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미안해

by 홍탁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니?” 어린 시절 동생이 왜 오빠만 좋아하냐고 따져 묻자 아버지는 약간 당황스러워하시더니 곧 침착을 되찾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이 말은 형제자매를 키우는 부모들의 레퍼토리이고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아빠가 제일로 미워!” 얼마 전 저녁식탁에서 들려온 소리는 내 귀를 의심케 했다. 그때 재원이의 뚱한 표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너… 농담이지?” 하고 물었다. 그런데 아주 작게 아이가 말을 받았다. “아니야, 진담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스마트폰 게임이 우리 틈을 벌어지게 한 줄 알았다. 바로 어제, 휴대폰을 쳐다보느라 차 문 닫는 것을 깜빡한 아이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미사 보기 전 마음 자세에서부터 게임의 폐해까지 일장 연설을 한 뒤 마지막에 쐐기를 박았다. “폰은 이제 압수야!”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여간해서 아이에게 눈길을 주지 못했다. 잘못을 훈육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고 책임이라 생각했다. 자식이 그걸 그런 식으로 뱉어내니 서운함이 밀려왔다. 거실 컴퓨터에 앉아 일을 하려고 했지만 머리는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어제 했던 말이 심했나, 지금껏 너무 응석을 받아준 건 아닌가…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설마… 재원일까. 아이는 팔을 내 목에 살며시 감더니, 펑펑 눈물을 쏟는 것이었다. 다 큰 녀석이 등까지 들썩이며 흐느낀다. “아빠 흑흑 아빠, 미안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토닥였다. “뭐가, 미안해….” “아빠, 진심이 아니야. 안 그럴라 했는데 잘 안 됐어.” 그제야 아이의 마음이 눈 녹듯 이해되기 시작했다.


‘게임을 쉽게 중단하지 못해 평소 마음이 무거웠는데 무작정 윽박지르기만 했던 아빠, 퇴근하면 동생 효준이 먼저 안아주고 사랑스런 눈길을 맞추는 아빠, 캠핑 갔을 때 내가 재미없어 하는 줄 알고 내 근처에 잘 오지 않았던 아빠… 하지만 내가 내가… 진짜 사랑하는 아빠.’


재원이가 효준이 만했던 때가 있었다. 머리를 부비며 얼마나 정겹게 얘기를 나눴던가. 머리를 쓰다듬고 시간 날 때마다 품에 안아주지 않았나. 이제 머리가 조금씩 커지면서 엄마아빠 말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고, 생활습관이 잘못되었다고 내 기준에만 맞춰 아이를 나무랐다.


‘1분 꾸중’이란 훈육법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아이가 잘못한 일을 바로잡아 줄 때 앞의 30초는 아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해주어야 한단다. 그리고 다음 30초가 중요한데, 숨을 깊이 쉬면서 침착을 되찾고 아이가 소중한 존재임을 따뜻한 말로 깨우쳐주는 것이다. “너는 착한 아이야, 아빠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이다.


잘 익은 사과를 재원이와 사이좋게 깎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믿음이 생겼다. 우리가 하느님께 사랑으로 다가가기만 하면 곧바로 우리를 다독이며 속삭여주시리라는 것을. “착한 아이야, 난 늘 너를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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