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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Mar 07. 2022

백수 말고 다른 말 없을까요?

 백수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


 평일 오전 12시. 야트막한 동네 뒷산 운동장. 남학생들이 우렁차게 “ssival”을 뱉으며 농구를 하고 있다. 발음과 발성이 또랑해서 산에 올라서서 제일 먼저 듣는 소리다. 아저씨들은 윗몸일으키기 기구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운동을 한다. 윗몸일으키기 기구의 눕는 면에는 뽀로로 바닥 매트가 붙어있다. 나뭇잎이 없는 나뭇가지에는 형형색색 훌라후프가 열매처럼 걸려있다. 그 옆 벤치에는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 종아리를 걷고 볕을 쐰다. 나도 슬쩍 옆에 앉아 종아리를 걷고 볕을 쐬고 싶었으나 용기가 부족해 뒷산을 빙글빙글 걸었다.


 빙글빙글 걷다 도서관에 갔다. 고요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도서관은 소곤소곤 소란스럽다. 초등학생 여자아이 2명이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는다. 귓속말을 하는데 나에게도 귓속말이 들린다. “너 언제 갈 거야?” 내가 책 1장 읽고 폰 만지는 사이 초등학생들은 굉장한 집중력으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린다.


 도서관을 나와 예스마트에 들렀다. 예스 마트 사장님은 365  365 가게에 있다. 예스마트의 간판은 등대처럼 동네를 비춘다. 나는 과자  개를 골라 계산을 하는  사장님이 “요즘 회사 안다녀?”라고 묻는다. 평일 오후에 가게에  내가 의아했나 보다. 나는 오른쪽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다녀요. 하하이라고 했다. 반응 속도가 굉장해서 나도 놀랐다. 춤추듯 거짓말하고 나왔고 연극이 끝난 무대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예스마트 사장님의 질문에 춤추듯 거짓말   답에 얹혔다. 나를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일하지 않으면 나를 설명하기 어렵다.  ‘바쁘시죠?’라는 안부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칭찬처럼 들리듯이 백수(건달)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은은한 무시가 느껴진다. 이유 없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이 나를 자주 주저하게 했다.  


 볕이 있는 시간에 걸었다. 오래 볕을 쐐서 몸 안까지 따듯했다. 그늘에 있어도 따듯했다. 일하며 읽을 수 없었던 긴 호흡의 책을 읽었다. 내가 보내고 싶었던 날이다. 스스로를 소개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할 때 엄마는 나에게 "너? 백수지."라고 알려줬다. 알려줘서 고오맙습니다. 발끈해서 "백 수아니 야. 자연인이야!"이라고 했다.  가끔 "백숙 먹을래?"라는 소리에도 "뭐 백수?"라고 발끈했다. "아~백숙~" 머쓱하네. 일을 하지 않는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자유로운 자연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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