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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Dec 24. 2021

권고사직

 결정해야 했다. 권고사직을 할지. 말지. 머릿속이 권고사직으로 가득 찼다. 권고 사직서에 서명하면 돌이킬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니. 점심메뉴도 잘 못 고르는데! 하루 종일 권고사직이 머리를 떠다녔다. 불안한 마음에 동료들에게 전화했다. 권고사직을 결정한 동료와 연락하면 나도 그래야 할 것 같고,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동료와 연락하면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만 무른 상태로 있었다. 권고사직을 했을 때, 안 했을 때의 장단점을 적어보았다. 별 차이 없었다. 별 차이가 없어서 고민하게 되었다. 권고사직을 하는 게 회사가 원하는 걸 들어주고 도망치는 것 같았고 어느 날은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사를 다니는 게 도망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1년 안식년 갖고 싶어요.”     


 근면하게 일하던 시절. 나는 같이 일하는 스탭에게 안식년을 갖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나중에는 음을 붙여서 노래로 만들었다. 노랫말만 거칠게 퇴사, 안식년을 넣어 불렀을 뿐 근면하게 일했다. 그리고 권고사직을 고민하는 지금. 그 노랫말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회사에 갔다. 혼자 회의실에 덩그러니 앉아있으니 인사과장*이 서류와 함께 들어와 나에게 서류를 건넨다. 나는 권고 사직서에 이름을 쓰다 말고 대뜸       

 

“다시 고민해볼게요.”

“하. 선선 씨. 내가 전에 있던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선선 씨보다 인생을 더 산 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 서명하고 새로 시작하는 게 선선 씨한테 좋아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권고사직하고 내일 배움 카드로 기술 배워서 재취업도 하고...”

“부탁드려요.”

“하. 나 점심시간 약속이 있어서 시간이 없어요.”      


 인사 과장의 허기보다 나의 결정이 중요했기에 나는 점심시간이 지나서 다시 오겠다고 했다. 나는 자주 가던 비건 레스토랑에서 단호박 스프를 시켜놓고 스프 그릇만 만지작거리다 나왔다. 서늘한 건물 그림자를 피해 볕에 서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허기가 가신 인사과장을 만났다. 권고 사직서와 기타 등등 서류에 서명했다. 많은 서류에 기계적으로 서명을 하고 있으니 핸드폰 대리점에서 핸드폰 개통하는  알았다.       


 사무실을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애매한 오후 3시. 한산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양화대교를 지나면 복잡한 도로 사이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정원을 버스가 크게 빙 돈다.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이 무표정을 하고 서있다.       

          


*님이라고 붙이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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