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개인 물품 정리만 남은 줄 알았는데 창고 정리가 추가되었다. 영화관 한편에 나와 스태프들이 일하는 공간이 있고, 일하는 공간 뒤에는 긴 창고가 있다. 창고에는 그동안 상영했던 영화 리플렛, 포스터, 배너, 굿즈, 상영본들이 있다. 매일 물건들이 들고 나기 때문에 창고는 항상 적당히 어수선하다.
창고 정리 인력은 스탭 제희와 나 둘 뿐. 먼저 버려야 할 것들을 창고 밖으로 꺼냈다. 창고가 좁고 길어서 그런지 들어갈 때마다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배너 거치대가 산을 이루고 그 옆에 배너가 산을 이룬다. 그리고 그 옆에 영화 리플렛, 포스터, 굿즈들이 산을 이룬다. 같은 층을 쓰는 동료, 미화팀 이모님이 그 산맥을 보고 외마디 탄성을 뱉는다. 나는 착한 눈을 하고서 그녀들의 도움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체력이 재산인 그녀들은 ‘수고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일터로 사라졌다.
영화관이 개관한 이래로 모아둔 개봉작 포스터, 리플렛들을 보고 있으니. 뭐랄까. 아련한 마음이 되었다. 개봉작 포스터, 리플렛을 모으는 일은 단순한 일이었지만 중요한 일이었다. 폐기하고 나면 다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신경 써서 모았다. 영화관이 처음 생기고 일했던 일꾼부터 어쩌다 영화관을 닫게 되는 나까지. 포스터와 리플렛 모으는 일은 끊기지 않고 폐기하는 오늘까지 이어졌네.
제희와 나는 부지런히 그 산맥을 야금야금 1층 소각장으로 옮겼다. 앉아서 일할 때는 밥때가 돼도 배고프지 않았는데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몸을 쓰며 일하니 밥때가 되기도 전에 배고팠다. 나는 입 밖으로 ‘아닛 우리가 이런 것도 해야 해요?!’이라고 했지만 알맞게 피곤하고 보람찼다. 생각과 감정이 흐려져서 마음이 편했다. 일주일 정도 가볍게 몸 쓰는 노동자로 살았다.
나보다 먼저 자발적으로 퇴사했던 스태프들에게 영화 굿즈와 짧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퇴사라는 핑계로 스태프들에게 택배를 부칠 수 있어서 좋았다. 모든 정리가 끝났다. 끝났군. 평소대로 마감 업무 하듯 암전 된 영화관을 확인하고 느린 걸음으로 퇴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