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로션바(bar) 체험기
지금 욕실엔 갖가지 '바'들이 가득하다. 테스트로 사용하고 있는 샴푸바와 린스바가 10개 남짓, 클렌징 폼과 손비누를 대신 해주고 있는 도브의 뷰티바, 면생리대와 간단한 손빨래를 담당하는 워싱바까지. 씻어내는 것들은 용기가 필요 없는 '바'(bar) 형태의 비누로 죄다 바꿨다. 그럼 비누 아닌 것들은?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이 있다면 '로션바'를 들어봤을 법하다. 체온으로 녹여 바르는 고체 타입의 로션. 쓰레기도 없고 포장재도 없는, 비누같이 단순한 생활의 표본이다.
그런데 얼굴에 바르는 걸 덥석 바꾸기엔 진입장벽이 좀 높다. 얼굴 반쪽 피부가 다 날아간 경험이 있는 자로서... 바디로션은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SNS에서 바디로션바를 찾아본다. 집 혹은 클래스에서 만들어 사용하는 모습들이 많다. 만들어 쓰면 좋지. 필요한 만큼 원하는 대로 만들어 쓰면 그만큼 쓰레기도 줄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대량 생산할 것도 아닌 1인 가구가 혼자 로션을 만들어 쓰겠다고 재료를 사다 보면 포장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온다. 또 그게 딱 한 개 만드는 양은 아니라 애매하게 재료가 남아버리면 보관할 장소는... 어디에 쑤셔 넣을지 벌써 고민이다. 이건 내가 디퓨저 가내수공업을 해보겠다고 까불어봐서 안다.
어떨 땐 그냥 사서 쓰는 게 쓰레기를 줄이는 탁월한 방법이다.
게다가 더 큰 난관도 있다. 내가 게으름뱅이라는 것. 떨어질 때쯤 미리미리 만들어 쓰는 생활이라니. 밥이 없으면 그냥 안 먹고 마는 사람인데. 그냥 내가 고체 바디로션 찾고 말지.
당당하게 말했으나 아쉽게도 달랑 두 개다. 해외직구는 웬만하면 포함시키지 않는 선택지니까.
당연히 여기는 있겠지- 하며 1순위로 올려둔 러쉬의 원스 어폰 어 타임과 찾다 찾다 결국 찾아낸 한아조의 망고바디버터. 구입한 지 석 달을 넘기고 나니 이제는 검색이 잘된다는 것이 억울할 정도...
고체 로션, 바디바, 바디 버터 등등 다양한 검색어로 구글링 해봤지만 국내에선 '바디바'는 바디용 비누이며 '바디 버터'란 꾸덕하거나 조금 더 딱딱한 타입의 로션이었다. 뭐, 샴푸바도 몇 년 전에는 보기 힘들었다. 바디로션바도 선택지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포장 없음 + 바닥면 제품 스티커
125g 27,000원 바로가기 (시즌 제품이라 현재는 품절 상태다.)
먼저 러쉬의 원스 어폰 어 타임.
러쉬는 '네이키드'라는 이름으로 포장 없는 바 타입의 제품군이 제법 많이 나온다. 바디용 보습제로도 바디 마사지바, 바디 컨디셔너바, 바디 로션바 이렇게 세 가지 타입이 나온다. 바디 컨디셔너의 경우 인샤워로션이라 생각하면 쉽다. 물기가 있는 상태에서 바르고 물로 헹궈낸다. 그런데 마사지 바와 로션의 차이는 영 모르겠는 것. 그래서 정직하게 로션 카테고리에서 선택했다.
주문은 인터넷으로 했다. 러쉬매장이 가깝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이 득실거리는 곳은 무서웠으므로... 배송 온 박스에서부터 러쉬 특유의 달콤한 향기가 진동한다. 동글동글 러쉬의 블랙팟 모양에 제조 스티커만 붙어있을 로션을 기대하고 박스를 뜯었다.
옥수수 완충재를 파보니 에? 여기서 비닐봉지가 나온다고? 얇은 종이에 싸서 오겠거니 했는데 마치 크린백같은 것에 싸여왔다. 매장 가서 살 걸, 이러려고 내가 러쉬를 샀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찾아보니 러쉬는 생분해성 비닐을 사용한단다. 하지만 그 봉지는 크린백이 분명했는데... 다른 후기 사진들을 찾아봐도 말이다. 음...
우선 향은 합격. 러쉬 매장을 지나치기만 해도 코가 아닌 머리로 바로 침투하는 향 때문에 나의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라 러쉬에는 눈길도 안 주는데 이 아이는 친숙한 향이 난다. 풍선껌 중에서 두꺼운 핑크색 풍선껌 향. 그... 덴버껌 냄새!
슬라이드 종이상자+종이갑+종이 속포장
100g 28,500원 / 바로가기
그리고 하나라도 찾아서 날 신나게 해 준 한아조의 망고 바디 버터.
한아조는 수제비누를 만드는 국내 브랜드로 이게 비누인가 싶을 만큼 아름다운 디자인을 선보인다. 그래서인지 민음사, 디뮤지엄, 굿네이버스 등 각종 브랜드 혹은 전시회와의 콜라보도 잦은 편. 그리고 시의적절하게 망고 바디 비누와 로션을 출시했다.
노란색 슬라이드 종이상자 패키지에 이름같이 버터마냥 포장된 로션바. 사용 방법도 친절하다. 손잡이가 되어줄 종이갑에는 칼선이 있다. 고대로 뜯어낸 후 안에 얇은 버터 종이를 잘린 단면에 맞춰 주욱 찢으면 깔끔하게 지우개 같은 모양이 나온다.
향은 약간 새콤한 향이 나는 코코아버터 냄새? 코코아버터 함량이 높으면 자칫 속이 울렁거리는 뜨끈한 냄새를 뽐내는데, 이게 망고향인지는 모르겠으나(망고 안 먹음...) 덕분에 새콤 달달해졌다.
사용방법은 둘 다 같다. 부드럽게 몸에 문질러 바르는 것. 천천히 체온으로 녹여 바르면 된다.
처음 손으로 잡기만 해도 잘 녹길래 몸에도 슉슉 잘 발릴 줄 알았다. 따끈한 물로 샤워까지 하니까. 로션 바를 꽉 쥐고 다리에 쫙 그었다. 결과는 아픔!!! 지우개로 다리를 벅벅 문지른 느낌이다. 이래서 사용설명서를 잘 읽어야 한다. 문맥을 파악하고 화자의 의도를 정확히 캐치해내야 한다고 지겹도록 배우는 이유가 다 있었다.
그래요. 천천히. 로션바와 피부가 맞닿아 온도가 상승하고 곧 녹는점이 되어 부드럽게 발리는 그 타이밍을 기다려줘야 한다. 근데 그걸 또 못 기다리고 손으로 문질문질 녹여 발라 봤다. 응, 안돼. 손이 먼저 짚은 곳, 그곳만 발린다. 생각대로 호락호락 넘어가 주지 않는 녀석들이다. 대신 손으로 문질문질 해주면 겉면이 약간 말랑 말랑해져 바르기 편하다.
제형은 오일리 하다기 보단 왁스에 가깝다.
두 가지 모두 번들거리지 않고 두껍게 발리 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정말 얇게 발려서 갑갑한 느낌이나 옷 입었을 때 찝찝한 느낌이 없다. 보습감도 오래간다. 발랐을 때 촉촉하진 않은데 확실히 코팅이 되는지 보통 하루가 지나면 로션기가 싹 가시는 피부임에도 보들보들했다. 바르자마자 촉촉해져서 만족스러운 바디로션과는 또 다른 영역이다.
둘의 차이는 패키지와 향정도? 러쉬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아무래도 벌거벗고 있다 보니 먼지가 붙는다. 그걸 그대로 바르면 내 몸에도 묻는다. 한아 조의 망고 바디 버터는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패키지가 있다. 손으로 잡는 부분도, 종이케이스도, 거기다 바르는 부분이 마르거나 먼지가 붙지 않도록 종이 씰까지 붙여둔다.
그런데 손으로 문질문질 해줘야 말랑해져 잘 발린다고 했잖아요?
러쉬는 손으로 잡은 부분으로 바르기 좋다. 멈추지 않고 돌려 바를 수 있다. 대신 한아조는 앞면만 녹여서 바르다 보니 시간이 더 걸린다. 이거야 뭐. 러쉬를 다른 빈 통에 넣어놓거나 한아조의 종이옷을 벗겨버리면 그만.
둘 중 고민이라면 향으로 선택하면 되겠다.
음... 한마디로 힘이 든다.
사람 몸이 그냥 원통이 아니잖아요? 관절도 있고 뼈가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한단 말이지. 예를 들어 복숭아뼈 같은 곳은 피부가 트기 쉬운 곳이라 빠트리지 않고 챙겨줘야 하는데, 고체 바디로션으로 문지르기가 영 애매하다. 굴곡이 많아 발리다 말다 한다.
또 나는 다리만 차가운 편이라 그런지 로션 바가 잘 녹아내려주지 않는다. 정말 천-천-히 한 번씩 다 그어준 후 손으로 삭삭 열심히 문질러 고르게 펴 발라줘야 한다. 그러다 보니 힘이 든다. 피부가 얇은 곳은 살이 같이 딸려오기도 해서 다리까지만 바른다.
그럼에도 바디로션 바를 계속 쓸 거냐고 물어본다면, 가끔 새로운 게 눈에 보인다면 도전해볼 수 있는 정도?
바디로션 바르는 걸 귀찮아하는 나에게 많은 정성을 요구하더라구- 다른 바디로션도 있다면 같이 써볼 만하다.
우선 내가 지속 가능해야 지속 가능한 소비가 완성되는 법이지. 바디로션이 바 타입이어야 정답인 건 아니니까. 다음번엔 김작자 기준 지속적으로 쓰기 편한 바디로션 선택지를 가져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