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이었다. “어서 숙제해야지.” 수학 학습지를 몇 장 덜 푼 효준이에게 엄마가 은근히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상 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곤충 채집통 속 암컷 사마귀와 눈을 맞추며! 며칠 전 산책을 나갔다 효준이 눈에 든 녀석이었다.
기운이 떨어지고, 자꾸만 마음과 다른 말이 나가는 날이 있다. 그럴 때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한번 나서보길 권한다. 그냥 아이와 걷는 풍경과 공기의 냄새만으로 굳어 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물론 아이가 아빠와의 산책에 선뜻 응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아이에게 슬쩍 미끼를 던진다.
“여치가 아직 많던데… 잠자리도 잡아볼까?”
두말 않고 채집통을 들고 와 아빠를 따라나서는 아이의 뽀얀 얼굴엔 설렘과 기대가 떠오른다. 우리 부자는 부용천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이번엔 처음으로 윗길을 택해보았다. 아랫길은 운동하는 사람들이 제법 되는데 윗길은 참 조용하다. 풀 향기와 시원한 바람이 몸 곳곳에 스며든다.
“아빠! 사마귀야 사마귀!” 갑자기 효준이가 소리를 지르는 통에 잠깐의 평화는 즉시 반납해야 했다. 엄청난 데시벨의 음파를 감지한 건지 진녹색의 버마재비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돌아보았다.
아이에게는 단단히 약속을 받았다. 딱 일주일만 키우고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자고. 게다가 우리에게 포획된 사마귀는 곧 어미가 될 몸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뭇가지에 알집을 만들어 붙일 것이다. 그런데 녀석을 데리고 올 때만 해도 미처 먹이에 대한 생각을 못했다. 파브르 곤충기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파브르가 사마귀의 생태를 관찰하기 위해 몇 마리 잡아왔다가 살아 있는 먹이만 먹는 습성 때문에 곤란함에 처하는 장면 말이다. 그래서 그가 낸 꾀가 아이들이 사마귀 먹이를 잡아올 때마다 맛난 사탕을 한가득 안겨주는 것이었다.
일러스트 김민선
그렇게 이틀이 훌쩍 지난 오늘. “아빠, 사마귀가 많이 배고픈 거 같아.” 숙제하라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들은 채 하염없이 통 안을 바라보는 효준이의 뒤통수가 조금 슬퍼보였다. 퇴근 후에 편한 복장으로 있던 나는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고 아이에게 속삭였다. “효준아, 먹이 구하러 가자.”
사실 나는 이 핑계로 아이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고 싶었다. 해가 막 진데다 방금 전에 내린 이슬비로 숲은 더없이 싱그러웠다. 이 작은 자연의 세계에도 참으로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은가.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덤불 쪽으로 조그만 귀를 갖다 대었다. “이렇게 소리가 나, 쯔잇딱 쯔잇딱!” 정말 거기를 보니 베짱이가 풀잎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아이 손을 잡고 일찌감치 천변으로 나갔다. 지난주에 사마귀를 만났던 바로 그 자리에서 효준이는 슬픈 표정으로 이별식을 치렀다. 풀숲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사마귀는 이제 새끼 낳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할 것이다. 그동안 원 없이 아이와 산책을 즐겼던 나로서는 슬며시 입 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