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램펄린 사건

by 홍탁
일러스트 김민선

“여보, 효준이가 다쳤어!”

휴대폰에서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실려 왔다. 태권도장에서 1인용 트램펄린을 뛰다가 아이가 거꾸로 처박힌 것이다. 육각형의 트램펄린은 주위가 단단한 스틸로 되어 있다. 높이 뛰어올랐다 내려오며 아랫입술 밑이 거기에 부딪혔으니 연약한 피부가 남아날 리 없었다.


아내에게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라 하고는 얼른 집으로 달려갔다. 뜻밖에도 아이와 아내는 동네 치과에 있었다. 아랫입술 안쪽이 찢어져 당장 꿰매야 하는데 치과라니! 하지만 아랫니도 흔들리고 있어서 치과에 오면 시술이 가능할 것 같다는 아내의 얘기를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일반 치과에서는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위층 어린이치과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효준이는 몸을 사시나무 떨 듯 했다. 그치지 않는 피도 무서웠겠지만 이래저래 마음의 충격이 컸으리라.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어린이치과는 인산인해였다. 그 작은 공간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사정을 말했다.

“선생님, 아이가 아픈 것도 잘 참으니 꼭 치료받게 해주세요.”

일반 치과에서 어린이를 잘 받지 않는 이유는 아이가 너무 울면 다른 환자 진료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잠시 고민하던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결국 효준이를 불러주었다. 덜덜 떨고 있던 효준이가 엄마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은 안 해도 아프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득 찬 눈빛이었다. 아이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아이는 잡은 손에 힘을 주고는 눈을 꼬옥 감았다. 마취주사를 놓을 때도 한 바늘 한 바늘 꿰맬 때도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랫니가 흔들리지만 조금 지켜보자면서 효준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참 잘 참았어, 효준아.” 처음엔 무뚝뚝했지만 의사 선생님에게 우리 사정을 잘 얘기해주었던 간호사도 옆에 서 있다가 “정말 다행이야.” 하며 아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 우리 가족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마취가 풀렸는지 통증을 호소하던 효준이는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내는 고마운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우선 응급처치를 잘 해준 태권도 관장님, 큰 병원 응급실보다는 치과를 가면 어떻겠냐고 조언해준 마음씨 좋은 택시기사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알아준 간호사님과 의사 선생님, 모두가 은인이었다. 무엇보다 보채거나 울지 않고 이 모든 과정을 잘 참아낸 효준이가 제일 대견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효준이는 어느새 초등학교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글도 술술 읽고 키도 부쩍 자란 아이가 이번 일을 겪으며 좀 더 성숙해진 느낌이다. “학교 가면 가장 좋은 게 뭐야?”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을 한다. “형아가 있잖아~” 형에게 바짝 다가가 묻는다.

“형! 나보다 몇 층 위에 있어?”

“하나, 둘, 셋, 그 위에!”

“와, 엄청 높다.”

“형 우리 교실에 와라.”

“왜?”

“어 그냥 한번 와줘.”

둘의 대화를 듣다가 풋 웃음이 새어나왔다. 6학년 형이 1학년 교실에 와서 아는체해주면 뭔가 으쓱할 것 같다는 거겠지. 희미하지만 저학년 시절, 6학년 형 누나들이 얼마나 커보였던가.

“오늘은 일찍 자야 해~”

상처가 잘 아물려면 잠을 푹 자야 한다고 일러주니 아이가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이불을 탁탁 펴고 머리맡에 인형을 잘 정리하고 은은한 스탠드를 켠다. 그리고 하나 더! 학교에 매고 갈 책가방 안을 살피고 신발주머니까지 점검한 뒤 침대 옆에 살포시 놔두었다. 아이 방문을 살며시 닫아주면서 절로 감사기도가 나왔다.


‘시련을 참아내고 새 빛을 맞이하는 일상의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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