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는 소설이 작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질 못했었다. 소설은 인물, 사건, 배경의 3요소가 주제, 구성, 문체로 오밀조밀하게 엮여 평론가들이 그 글을 보고 소설 이상의 분량 혹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어야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수도회의 L수사가 쓴 책을 읽다가 그 수사의 휴대폰 배경화면에 왜 한 노인의 사진이 떠 있는지를 설명해준 대목에서 작은 이야기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배경화면의 할아버지는 L수사가 머물렀던 스페인의 수도원에서 주방 소임을 맏고 있던 C 수사였다. C 수사는 아주 단순한 삶을 살았다. 그의 낙은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거였다. 기껏해야 대여섯 문장이 다였다. “가브리엘, 너 잘할 수 있을 거야. 공부, 기도할게.” 뭐 이런 식이었다. L 수사는 C 수사가 그런 메일을 보내올 때마다 제대로 답을 못드렸단다. 아주 짧게라도 답하면 됐을 것을. 그는 당시에 자신이 학업에 너무 지쳤다고 했지만 그때를 돌아보면 너무 게을렀다고 후회했다. 어느날 노 수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L 수사의 메일함에는 노 수사의 약력이 도착했다. 원래 이 수도원에서는 형제가 세상을 떠나면 A4 용지 한 장 정도의 분량으로 고인의 약력을 쭉 써서 소속된 모든 수사들에게 메일로 전송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C 수사의 약력은 지극히 간단했다. 19세에 수도회에 입회하여 20세에 수련을 받고 21세에 첫 서원을 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히혼으로 발령받았다. 23세에 주방 소임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42년 동안 주방 소임을 다했다. L 수사는 이 약력을 읽고 펑펑 울었다. 한 인간의 생애가 이토록 간단한 문장들로 이루어질 수 있다니.
그제야 S는 한 인간의 생애가 단 한 줄로 요약된다 하더라도 결코 그것은 작은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앞으로 쓸 이야기는 사람들에 관한 작은 이야기이다. 그 안에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고 희망이 있다. S가 회사에 잠시 염증을 느끼고 사람 관계에 회의를 갖고 누구 하나 터 놓고 말할 상대가 없음에 우울감을 품었다가 바로 이 작은 이야기들에 길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아, L 수사는 가난한 청년들을 위한 밥집을 운영한다. 그가 그랬다. "수사님 정도는 닮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매일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그 봉숭아물 들인 듯한 주황색 손톱. 매일같이 맨손으로 한 음식의 양념이 잔뜩 배어 지워지지 않는 손톱의 색깔을 말이죠.(이문수, 누구도 벼랑끝에 서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