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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Apr 05. 2021

커피 마시는 법만큼 간편하다

네스프레소 캡슐 재활용 프로그램

필자는 매일 손으로 직접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을 해서 커피를 마신다.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그렇다고 핸드드립 커피의 맛과 향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핸드드립 외에 커피 전문점 수준의 커피를 가장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캡슐 커피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머신에 캡슐 하나를 ‘톡’ 넣은 다음 버튼을 누르고 커피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장면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이 캡슐 커피의 대명사와 같은 브랜드가 바로 네스프레소(Nespresso)다. 커피 머신도 가격대별로 다양하고 캡슐의 종류만 해도 30개가 넘는다. 스타벅스에서도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과 호환되는 캡슐을 판매하고 있을 정도다. 


네스프레소는 아니지만 몇 년 전 보급형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머신을 잠시 써본 적이 있다. 편리하긴 하지만 추출 이후 캡슐을 처리하는 것이 곤욕이었던 기억이 난다. 캡슐 안에 물이 차 있어 휴지통에 바로 넣기도 그렇고, 캡슐과 원두를 분리하기도 쉽지 않았다. 찾아보니 돌체구스토 캡슐은 폴리프로필렌(PP)으로 만들어져 재활용이 어렵고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한단다. 



얼마 전 모임이 있어 지인의 집에 방문했다가 부엌에 커다란 네스프레소 캡슐 재활용 백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네스프레소에서 캡슐 회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직접 이용하는 모습은 처음 본 것이다. 문득 네스프레소에서 캡슐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세부 과정이 궁금해져서 찾아보았다.



돌체구스토와 달리 네스프레소 캡슐을 재활용할 수 있는 이유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은 무한 재활용이 가능하고 자연 발생하는 친환경 금속일 뿐 아니라, 커피의 신선함과 품질, 풍미를 보전할 수 있는 최상의 재료로 꼽힌다. 알루미늄은 얇고 가볍지만 산소, 습도, 빛과 같은 외부의 요소로부터 커피를 보호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특히 네스프레소 캡슐에 사용된 알루미늄 성분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새로운 알루미늄 관리 구상안(ASI: Aluminum Stewardship Initiative) 표준을 준수하는 100% 버진 알루미늄(Virgin Aluminum)이라고 한다. 크기는 작지만 재활용하지 않고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최상급 알루미늄인 것이다.



네스프레소에서는 이 캡슐을 활용하기 위해 무려 25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했다고 한다. 결국 독자적인 재활용 프로그램을 개발해 기업 차원에서 사용된 캡슐을 수거하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10만 개의 캡슐 재활용 수거 지점이 있고 18개국에서 ‘Recycle@home(직접 수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NESPRESSO

재활용 백은 네스프레소 웹사이트에서 캡슐을 주문할 때 신청하면 무상으로 보내준다.(재활용 백 신청) 재활용 백 또한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만들어졌고, 오리지널 캡슐이 최대 100개까지 들어간다. 캡슐과 커피를 분리하지 않아도 되고 곰팡이가 생긴 캡슐도 재활용이 가능하다. 온라인으로 캡슐을 주문할 때 ‘수거 요청’을 장바구니에 담으면, 기사님이 제품을 배송하면서 재활용 백을 수거해 간다. 가까운 네스프레소 부티크에 들고 가서 직접 반납해도 된다.(매장 찾기)


@ NESPRESSO


이렇게 수거된 캡슐은 네스프레소의 자체 재활용 시설로 보내진다. 기계에 들어간 캡슐은 작은 조각으로 잘리면서 알루미늄 캡슐과 커피 찌꺼기로 분리된다. 공정을 통해 순수 알루미늄만 남긴 후 녹여서 재활용하는데, 이는 제품 생산에 사용된 알루미늄의 약 75%에 해당한다.(재활용 과정) 재활용 알루미늄은 새로운 커피 캡슐이나, 자동차 엔진과 부품, 컴퓨터, 음료 캔, 각종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활용된다. 커피 가루는 영양분이 풍부한 비료, 버스에 필요한 바이오 연료와 같은 재생 에너지로 탈바꿈된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커피 가루를 농촌 지역의 시골학교 부지에 조성한 공동 채소밭 100곳의 퇴비로, 싱가포르에서는 지역 농장에서 유기농 농산물 재배에 필요한 퇴비로 사용하고 있다. 


@ NESPRESSO


네스프레소의 사례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제품들이었다. 재활용 제품이지만 캡슐의 고유 색상을 살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남기면서 디자인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네스프레소가 스웨덴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벨로소피(Velosophy)와 협업해서 만든 ‘벨로소피 리:사이클(Velosophy RE:CYCLE)’ 제품의 프레임에는 약 300개의 보랏빛 아르페지오(Arpeggio) 캡슐이 사용됐다. 


벨로소피는 자전거 한 대가 판매될 때마다 교육 환경이 열악한 아프리카의 여학생들에게 자전거를 기증하는 활동을 한다. 이 자전거의 판매가는 1,290€(한화 약 175만 원)인데 현재는 재고가 없는 상태이다. 비싸서가 아니라 품절이라 못 사는 것으로 잠시 위안을.


@ VELOSOPHY


네스프레소의 본사인 네슬레가 스위스에 있는 만큼 스위스를 대표하는 기업들과의 협업도 활발하다. 100년 역사의 브랜드 카렌다쉬(Caran d'Ache)와는 펜의 몸통 부분에 재활용한 캡슐 알루미늄을 25% 함유한 볼펜(Ballpoint Pen 849 NESPRESSO Limited Edition)을 한정판으로 선보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펜의 몸통 색이 캡슐의 색과 동일하다는 사실. 지금까지 3개의 버전을 출시했는데, 첫 번째는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 푸른빛의 ‘다르칸(Darkhan)’. 두 번째는 올리브 그린 색의 ‘인디아(India)’, 세 번째 에디션에는 ‘아르페지오(Arpeggio)’ 캡슐을 사용했다. 현재는 2번째, 3번째 에디션만 구입할 수 있고 가격은 36.90 스위스 프랑.


@ CARAN D'ACHE
@ CARAN D'ACHE


또 다른 스위스의 대표 브랜드 빅토리녹스(Victorinox)와도 비슷한 방식으로 캡슐 24개를 재활용해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만들어 한정 판매한다. 네스프레소를 애용하는 고객이라면,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캡슐로 만든 제품이라면 충분히 소장욕구가 생길만하다.


@ VICTORINOX


솔직히 필자가 핸드드립을 버리고 네스프레소 머신으로 갈아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지만, 적어도 네스프레소 커피를 마실 일이 있을 때면 캡슐 재활용 프로그램을 떠올릴 것 같다. 커피 캡슐에 사용되었던 알루미늄이 어디에선가 다른 제품으로 다시 태어나 지구를 돌고 도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참고 자료

네스프레소 코리아

https://www.nespresso.com/kr/ko/coffee-recycling

https://www.nespresso.com/kr/ko/2020-make-green-moments-with-recycling

https://www.nespresso.com/kr/ko/2020-make-green-moments-with-recycling-activity

Velosophy RE:CYCLE

https://velosophy.cc/product/recycle

Caren D'ache Ballpoint Pen 849 NESPRESSO Limited Edition

https://www.carandache.com/ch/en/ballpoint-pen/ballpoint-pen-849-nespresso-limited-edition-2-p-11072.htm

https://www.carandache.com/ch/en/ballpoint-pen/ballpoint-pen-849-nespresso-limited-edition-3-p-11139.htm

Victorinox : Nespresso Limited Edition 2019

https://www.swissarmy.com/ca/en/Nespresso-Limited-Edition-2019/news/nespresso-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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