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프리 티백차를 찾기 위한 여정
나는 부엌에서 일을 한다. 우리가 운영하는 공유부엌이 낮에는 우리에게 사무실이다. 일을 할 때는 음료나 차를 옆에 끼고 있어야 하는데, 부엌에 굴러다니던 이것저것 종류의 차가 바닥이 나고, 다시 차를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는 티백차를 마신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지, 일하면서 일만 하는 종류의 인간이라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는 그런 여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건지, 하여간 나는 티백차를 찾게 되었다.
나의 소울티는 홍차다. 힘든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이 더 그립듯이, 유학 시절 마지막 해, 졸업 작품을 하며 땅굴을 파고 있던 나와 같이 했던 이가 홍차다. 뭐 대단히 고급스러운 브랜드 티가 아닌 아무 슈퍼에서나 살 수 있는 립톤 틴케이스 잎차는 아무리 마셔도 줄어들지 않았다. 홍차는 우유를 좀 넣어 마셔도 좋고 레몬 한 조각 띄워도 좋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 알싸한 찻잎의 향과 붉은 차의 빛깔, 떫은맛까지. 물처럼 마셔대도 질리지 않는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티백으로 된 ‘홍차’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정확히는 플라스틱 포장이 없는 티백 홍차. 반론의 여지가 없진 않지만 구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맨 아래 티 브랜드가 소개되어 있다. 티백차는 보통 비닐 포장된 종이 상자나 비닐 파우치에 담겨 있다. 또 티백을 비닐 코팅된 티백 봉지로 개별 포장한다. 차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포장에 플라스틱 사용이 불가피해 보지이지만, 사실 포장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티백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나온다고요
캐나다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 연구팀에 따르면 티백 하나에 116억 개의 마이크로 플라스틱 조각과 31억 개의 나노 플라스틱 조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기사 참고) 이런 정도라면 내가 먹은 마이크로 플라스틱은 이미 만억 개는 족히 넘을 것 같다. 무서운 이야기를 길게 하지는 말자. 이 연구에 사용된 티백은 플라스틱 소재 티백이다. 보통 삼각뿔 모양인 매쉬 티백.
하지만 우리가 종이라고 알고 있는 티백도 종이만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다. 티백에 폴리프로필렌(PP)이 2~30% 들어간다. 95℃ 뜨거운 물에서 티백 종이가 터지지 않고 버텨야 하기 때문에 PP 사용이 불가피하다. 티백에 포함된 플라스틱 양이 많지 않더라도 미세 플라스틱이 나올까 걱정되기는 마찬가지.
영국 티백 스캔들의 본말
영국 사람들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한단다. 내 집 뒷마당에서 난 꽃으로 집안을 꾸미고 그곳에서 난 채소로 음식을 하고, 낭만적이다. 뒷마당에서 퇴비도 직접 만들고, 오가닉하기 까지. 그런데! 그동안 영국인들은 가정에서 만드는 퇴비에 티백을 버려왔다. 티백이 종이와 찻잎으로만 이루어진 놈이라 생각한 영국 사람들은 티백이 썩는 물건이겠거니 하고 정원 퇴비에 버려온 것. 여기에 플라스틱이 들어있었다니. 차 메이커들은 티백에 들어간 플라스틱 양이 미세하다, 다 썩을 수 있다 주장했지만, 영국인들은 경악했다. 내 정원에 플라스틱이 쌓여 있다니.
영국인들은 하루 1억 잔 이상(165,000,000잔)의 차를 마시고 그중 96%가 티백이다. 티백 하나에 들어갔을 플라스틱 양이 아무리 작더라도, 무시 못할 양. 이후 차 메이커들은 티백의 재질을 바꾸는 시도를 해왔고, 대부분 2020년까지 생산하는 전 제품에 적용하는 것으로 목표를 잡아보았지만!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 재앙에 그 목표가 전부 실현되지는 못했다. 영국 차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에 지속가능성(susutainablity)이라는 메뉴창이 별도로 있는 걸 보며, 영국 대단한데! 했는데, 그 뒤에 이런 숨은 스토리가 있었다.
해결방안은 생분해 플라스틱?!
영국 플라스틱 협약(UK Plastics Pact)은 티백을 생분해 가능한, 썩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라고 권고한다. 대부분의 티 메이커들이 고심 끝에 선택한 건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또는 PLA는 옥수수, 사탕수수, 콩 등 재생 가능한 원재료로 만들어지고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물과 이산화탄소가 된다. 탄소 배출을 감소하고 폐기물의 퇴비 활용도 가능하다.
문제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온도, 습도, 미생물의 정도 등 ‘특정 조건을 갖춘 환경’에서 분해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시설’에서 180일 이내에 분해한다는 인증을 받으면 ‘퇴비화 가능 물질’로 분류하고 정부에서 수거하는 음식물 쓰레기로 배출이 가능하다. 그래서 영국 티 메이커들은 티백을 이 조건에 맞추어 개발하고 있고, 현재 상용화된 생분해성 플라스틱 티백은 음식물 쓰레기로 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개인 정원의 퇴비더미에는 버릴 수 없다.
플라스틱 없는 티백 브랜드
현재까지 티백에 플라스틱이 들어있지 않은 영국 티브랜드는 푸카(Pukka), 클리퍼(Clipper), 피지팁스(PG Tips), 티피그스(Tea Pigs) 정도가 전부다. 푸카 티백은 아바카 섬유, 목재 펄프로 만들어진 종이에 천연 레진으로 실링을 하여 티백에 플라스틱이 (생분해성 플라스틱 조차)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클리퍼와 피지팁스는 종이 소재 티백에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실링을 했다. 티피그스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삼각뿔 티백을 쓴다.
지난 9월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The University of East Anglia)에서 영국의 가장 큰 차 브랜드 6개사(트와이닝스, 테틀리, 요크셔티, 푸카, 클리퍼, 피지팁스)의 티백에서 플라스틱이 검출되는지 실험을 했다. 플라스틱을 제외한 물질을 녹이는 구리 암모니아 용액에 티백을 넣어보았고, 트와이닝스, 테틀리, 요크셔티 티백에서 비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
포장까지 석유계 플라스틱이 일절 포함되지 않은 브랜드는 티피그스 하나 뿐이다. 티피그스는 티백을 개별 포장하지 않고 Natureflex라는 우드 펄프로 만든, 겉보기에 아주 비닐스러운 봉지에 담았다. Natureflex는 일반적인 환경에서도 생분해가 되는 소재라고 한다. 놀랍다. 푸카와 클리퍼 티백은 개별 티백 봉지에 미량의 플라스틱이 들어갔다. 하지만 종이로 분리배출이 가능하다. 피지팁스는 종이상자를 폴리프로필렌 비닐로 포장한 상태. 2021년까지 전 제품에 비닐 포장을 없애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12,000원 / 유기농 / 20개입
티백 : 아바카 섬유, 목재 펄프, 식물성 셀룰로오스 + 레진 실링 / 음식물 쓰레기 배출
티백 봉지 : FSC® 인증 종이 + 플라스틱 / 종이 재활용 배출
상자 : FSC® 인증 종이 + 식물성 잉크 인쇄 / 종이 재활용 배출
푸카는 2001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설립된 허브차 브랜드다. Pukka은 힌디어로 '진실된, 진정한'을 뜻한다. 고대 인도의 아유르베다의 지혜와 유기농 허브를 통해 현대인이 조화롭고 건강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미션으로 한다. 공정무역을 하고 1% for planet의 멤버이며, 2019년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등 지속가능한 환경과 허브 생산 농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푸카 티는 공식 수입처가 있어 국내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단, 푸카에서 생산되는 홍차 종류는 수입이 되지 않는다. 홍차를 고를 수 없어 고른 차가 블랙커런트 차. 로즈힙, 히비스커스, 블랙커런트 브랜딩 티다. 대부분의 허브차가 갖고 있는 닝닝한 맛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블랙커런트 차는 새콤한 향이 풍미가 좋다.
10,400원 / 유기농 / 25개입
티백 : 무표백 종이, 목재 셀룰로오스 + PLA 실링 / 음식물 쓰레기 배출
티백 봉지 : 종이 + 플라스틱 / 종이 재활용 배출
상자 : 종이 + 잉크 / 종이 재활용 배출
클리퍼는 1984년 차에 집착하는 부부가 도싯(Dorset) 주에서 있는 자신들의 부엌에서 시작한 차 브랜드다. 윤리적인 소싱과 유기농으로 생산되는 차를 공급하기 원했고, 아쌈차 두 상자로 처음 시작, 이제는 50개국 이상 수출하고 150개 제품이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 1994년 영국 최초로 공정무역 차 회사가 되었다.
클리퍼에서 다양한 홍차 제품이 나오지만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는 홍차는 얼그레이뿐이다. 얼그레이는 베르가못 향을 첨가한 가향 홍차로, 19세기 중국 홍차가 영국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될 때 이와 흡사한 차를 만들려는 시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수상이었던 찰스 얼 그레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따왔다고. 얼그레이 차는 특유의 향이 있어 쿠키나 케이크 등 디저트 재료로 사용되고, 특히 밀크티로 마시기에 제격이다.
3.99 파운드 / 15개입
티백 : 옥수수 추출 녹말 생분해성 플라스틱 + 접착제 없이 열로 밀봉 / 음식물 쓰레기 배출
투명 내부 봉지 : Natureflex 우드 펄프 소재 / 음식물 쓰레기 배출 또는 가정에서 퇴비화
상자 : FSC® 인증 종이 / 종이 재활용 배출
차 생산 업계에 있던 큰 닉과 루이즈는 2006년 '진짜 좋은 차'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티피그스 설립했다. 티피그스는 차 분야에서 처음으로, 환경 캠페인 그룹(A Plastic Planet)이 플라스틱 없이 포장된 식음료 제품에 수여하는 '플라스틱 프리 트러스트 마크(Plastic Free Trust Mark)'를 받았다. B Corp 인증 기업이기도 하다.
티피그스가 매력적인 브랜드인 건, 공식 홈페이지에 제품별 포장재 분리 배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 플라스틱 프리 차를 찾는 소비자에게 꽤 유용하다. 30명의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고 있다. 포장하지 않은 과일 바구니와 유리병 우유를 배달받기, 금요일 점심 남은 식재료로 함께 식사 하기, 퍼스트 마일(First Mile, 재활용품 수거 업체)에 가입하는 등.
하지만 아쉽게도 티피그스의 차는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다. 그래서 해외 직구로 구입하게 되었고, 내가 고른 차는 루이보스 크렘 캐러멜. 달콤하고 고소한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다. 난 마시자 마자 바로 '내가 가향된 차를 좋아하지 않았었지'를 깨달았지만. 직구도 괜찮다면 티피그스의 다양한 차의 맛을 한 번 즐겨보시라.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티백에 플라스틱이 들어갔으면 얼마나 들어갔다고 이 호들갑. 그래도 먹는 거니까 신경이 안쓰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완벽한 티백은 없었다!에 약간의 허무함을 느끼며... 그래, 그래... 잎차 마시자. 그러고 볼 일이다 싶다.
티백에 들어간 소량의 플라스틱을 없애기 위해 정원사가 사실의 전말을 폭로했고 언론이 거들었고 소비자들이 항의했다. '그 작은 양의 플라스틱'은 여러 주체들의 노력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아직 전부는 아니지만. 티백을 그냥 PLA로 만들었으면 쉬웠을 텐데, 터지지 않는 종이+PLA 실링 티백을 만들기 위해 기업들도 고생을 어지간하게 한 건 아닌 듯하다.
게다가 포장을 바꾸는 건 더 한 일. 차의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니까 섣불리 공기,수분 투과하는 재료로 만들 수는 없잖아. Natureflex 같은 신소재를 쓰거나 플라스틱 양을 최소로 해서 종이 분리배출 가능한 포장을 만들거나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연구 결과가 알려지고 티백을 PLA로 많이들 바꾸고 있지만 그 PLA 티백에 대해 검증된 바가 없고 포장에 대해선 아예 모른 척. 그래, 그래도 꽃차나 과일절임차 같은 건 유리병에 담겨있기도 하잖아. 차에 대해선 우리가 선택의 폭이 크니까 얼마나 좋아. 하지만 나는 홍차를 마시고 싶은데... 그리고 커피는??? 다 비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