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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Dec 31. 2021

창고 대방출

 이제 개인 물품 정리만 남은 줄 알았는데 창고 정리가 추가되었다. 영화관 한편에 나와 스태프들이 일하는 공간이 있고, 일하는 공간 뒤에는 긴 창고가 있다. 창고에는 그동안 상영했던 영화 리플렛, 포스터, 배너, 굿즈, 상영본들이 있다. 매일 물건들이 들고 나기 때문에 창고는 항상 적당히 어수선하다.     


 창고 정리 인력은 스탭 제희와 나 둘 뿐. 먼저 버려야 할 것들을 창고 밖으로 꺼냈다. 창고가 좁고 길어서 그런지 들어갈 때마다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배너 거치대가 산을 이루고 그 옆에 배너가 산을 이룬다. 그리고 그 옆에 영화 리플렛, 포스터, 굿즈들이 산을 이룬다. 같은 층을 쓰는 동료, 미화팀 이모님이 그 산맥을 보고 외마디 탄성을 뱉는다. 나는 착한 눈을 하고서 그녀들의 도움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체력이 재산인 그녀들은 ‘수고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일터로 사라졌다.   

   

 영화관이 개관한 이래로 모아둔 개봉작 포스터, 리플렛들을 보고 있으니. 뭐랄까. 아련한 마음이 되었다. 개봉작 포스터, 리플렛을 모으는 일은 단순한 일이었지만 중요한 일이었다. 폐기하고 나면 다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신경 써서 모았다. 영화관이 처음 생기고 일했던 일꾼부터 어쩌다 영화관을 닫게 되는 나까지. 포스터와 리플렛 모으는 일은 끊기지 않고 폐기하는 오늘까지 이어졌네.      


 제희와 나는 부지런히 그 산맥을 야금야금 1층 소각장으로 옮겼다. 앉아서 일할 때는 밥때가 돼도 배고프지 않았는데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몸을 쓰며 일하니 밥때가 되기도 전에 배고팠다. 나는 입 밖으로 ‘아닛 우리가 이런 것도 해야 해요?!’이라고 했지만 알맞게 피곤하고 보람찼다. 생각과 감정이 흐려져서 마음이 편했다. 일주일 정도 가볍게 몸 쓰는 노동자로 살았다.      


 나보다 먼저 자발적으로 퇴사했던 스태프들에게 영화 굿즈와 짧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퇴사라는 핑계로 스태프들에게 택배를 부칠  있어서 좋았다. 모든 정리가 끝났다. 끝났군. 평소대로 마감 업무 하듯 암전  영화관을 확인하고 느린 걸음으로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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