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총각의 살림살이

풍속생활연구 - 지방생활정경 제5권

by 글섬

작품 배경


일간지 《라 프레스(La Presse)》에 신문소설의 형태로 발표된 이 작품의 발생 과정은 대략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먼저, 1841년 2월 24일에서 3월 4일까지, 이 소설의 제1부가 〈두 형제(Les Deux Frères)〉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1842년 10월 27일에서 11월 19일까지, 제2부인 〈시골총각의 살림살이(Un ménage de garçon en province)〉가 발표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1841년에서 1842년 사이에 집필되었다. 1843년 《퓌른(Furne)》 판에서 〈La Rabouilleuse〉라는 최종 제목으로 변경되어 〈독신자들(Les Célibataires)〉 시리즈에 〈투르 신부(Le Curé de Tours)〉(1832)와 〈피에레트(Pierrette)〉와 더불어 「지방생활 장면들」에 편입된다.


‘La Rabouilleuse’는 동사 ‘Rabouiller’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그 의미에 관해서는 발자크가 작품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진흙탕 boue’에서 파생된, 이 동사는 프랑스 중부 지역인 베리(Berry) 지방에서 쓰이는 방언으로 “흙탕물을 튀기며 가재를 잡다”, “물 흐리며 낚시하다”를 뜻한다. 따라서 그 여성 명사형인 ‘라 라부이외즈’는 ‘흙탕물 튀기는 여자’, ‘물 흐리며 낚시하는 여자’ 등으로 옮길 수 있겠다.


발자크는 대혁명으로부터 7월 왕정에 이르기까지 대략 50년에 걸쳐 변동하는 프랑스 근대사회, 그리고 그 혼돈스런 현실 속에서 갈등하고 변모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소설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로 ‘대혁명-제국’과 복원된 ‘왕국’을 경험하는 프랑스 역사에서 ‘전통’과 ‘근대’의 공존과 이행, 그리고 그 혼돈의 현실(‘흙탕물’)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면면이다.


7개의 장(章)들로 구성되는 이 소설은 제1부 〈두 형제〉, 제2부 〈시골 총각의 살림살이〉, 제3부 〈유산은 누구에게로(A qui la succession?)〉로 나뉜다. 제1부인 〈두 형제〉가 주로 파리를 무대로 필리프 브리도(Philippe Bridau)가 벌이는 행각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11개의 장들로 구성되는 제2부 〈시골 총각의 살림살이〉는 이쑤뎅(Issoudun)에서 벌어지는 막상스 질레(Maxence Gilet)의 방종을 이야기한다. 군복을 벗은 후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들의 주요 행동은 백일천하 직후인 1815년부터 시작되어 1822년 필리프가 막상스를 결투에서 죽이는 장면으로 마감된다. 따라서 왕정복고 시대, 대략 7년여 동안의 기간인 셈이다. 이후 5개의 장들로 구성되는 제3부는 루제(Rouget) 영감의 유산을 가로채고 왕정에 협력하면서 화려하게 재기한 필리프가 1830년 7월 혁명 이후 급격하게 몰락하고, 결국 1839년 알제리 식민지 전쟁에서 사망하는 것으로 마감된다. 요컨대 이 소설의 무대는 파리와 이쑤뎅을 오가며 전개된다.




제1부 두 형제


제1부에서는, 주요 인물들인 데쿠엥(Descoings) 영감 부부, 데쿠엥 2세 부부, 루제 영감 부부, 장 자크 루제(Jean-Jacques Rouget), 아가트 루제(Agathe Rouget), 오숑(Hochon) 영감 부부 등을 소개하는 도입부에 뒤이어, 브리도(Bridau) 국장과 아가트 사이에서 태어난 두 형제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된다. 즉 퇴역 장교인 형 필리프의 방종과, 화가인 동생 조세프(Joseph)의 진정한 삶을 이야기한다.


로제(Rouget) 박사는 이쑤뎅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지만, 아내는 품행이 그다지 단정하지는 못하다. 로제 부부는 아들 장-자크를 낳고, 십년 뒤엔 딸 아가트를 낳는다. 장-자크는 외모는 아버지를 빼닮았지만 심성은 그렇지 못해서 우둔했다. 아들의 부족함을 간파한 로제 박사는 아들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아내의 남동생 데쿠엥 내외에게는 자식이 없었기에 로제 박사는 데쿠엥 부부의 막대한 재산을 아가트가 상속받게 되길 바라고 딸 아가트를 파리로 보내 데쿠엥 부부와 함께 살게 했다. 아가트가 상속 재산을 받게 되면 로제 자신이 아가트의 상속권을 박탈해 데쿠엥의 재산을 차지할 속셈이었다. 아가트는 파리의 어느 상점에서 만난 브리도와 만난 지 열흘 만에 결혼했다. 로제 박사는 결혼식 전에 부랴부랴 파리로 달려가 이들 부부의 재산 계약서를 작성했다. 사랑에 푹 빠진 브리도는 아내의 재산은 아무래도 좋았다. 내무성 관료였던 브리도는 나폴레옹 숭배자로 일밖에 몰랐다. 3년 후에 브리도 부부는 두 아들 필립과 조세프를 얻었다. 1808년에 브리도는 과로로 사망했다.


아가트는 친정 식구들과 일체 연락하지 않고 살았다. 해산이 임박했을 무렵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가트는 어머니의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친정 쪽 문제에 대해서는 대모인 오숑 부인에게 일임하고, 대모에게서 일 년에 한 번 편지를 받아보는 게 전부였다. 때문에 남편이 죽자 아가트는 데쿠엥 부인 댁으로 이주해 함께 살았다.


아가트의 첫째 아들 필리프 브리도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원기 왕성한 청년으로 허영심이 강했다. 반면에 둘째 아들 조세프는 항상 단정치 못하고 매우 지저분했기에 아가트의 꾸지람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가트가 눈여겨보지 않은 특이점이 있었다. 그는 조용한 성품이었지만 관찰력이 매우 뛰어났다. 아가트는 필립에게는 애정을 듬뿍 쏟으며 그의 장래를 기대해마지 않았지만, 조세프에 대해서는 늘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했다.


아버지 브리도가 나폴레옹의 충직한 내무성 관료였기에 브리도는 황제의 장학금을 받아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러시아 원정 이후 제국의 몰락 단계로 접어든 1813년부터 군 복무를 시작해서, 기병대와 황제의 칙사 장교로 활약했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1814년 부르봉 왕가에 충성을 거부하고, 1815년 백일천하가 끝난 다음 중령으로 예편했다. 그리고는 ‘카페 랑블랭(Café Lamblin)’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부르봉 왕정에 대한 보나파르티스트 음모의 주동자 역할을 한다.


반면에, 조세프는 1812년 어느 날, 미술학교의 한 학생이 캐리커처를 그리는 모습을 보고 그림에 매료된다. 다음 날, 조세프는 슬그머니 미술학교로 들어간다. 교사 쇼데(Chaudet)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조세프의 말에, 원할 때면 언제든 화실에 놀러 오라며 미술용품들을 선물해준다. 조세프는 어머니에게는 말씀드리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씩 쇼데의 화실에 다니기 시작한다. 일취월장하는 조세프의 그림 실력을 지켜보던 학교 선생님이 조세프의 진로를 의논하기 위해 아가트를 방문한다. 아가트는 조세프가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조세프가 다시는 쇼뎅의 화실에 가지 못하게 엄금한다. 그러나 조세프는 어머니 몰래 그림을 계속했고, 데쿠엥 부인이 그를 계속 후원한다.


한편, 막상스 질레는 이쑤뎅 출신의 사생아로서, 1806년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군대로 도피해 사병으로 복무를 시작해서, 포르투갈 원정에서 포로가 되어 ‘카브레라 영창선’에 갇혔다가 탈출한다. 그리고는 나폴레옹의 엘바섬 탈출 후에 황제 근위대 대위로 복무하다가, 워털루 전쟁 후에 군복을 벗고 귀향한다. 따라서 필리프와 막상스, 이 두 젊은 인물은 대략 나폴레옹 하강기에 군대 복무를 시작해서, 포르투갈과 러시아 원정에 참전한다. 그리고는 백일천하와 워털루 패전 후에 군복을 벗고, 1815년 이후 부르봉 왕정에 동참을 거부하며, 나폴레옹의 복귀를 믿으면서 보나파르티스트 음모에 가담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그리고는 그들의 삶은 온갖 방탕과 실패의 길로 들어선다는 점에서, 필리프와 막상스는 나폴레옹 몰락 이후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제국 군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어머니 아가트의 큰 기대와 편애와는 달리, 필리프는 직업을 잃고 방황하면서 술과 도박과 절도 등 온갖 실수와 악행을 저지른다. 그는 친척인 데쿠엥 노부인이 복권에 투자하려고 그녀의 침대 밑에 숨겨놓은 쌈짓돈을 훔친다. 그런데 바로 그 날, 그녀가 평생 동안 기다려온 당첨 번호가 나오며, 그 충격으로 데쿠엥 부인은 숨지고 만다. 이 사건으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아가트는 장남을 내쫓아버리는데, 필리프는 몰래 집안으로 숨어들어 조세프가 모작을 하기 위해 빌린 고가의 원작 그림을 훔치는 파렴치한 행위까지 저지른다. 결국 필리프는 가족에게서 쫓겨나 부랑자들을 위한 카퓌생(Capucins) 병원에 수용되고 만다.


반면에 조세프는 나폴레옹 시대에 활약했던 화가들인 그로(Gros), 쇼데(Chaudet), 제라르(Gérard) 등의 도움으로, 그리고 긍정적인 젊은이들의 서클이면서 『인간희극』에서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세나클(Cénacle)’의 일원으로서,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가게 된다.


제2부 시골 총각의 살림살이


제2부에서는 이쑤뎅으로 소설 공간이 이동하면서 시골 노총각의 살림살이를 이야기한다. 그 이동의 모티프는 루제 영감이 남긴 유산의 상속 문제인데, 그 의사는 아들 장 자크와 딸 아가트와 함께,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루제 영감은 ‘라 라부이외즈’라 불리는 플로르 브라지에(Flore Brazier)를 입양했는데, 이제는 성숙한 처녀로 성장한 그녀에 대해 루제 영감의 아들인 장 자크가 루제 영감이 죽은 뒤부터 정염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모든 유산이 그 ‘흙탕물 튀기는 여자’의 손 안으로 들어가 버릴 위험에 처하고 만다. 그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것은, 플로르가 막상스 질레를 애인으로 만들어 장 자크 루제의 집안으로까지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루제 가문의 엄청난 재산은 입양아인 플로르와 군인 출신 불량배인 막상스의 손아귀에 들어갈 위기에 처한다. 요컨대, 이쑤뎅은 그 고요한 표면과는 달리 루제 영감의 유산이라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만다. 아가트 역시 바로 이 유산 문제 때문에 이쑤뎅의 대모인 오숑 부인의 연락을 받고, 둘째 아들인 화가 조세프 브리도를 데리고 급히 낙향한다.


루제 영감의 유산을 두고 한편으로는 ‘장 자크 루제, 플로르 브라지에, 막상스 질레’가 이쑤뎅의 루제 저택을 중심으로 뭉치고, 그 반대편으로는 ‘파리의 아가트와 그녀의 두 아들, 이쑤뎅에서 그녀를 돕는 대모 오숑 부인 부부’로 나뉘어 대립한다. 결국, 베리 지방의 전통 도시인 이쑤뎅을 배경으로 루제 가문의 재물을 둘러싸고 제국의 퇴역장교 불한당들인 막상스와 필리프가 대립하는 구도로 귀결된다. 그 복잡하고 혼탁한 갈등은, 제3부의 2장인 ‘죽음의 결투’에서 필리프의 검에 가격을 당하는 막상스의 죽음으로 마감되며, 이후 이 소설은 군인 깡패이며 패륜아인 필리프의 죽음이라는 파국을 향해서 내달리게 된다.


제3부 유산은 누구에게로


제3부에서는 대단원의 막을 향해서 치닫는다. 필리프가 이쑤뎅으로 루제 가문의 유산을 구하러 가면서 시작되는 급격한 전환은, 두 적수인 필리프와 막상스의 결투에서 막상스의 죽음으로 가속된다. 결국, 필리프의 책략에 따라 장 자크 루제는 ‘라 라부이외즈’인 플로르 브라지에와 결혼해서 파리로 돌아온다. 장 자크는 파리에서 주색잡기로 탈진하여 죽고, 필리프는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법적으로 외숙모인 플로르와 결혼하고는, 그녀를 버려둔다. 플로르는 결국 알콜중독으로 비참하게 죽고, 그 탕아는 유산을 독차지한다. 10만 프랑이라는 거액의 연금을 둘러싼 결투의 승자인, 제국 시대의 퇴역 장교 출신의 필리프는 복고왕정에 협력하면서 근위대의 중령으로 복귀하고, 그 탈취한 유산으로 영지를 매입해서 ‘브랑부르 백작’이 된다. 필리프 드 브랑부르 백작은 술랑쥬(Soulanges) 백작의 딸에게 구혼한다. 그러나 술랑쥬 양과의 결혼은 그의 버려진 아내인 플로르 문제로 실패한다. 그리고 강력한 음모가인 드 마르세(de Marsay)와 라스티냐크(Rastignac)의 손에 걸려든 필리프는 대자본가인 뉘싱겐(Nucingen)과 뒤 티예(du Tillet)의 증권 조작에 휘말려 3백만 프랑이라는 막대한 재산을 모두 잃고 만다. 이는 1830년 7월의 시민 혁명으로 촉발된 시대적 변화와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고 부르봉 왕조가 시민혁명을 진압하고 계속해서 프랑스를 지배하리라는 필리프의 오판에서 기인한다. 뉘싱겐을 비롯한 자본가들은 시민계급의 승리를 믿은 반면, 부르봉 왕가에 충성하는 장교가 된 필리프는 귀족계급의 승리를 믿은 것이다. 결국, 그의 막대한 자본은 증권 투자와 시세 조작으로 대은행가들의 손아귀로 들어가고 만다. 나폴레옹 제국 이후 두 개의 왕정(복고왕정과 7월 왕정)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절대왕정에서 입헌왕정으로, 사회적으로는 전통 귀족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토지에 기반을 둔 농업경제에서 도시적 자본주의로 이행한다. 요컨대, 필리프의 증권투자 실패와 몰락은, 1830년 7월 혁명을 전후로 대자본의 금융 산업과 증권시장이 형성되던 당대의 급격한 단절과 전환의 양상을 보여준다. 요컨대 발자크는 필리프의 몰락을 통해 19세기 전반기 프랑스 사회가 전통적인 봉건체제를 탈각하고,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해 나가는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인 ‘결론’은, 필리프 브리도와 플로르 브라지에의 몰락과는 대조적으로, 진솔한 성품의 화가인 조세프 브리도의 해피엔딩 장면으로 마감된다. 필리프 사망 후, 조세프는 그 형의 브랑부르 백작 작위와 영지를 물려받고, 루제 영감의 값진 그림 유산도 소유하며, 백만장자 농부의 딸과 결혼한다. 이렇듯,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라, 동시대를 살아온 두 형제의 운명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필리프는 난폭한 군인으로서 과도한 출세의 욕망으로 파멸되는 반면, 조세프는 진정한 화가로서 결국에는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세프의 친구이며 대단한 입담을 지닌, 화가 레옹 드 로라(Léon de Lora)가 마지막 장면에서 던지는 반어는 무척 함축적이다. “멋진 백작은 멋들어진 옷을 입지. 근데 말이야, 입병(口病)은 먹다가 걸린다구!” 이는 두 형제의 대조적인 삶과 성격을, 즉 조세프의 선의와 필리프의 탐욕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표현이다.




분석


발자크가 1842년에 발표한 이 장편소설은, 그 방대한 구성이나 풍요로운 의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작품들 중 하나에 속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현대 판본들을 편집한 르네 기즈(René Guise)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 작품은 가장 많이 읽히거나, 가장 많이 인용되는 소설은 아니며, 가장 탁월한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놀랍도록 발자크적인 대작이다”. 여기서 “가장 놀랍도록 발자크적”이라는 표현은, 발자크 문학 특유의 ‘강력한 리얼리티 효과’를 지적하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파리와 이쑤뎅을 배경으로 나폴레옹 몰락 이후 제국 군인들의 방황을 주로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의 리얼리티는 섬뜩할 정도로 치열하다. 40대 발자크의 다양한 인생 경험, 원숙한 필력, 그리고 인간과 사회를 조망하는 거장의 비젼 등이 어우러지는 이 소설에서는, 당대 프랑스의 현실이 최하층에서부터 최상층에 이르기까지 거시적인 동시에 미시적인 시각으로 포착되고 있다. 특히, 대혁명 초기인 1792년에서 7월 왕정 중반기인 1839년, 즉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기에 걸쳐 거의 50년에 이르는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프랑스가 전통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이행하던 단계와 일치한다. 발자크는 분명 그 엄청난 단절의 이행 과정을 의식하면서, 당대의 혼탁한 현실을 ‘흙탕물 튀기는 여자(La Rabouilleuse)’라는 함축적인 제목으로 표현한다.


이 소설의 중심은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닌 여러 인물들로 분산되는데, 혼탁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 중에서 조세프 브리도는 이 작품에서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인 존재 방식을 견지한다. 이 화가는 『인간희극』에서 빈번하게 묘사되는 ‘물신화된 근대문명’에 물들지 않고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세나클’의 일원이다. 그리고 그는 ‘흙탕물’처럼 혼탁한 현실과의 관계에서 보기 드물게 휘말리지 않고, 소위 ‘주체(Sujet)’로서의 삶을 사는 유일한 인물이다. 요컨대, 점차 부상하기 시작하는 그림 시장의 상업성에 과도하게 매몰되지 않으면서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이 예술가의 존재 방식은 바람직한 ‘근대적 인간상’으로 제시된다.


군인과 화가인 두 형제의 삶은, 대혁명과 제국 이후 복고왕정과 7월 왕정을 통과하는 프랑스 근대사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근대 문명으로 전환하는 혼돈스런 현실에 직면하여, 그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그 단절의 시대를 체험한다. 필리프가 지나치게 현실을 추종하면서 왕정에 집착하는 것이 군인으로서 최후의 실패의 원인이라면, 조세프는 점점 더 커져가는 그림 시장에서 상업성에 매몰되지 않고 진정한 화가로서, 말하자면 ‘근대적 주체’로서 성장한다. 바로 그 점, 즉 전통사회에서 시민사회로의 이행, 그리고 모더니티 문명의 도래라는 거대한 단절과 혼란기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낸 데, 이 소설의 핵심적인 의미가 있다.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과 삶의 방식이 각각 다르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토지와 신분이 지배하는 전통사회에서 자본과 능력의 근대사회로 이행해가는, 그야말로 프랑스 역사의 전환기이다. 그 혼탁한 시대에, 맹목적으로 현실을 추종하고 물질적 유혹에 말려드는 부정적인 인물들(필리프, 막상스, 플로르)과는 달리, 조세프 브리도는 이 소설에서 주체성을 견지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말하자면 그는 압도하는 현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치 않으면서, 진정한 화가로서 삶과 예술의 가치를 추구하는 ‘근대적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나폴레옹이 칼로 시작한 일을 나는 펜으로 완성하련다.”라고 말하며 ‘문학의 나폴레옹’이기를 꿈꾸었던 발자크의 나폴레옹 전쟁 서사에 대한 관심은 열광적이며 지속적이다. 예컨대 러시아 원정 70만 대군 중 겨우 3만여 명만 살아남은 ‘베레지나 도하 작전’을 이야기하는 〈아듀(Adieux)〉(1830), 제국의 몰락 이후에도 거의 신앙이 된 프랑스 민중의 나폴레옹 숭배 신화를 전하는 〈시골 의사(Le Médecin de campagne)〉,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벌인 ‘마렝고 전투’ 동안 튈르리 궁전에서 진행되었던, 푸셰와 탈레랑의 나폴레옹 축출 음모를 그린 〈음모(Une ténébreuse affaire)〉(1841) 등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시골 총각의 살림살이〉에서 보면, 발자크의 나폴레옹에 대한 이해는 군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제국에서 정비되는 근대적 시스템에도 주목하고 있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라 라부이외즈〉라는 제목이 비유하듯이,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현실은 지극히 혼탁하고 어둡다. 크게 전후반으로 나누어, 전반부가 파리를 배경으로 화가 조세프의 성장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면, 후반부는 이쑤뎅을 배경으로 필리프가 재기했다가 다시 몰락하는 사연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 소설은 다극적이어서 다양한 광원들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브리도 가문(필리프, 조세프, 아가트)을 중심으로, 혹은 루제 가문이나 플로르와 막상스를 중심으로 읽어낼 수도 있다. 예컨대 조세프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그가 역경을 이겨내고 대화가로 커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 될 것이다. 혹은 필리프를 중심으로 읽는다면, 제국 몰락 이후 왕국에서 방황하는 퇴역 군인들의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낸 사회소설이 된다. 그리고 제목처럼 ‘흙탕물 튀기며 낚시하는 여자’인 플로르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정체되고 고여 있는 프랑스 지방을 비판하는 풍속소설이 될 것이다. 요컨대 플로르 브라지에가 이 탈중심적인 소설의 유일한 주인공은 아니다. 그런데도 발자크가 제목을 〈라 라부이외즈〉라고 붙인 데는 혼탁한 당대의 현실을 함축하는 그 표현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 발췌 논문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발자크의 『라 라부이외즈 La Rabouilleuse』 읽기 (Ⅰ) - 제국과 왕국, 그리고 ‘모더니티’ 경험〉(임헌, 〈한국프랑스학논집 50〉, 2005.)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역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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