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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Feb 19. 2022

실업급여(2)

  실업급여 신청기간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실업인정을 받기 위해 직업심리검사를 했다. 개인 성향, 성향에 맞는 직군, 현재 자산 등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MBTI 검사하듯 즐겁게 했다. 심리검사를 하다가 발견한 한 가지 질문.  


‘기존 근무했던 직군과 다른 직군을 준비하기 위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까?’


 신입 퇴사자가 된 나는 불안해하느라 바빠서 내가 가진 여유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 누군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면 나도 봐야 하나? 토익 시험을 친다고 하면 나도 시험 봐야 하나? 같은 직군으로 이직을 한다고 하면 나도 6년이나 일했는데 같은 직군으로 가야 하나? 했다.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눈앞에 알 수 없는 게 지나가면 홀린 듯 고개만 이리저리 휙 휙 돌렸다.


 영화관에서 일하기 전 나는 독립영화, 예술영화에 관심이 관심 없었다. 돈 없고 시간만 많던 취업준비기간. 까슬한 얼굴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때 친구가 일하던 영화관에서 스탭을 구한다고 해서 지원했다. 그렇게 영화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싱거운 입사 과정이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근면하게 일했다. 비자발적 퇴사 덕에(?) 받게 된 실업급여와 6년 동안 근면했던 과거의 내 덕분에 경제적 여유가 있었고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의 기준으로는 여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냥 쉬고 싶었다. 내가 쉬고 싶은 만큼. 충분히.     

 

 한 달에 한 번 고용센터의 실업인정 신청 안내 문자를 받고 잠깐 직장인이 된냥 실업급여 신청을 했다. 실업급여는 소문대로 달콤했다. 그리고 마지막 실업급여를 받는 날. 고용센터는 나에게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AI의 탈을 쓴 직원이 보낸 듯하다. 내쫓기듯 퇴사했던 회사에서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는 직원 AI에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보냈다.


 신입 퇴사자는 다짐했다. 눈치 보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야지. 그게 뭐든. 다짐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게 어색하고 어설퍼서. 그래서 일단 자꾸자꾸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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