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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Jan 19. 2023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

또 다시 출발선에 서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어도 살아볼 만은 하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날이고, 내일 역시 새로운 하루라는 이유에서다.


     매일 똑같은 코스를 네 번이나 왕복하는 노란 버스에 앉아 흔들리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것인가. 아주 오래전에 코러스 마이크 앞에서 했었던 똑같은 생각이 반복됐다.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도 마음도 너무나 지쳐, 버스에 멍하니 앉아 흔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할 수가 없어..




     20년 동안 혼자 기를 쓰며 길렀던 딸아이가 독립하고 나자 나는 그만 무릎이 꺾였다. 더 이상 기를 쓸 필요가 없었다. 돈을 벌 이유도, 일을 할 이유도 없는 듯했다. 딸아이 생의 결정적 기로마다 혼자서 몸부림쳐야 했던 기나긴 고독의 시간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다시 고독이었다. 미처 몰랐다. 몰랐으니 살아냈을 텐데도 몰랐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내내 정신 없이 고단한 혼자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혼자였다. 이제야 겨우 내 몫의 삶이 주어졌다는 게 처음엔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태도 너무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 억울한데 이제부터 또 열심히 살아야 할 내 몫의 삶이라니.. 그건 차라리 형벌이었다.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절망에 가까운 외로움을, 과거 전체가 죄가 되고 일상은 형벌로 변모해가던 그 과정을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다."

- 조해진. <환한 숨>


     그렇게 나는 홀로 남겨진 나를 위해 노란 버스에 올랐고, 그곳에서 수많은 본연의 인간 군상에 시달리며 희한하게도 위로 받았다. 저토록 어린 영혼들에도 이기와 좌절, 외로움과 허영이 가득하다. 우린 원래부터 저런 모습이다. 무엇을 더 바라는가. 빚어진 그대로 감당할 뿐인 것을.


     그렇게 무력한 십개월이 꿈처럼 흘렀다. 이제야 무력감이 조금씩 물러나며,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선명해지던 즈음, 며칠 전 원장에게서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학원 상담 교사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사실 내 일자리는 한 달이 멀다 하고 교체되었던 자리였다. 일주일을 못 버티고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불과 7개월 만에 내가 4번째였을 정도로 악명 높은 자리였다. 다른 버스들도(전국구 대형 학원이라 십여 대의 버스가 운행 중이다.) 내게 대단하시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지옥은 저마다 다른 형태이다. 내게 있어 지옥은 내 앞에 펼쳐진 무한의 시간과 가능성이었다. 이제까지도 죽도록 달려와 오십이 넘었는데, 여전히 조금도 늦지 않았다고 외쳐대는 사회 전반의 무한가능성 최면이 나는 버겁고 싫었다. 나를 쉬게 해줘..


     전임자들에게는 지옥이었을 버스도, 학원에서는 기피 대상이었던 내 담당 구역의 어머니들도, 모두에게 악동으로만 여겨졌던 아이들도, 내겐 차라리 전혀 다른 유형의 위로였다. 나는 그들과 부대끼며 삶을 관조했다. 아무것도 아닌 한 여자가 어머니가 되는 데 요구되는 사랑과 장력, 아무것도 아닌 어리고 여린 존재가 인간이 되기까지 요구되는 배움과 열망. 그것은 그동안 내가 접했던 고전의 실사판이었다. 그랬다. 모두가 다 그러했다. 살아있는 한 온갖 뜨거운 것들을 담금질하며 걸어가야만 하는 거다.


     원장은 그동안 나를 지켜봤다고 말했다. 내가 영어로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도, 여느 차량 안전 담당자들과는 달리 휴식시간마다 책을 읽는 것도, 문제가 발생하면 학원보다 먼저 어머니들과 통화해서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 그래서 상담 교사직에 적임자로 여겼노라고 말했다.


     소식을 들은 딸아이는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사회생활 5년차로 접어들자 세상에 진심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스러웠다고, 그런데 진심이 통하는 실례를 봤으니 너무나 위로가 된다고, 그래서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날부터 딸아이는 나를 "진심 씨"라고 부르는 중이다.)




     얼마를 달려도 다시 출발선이다. 마치 꿈처럼 나는 또 다시 출발선으로 떠밀려졌다. 생이 내게 요구했던 수많은 장애물을 헤치고 난 뒤에 다시금 장애물을 대면한 기분이지만..


     원장이 사십대, 나머지 직원들은 거의가 삼십대인 곳에서 생이 내게 요구하는  무엇인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그저 나는  다시 가야 한다. 바야흐로 아무것도 아닌 내가 실은 아무것이라는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증명해내야  때이다. 무엇보다, 살아있으니 나는 가야 한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 아무도 올 일이 없다는 것, 그 자체가 두려운 사실이었지만 공포로 얼룩진 긴 밤을 보내고 났더니 모든 게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가장 못난 겁쟁이의 면모가 진땀과 함께 날아갔다. 아찔한 번뜩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새장에서 사육당하는 새는 되지 않을 거야, 흐리멍덩해서 문이 활짝 열렸는데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숲속으로 들어갔고 이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 매들린 밀러, <키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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