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문적으로 게으르다.* 그 역사는 유구하다. 4인 가족 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하는 야무진 딸이었다. 나는 그 역할에 진심이었다. LPG 가스통 밑에서 열쇠를 꺼내 집 문을 여는 것이 시작이었다. 10살에는 고추장 잔뜩 넣은 맛없는 김치볶음밥을 만들 수 있었다. 주변 어른들이 "딸이 참 야무지네요." 칭찬했고 칭찬을 더 듣기 위해 집안 살림에 정진했다. 야무진 딸은 학기 중의 모습이었고, 방학이 되면 나는 살림을 파업하고 하루 종일 TV를 봤다. ebs에서 오전 8시에 하는 <빨간머리 앤>을 시작으로 투니버스를 보다가 재밌는 게 안 하면 영화마을**에 가서 <짱구는 못 말려>를 잔뜩 빌려봤다. 초등학생일 때 유행하던 <프린세스 다이어리>라는 게임이 있었다. 여자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게임이다. 성인이 되기까지 단계가 많은데도 하는 하루 4시간 이상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하며 하루 1명씩 성인으로 키웠다. 부모님은 학기 중에 야무진 딸의 모습을 봐서 나의 파업을 눈치채지 못했다.
회사 다닐 때도 근면하게 일했지만 쉬는 날은 어김없이 게을렀다. 근면했던 주중이 주말의 좋은 핑계가 되었다. 하루 죙일(게으름에는 종일보다 죙일이 어울린다.) 누워있었다. 감지 않은 머리. 떡이 되다 못해 두피가 아팠다. 폰 사용시간이 10시간을 우습게 넘었다. 하도 누워있어서 뇌가 한쪽으로 쏠린 것처럼 머리가 저린다. 그러다 다시 스르르 잠들고 그러다 또 스르르 깨서 배달앱을 켠다. 시킬 때는 맛있어 보였던 엽떡이 몇 입 먹으니 속만 더부룩하다. 게으름의 농도가 90% 이상이 되면 스스로도 게으름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데, 이때 부랴부랴 일어나서 샤워하고 청소한다. 최고치로 게으르다가 싹 치우는 쾌감이 있달까. 집 밖을 나설 땐 출소라도 한 것 같다. "이건 아니야." 터져 나와도 나의 게으름 역사 앞에서 그 말은 힘이 없다. 백수라서 게을러진 게 아니라, 게으른 사람이 백수가 된 것이다. 게으름과 절교하고 싶었지만 방법은 늘 오리무중이었다.
인간이 되고 싶었던 곰처럼 나는 게으름 전문가지만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었다. 아침형 인간인 명희가 나를 보며 "하루 죙일 집에 있었냐?"라며 우쭐댈 때는 더 그랬다. 명희는 아침형 인간을 너머 새벽형 인간이다. 집에 있으면 몸에 줌이 쑤셔 아프다고 한다. 회사 동료와 갈등이 있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때 명희는 출근시간이 점점 당겨지더니 새벽 3시에 일어나서 4시에 출근하는 기행을 일삼았다. 명희는 매주 토요일 새벽에 목욕탕을 가는데, 전날 밤 "엄마. 목욕탕 같이 가. 나 꼭 깨워죠." 예약을 해둔다. 명희는 내심 혼자 가고 싶어서 귓속말로 깨우는 데 나도 그걸 알아서 토요일 새벽에는 깨우면 바로 일어난다. 잠을 달고 목욕탕에 가서 간단히 샤워하고 미탕에 둥둥 떠있다가 열탕에서 반신욕 하다가 다시 미탕에 둥둥 떠있는다. 몸이 늘어지면 엄마가 있는 건식 사우나에 간다. 모래시계 뒤집으며 엄마와 친구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흐 더버더버!"를 외치며 냉탕 앞에서 찬물을 챱챱 끼얹는다. 발 동동 구르며 냉탕에 들어간다. 정신이 쫄깃해진다. 부지런한 명희 등에 업혀 아침형 인간을 흉내 내면 그날은 나도 아침형 인간으로서 우쭐해질 수 있다.
반강제로 회사를 다니거나, 엄마 등에 업혀 하루를 시작하거나, 친구와 약속이 있을 때는 노력하지 않아도 부지런히 지낸다. 최고 농도의 게으름을 보낸 뒤 다음 날은 무리해서 부지런히 보내지만 무리한 부지런함이기 때문에 더 쉽게 게으름으로 돌아간다. 새 다이어리를 사서 첫 장은 성실히 쓰지만 결국 다 채우기 못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그런 식의 게으름이 내가 무엇이 되든, 어디에 있든 그 문법을 반복했다.
*게으름을 발음할 때 입모양조차 게으르다. 한국어 모르는 외국사람이 들어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발음과 입모양이다.
**OTT가 없던 옛날 옛적에는 VHS 비디오를 빌려주는 가게가 있었답니다. 오프라인 버전 넷플릭스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