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2부. 신전과 궁전, 권력과 음모의 공간 (16~30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1173년, 이탈리아 피사.
부유하고 번영하던 해상 공화국 피사는 그들의 힘과 부를 과시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대성당, 세례당, 그리고 그 옆에 세울 거대한 종탑.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었다.
대리석이 빛나는 광장을 둘러싸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피사의 새로운 종탑이라니… 정말 대단하군.”
“그래,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탑이 될 거라고들 하더군.”
대리석을 손질하는 석공들, 설계를 지휘하는 건축가들, 그리고 피사의 영광을 바라보는 귀족들.
모두가 그날을 기억할 것이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군.”
초기 설계를 맡은 건축가 보넬로 피사노(Bonanno Pisano) 는 한숨을 내쉬며 기초 공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원형 기둥들이 우아하게 늘어서 있었지만, 그의 눈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그 옆에서 건축 감독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지반이 너무 약해. 땅이 단단하지 않아 기초를 제대로 잡지 않으면 무너지기 쉽상일 거야.” 보넬로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피사의 원로원은 공사를 멈출 생각이 없어요.”
피사의 땅은 진흙과 모래, 점토가 혼합된 부드러운 지반이었다. 건물을 지탱하기엔 너무나도 불안정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공사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저 더 많은 대리석을 가져다 쌓아올리기만 했다.
건축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3층까지 완성되었을 때, 피사의 시민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보넬로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저것 좀 봐! 탑이 기울고 있어!”
한 노인이 외치자 군중들이 술렁였다.
“어떻게 된 거죠?”
“건물이 기울어진다고?”
보넬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기초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무거운 대리석 구조물을 쌓아올리자, 탑은 점점 남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피사의 사탑은 오랜 세월 동안 기울어진 상태로 방치되었다.
전쟁과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공사는 수십 년간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땅은 다소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피사의 사탑은 미완성된 실패작으로 남아 있었다.
“기울어진 탑을 그냥 둘 셈인가?”
“어쩌겠는가. 다시 건축을 시작하면 또다시 무너질 테니.”
그러나 1272년, 건축가 조반니 디 시모네(Giovanni di Simone) 가 공사를 다시 맡게 되었다.
그는 기존의 설계를 일부 수정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탑을 세우기 시작했다.
조반니는 탑이 기울어진 방향의 반대쪽으로 상층부를 더 길게 설계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오히려 탑의 무게를 더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 높이 쌓아올려라! 기울어진 쪽을 균형 있게 맞추기 위해서라도!”
그의 외침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광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방법도 한계가 있었다.
기울어짐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졌다.
“이 탑은 정말로 저주받은 것인가?” 사람들이 속삭였다.
시간은 흘러 피사의 사탑은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탑의 기울기는 매년 조금씩 증가했고, 붕괴의 위기가 닥쳐왔다.
“이대로 두면 탑은 무너질 겁니다.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해요!”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이며 경고했다.
1990년, 피사의 사탑은 안전 문제로 폐쇄되었다.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거듭했고, 마침내 새로운 방법이 고안되었다.
“기초를 보강하고 북쪽의 흙을 제거하면 탑의 기울기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의 노력은 성공했다. 탑의 기울기는 약간 줄어들었고,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고정되었다.
오늘날 피사의 사탑은 이탈리아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울어진 탑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웃음을 짓지만, 그 뒤에는 수 세기에 걸친 도전과 극복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피사의 사탑은 기울어져야만 하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