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향기

by 홍탁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런데 더 와닿는 속담이 있다.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간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 간에 주고받는 말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러스트 김민선


그날도 작은 말이 우리 부부의 사이를 갈라놓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슬며시 안방 문이 열리더니 작은 틈으로 주먹만 한 머리통이 들어왔다. 눈을 반짝이며 효준이가 물었다. “아빠 엄마 괜찮아?” 엄마 아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는지 어느새 쪼르르 달려온 거다.


불현듯 작년에 인터뷰하러 갔다 만난 부부가 떠올랐다. 험한 일 숱하게 겪은 농부의 입에서 그래도 자식 농사 하나만큼은 잘 지은 것 같다며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래서 얼른, 비결을 알려 달라 보챘다. “우리는 아이들 있는 데서 절대 다투지 않습니다.” 일단 문밖을 나가서 어디를 걷든 아니면 앉아서든 얽힌 감정을 푸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우리 부부도 밖으로 나갔다. 봄이 오는 소리는 밤에도 들려왔다. 가로등 불을 받은 벚꽃들이 거리 곳곳에 빛을 뿌렸다. 꾹꾹 쟁여놓은 마음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듯 했다. 걸으며 이 말 저 말 나누다 보니 사실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부부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살리는 말’을 해야 함을 알았다.


아이들도 부모의 말에 민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너는 왜 그러니?’같이 친구는 물론 형제끼리도 비교하는 말을 싫어한다. 아빠든 엄마든 버럭 화를 내며 아이의 말을 싹둑 자르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휴대폰 게임을 매일 시간제한을 두어 하게 하는 재원이에게 ‘게임하는 것처럼 집중해서 공부 하라’는 말은 빙빙 돌려 상대를 비꼬는 말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게임을 줄여보자고 몇 가지 제안을 하는 게 낫다. 내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생각해보고 말하는 사람이 ‘배려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이들 앞에서 말을 매너 있게 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가장 위대한 교육이 된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3월 19일부터 내년 6월 26일까지를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로 선포하셨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의 내용을 널리 나눌 것을 권하셨다. 권고를 읽다가 보석 같은 말들이 있어 함께 나누고자 한다.


먼저 “부모의 사랑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도구”라고 했다. 특히 부부간의 사랑을 가리켜 “한 생명의 원천, 환대하는 둥지, 가정의 기초”라고 표현했다. “이런 사랑이 없으면 아이는 자의적인 소유물이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부부 사랑의 핵심을 설명한 교황님의 말씀을 꼽는다면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배려하는 말하기의 시작도 어쩌면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다음날이었다. 퇴근한 아빠에게 활짝 웃으며 달려오는 재원이와 효준이의 품에 오랫동안 고개를 파묻었다. 몽글몽글 김이 솟는 저녁 밥상에는 뭔가 모를 온유함이 깃들어 있다. 밥상을 물리고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효준이가 가벼운 몸짓으로 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아빠 엄마! 화해했구나.” 멋쩍어하며 우리 부부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 둘 다 눈이 시큰해진 것을 알았다.


#육아 #아빠가최고야 #말의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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