 낡지 않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 준다면 그게 동성애든 외도이든 상관이 있을까. 세상 끝까지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지켜내고야 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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