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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Jun 08. 2021

나무를 아끼는 종이

친환경 종이로 친환경 인쇄하기

자원이 귀했던 시절 모든 걸 아껴 써야 했겠지만 아직도 한국인이라면 아껴 써야 하는 것이라고 집단 무의식이 작동하는 것 중 하나가 종이다. 사무직 비슷한 언저리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쓰는 종이는 복사용지이고, 그들이 종이를 아끼는 방법은 이면지를 사용하는 것과 프린팅 할 때 실수율을 줄이는 것. 나도 그중 한 명이고 이면지를 출력용이나 메모용으로 사용한다. 나무 하나라도 덜 벨 수 있다고 자부심 가질 만한 일이라 느끼기 이전에 이미 생겨버린 습관의 일종이다. 


좀 더 주의 깊게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후로 종이가 다 같은 종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심이 두어야 눈의 띄고 눈에 띄어야 알게 된다는 게 항상 경험하면서도 항상 신기한 일인데, 선택지에 소개하는 제품의 포장 설명문이 그중 하나다. 이왕이면 포장이 없는 제품을 찾고 포장을 했다면 플라스틱 대신 썩어 없어지는 종이로 종이를 쓴다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재생종이를 사용했다, 사탕수수 부산물로 만든 종이다, 콩기름 인쇄를 했다 등등의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환경 문제에 예민한 기업은 우선 포장에 신경을 쓰고 포장에 신경 쓰는 방법 중 하나는 포장 종이 재질이다. 


한 번 사용한 종이를 다시 사용해서 만든 재생종이가 좀 더 환경적이겠구나, 사탕수수 종이라는 것이 있구나, 정도를 알고 있다가, 애착을 가지고 머물며 일하고 있는 동네의 지도를 만들 일이 생겨 종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환경 문제에 비교적 덜 민감하던 시절 인쇄물 제작할 일이 있으면 종이의 시각적, 물리적 특성만 생각하고 종이를 골랐는데, 이번에는 종이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종이를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냐를 보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종이는 나무로 만든다. 그리고 이 종이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원시림을 파괴하고 있다. 생태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따르면 종이를 만들기 위해 2초마다 축구장 면적의 원시림이 사라진다고 한다. 300년 이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숲,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되고 원주민의 삶의 터전인 원시림은 기후와 강수량을 조절하고 탄소 저장고가 되어준다. 산림 파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은 세 가지 해결 방안을 제안하게 한다. 


FSC 인증

산림관리협회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는 국제 비영리단체로 산림 자원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산림 경영 확산을 위해 설립되었다. 지속 가능한 산림 경영이란 벌채와 개발로 인한 산림 훼손을 방지하고 산림의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며 지역 주민과 근로자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산림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준수하는 산림 경영자에게 FSC는 산림 경영 인증(Forest Management Certification)을 한다. 


FSC 인증은 산림 경영자뿐 아니라 목재를 원료로 제품(가구 제조, 출판, 펄프 산업 등)을 생산, 유통하는 기업에도 적용된다. FSC 인증 목재를 사용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제품이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원료 관리를 하는 기업에 대해 FSC CoC(Chain of Custody Certification) 인증을 한다. 


FSC 인증 마크는 소비자가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가구, 악기, 주택뿐 아니라 종이까지. 소비자는 FSC 인증 마크가 있는 종이를 사용하며 전 세계 원시림 보호를 지지하는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 


재생지

종이를 만드는 펄프 원료로 나무 그리고 폐지가 있다. 나무를 새로 베는 대신 한번 사용한 폐지로 만든 종이가 재생지다. 우리가 고이 모아 재활용품으로 배출하는 폐지는 종이로 다시 만들어진다. 폐지로 신문지나 갱지, 택배박스를 주로 만들지만, 단행본, 브로셔 제작용, 포장박스용, 복사용지 등 다양한 두께, 색상, 용도의 재생지가 있다. 재생지는 고지율(재사용한 종이의 비율)이 높을수록 당연히 환경에 이롭다. 대체로 고지율이 40% 이상인 것을 재생지라 하지만 시중에 재생지로 판매되는 종이 고지율은 10%부터 100%까지 다양하다. 


재생지 사용률을 효과적으로 높이는 방법은 재생 복사용지를 사용하는 것일 텐데, 우리나라의 재생 복사지 점유율 2.7%다. 40% 넘는 기업이 사무용지로 80% 넘게 재생종이를 쓰고 있는 독일에 비하면… 비할 게 아니다. 재생지가 알려지지 않은 탓, 그리고 재생지 품질에 대한 염려도 한몫할 것이라 추측해본다. 품질에 대한 의구심은 ‘GR인증’ 확인으로 일단 거둬두자. 연속 복사 시 복사 상태, 이중 급지나 걸림 현상 등 12가지 품질 규정을 통과했다는 표시라고 한다.


사무실에서 나무 심는 법


재생지는 나무에서 섬유질을 추출하는 데 드는 에너지와 화학물질 투입 과정이 없어 그만큼 환경에 이롭다. 나무를 베지 않는 효과 더하기 에너지, 물자원 15~20% 절약, 이산화탄소와 폐기물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재생지가 아직 가격이 더 비싼 편이지만 재생지를 더 많이 사용하면 가격은 더 낮아진다. 


비목재 펄프

나무로 종이를 만들기 시작한 건 1850년대 이후부터. 그전까지 식물이나 농산물 부산물로 종이를 만들었다. 한지는 닥나무로 만들었다. 닥나무는 나무라고 하기에 풀에 가깝고 우리가 아는 종이를 만드는 목재가 아니다. 한지처럼 인류가 처음 사용한 전통 종이는 ‘비목재 펄프 종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케나프(아욱과 1년생 초목), 대마(뽕나무과의 식물), 바가스(사탕수수 부산물)가 있다. 이 외에도 대나무, 아마, 면, 바나나 껍질, 해초 등 섬유소가 들어 있는 식물은 이론적으로 모두 종이 원료가 될 수 있고, 볏짚, 콩껍질, 토마토 줄기, 커피가루, 감귤 껍질과 같은 농산물 부산물도 사용할 수 있다. 종이 만든다고 굳이 산림을 파괴할 필요가 없다는 것.


비목재 펄프로 된 종이를 사용하면 그만큼 나무 베는 양을 줄일 수 있고 농산물 부산물같이 그냥 버려졌을 재료는 유용한 것이 된다. 동시에 인류가 잃어버린 자연을 자연처럼 활용하는 지혜를 복원해갈 수 있다. 커피가루 종이, 해초 종이, 바나나 종이, 감귤 종이... 스토리와 향기가 느껴지는 다양한 종이가 있다. 신비롭지 않나. 


@ inthepaper


이렇게 종이에 대한 공부를 한 후 인쇄업체에 문의를 했다. 어떤 종이를 취급하는지. 인쇄업체는 콩기름 인쇄를 소량으로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인쇄업체에서 제안해 준 종이는 FSC 인증 종이, FSC 인증 재생지, FSC 인증 100% 재생지 또는 비목재 펄프 종이다. 뒤로 갈수록 환경에 이롭고 인쇄 가격은 비싸진다. 최근에는 대부분 FSC 인증을 받기 때문에 모조지, 아트지, 스노우지 등 일반적으로 자주 쓰는 종이를 선택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재생지를 찾는다면 그린라이트, 이라이트가 있고 이 종이는 고지율 2~30%에 해당한다. 100% 재생지로 추천받은 종이는 센토, 비목재 종이는 얼스팩이다. 



센토 CENTO

FSC 인증 100% 재생 펄프 

80, 100, 120, 170, 260, 350g/m²

구입처

@ 삼원페이퍼


센토(Cento)는 이탈리아어로 숫자 100을 의미한다. 100% 재생 재료를 사용했다는 걸 확인해주는 이름. 재생지 특유의 표면 티끌이 적고 백색에 가까운 색을 낸다. 천연 펄프 종이와 비교하여 색상, 거친 정도, 후면 비침 정도 등 동일한 품질을 내고 선명한 인쇄를 할 수 있다. 옵셋, 스크린, UV 등 모든 인쇄 작업이 가능하다. 두께가 다양하여 출판물 표지와 내지, 리플릿, 명함, 패키징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다.



얼스팩 Earth Pact 오프셋

100% 사탕수수 섬유

70, 72, 90, 150, 200, 226, 263, 295g/m²

구입처

@ 얼스팩


얼스팩은 설탕을 생산하고 남은 사탕수수 부산물 바가스(Bagasse)로 만든 종이다. 사탕수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농작물이고, 앞으로 설탕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 부산물을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이미 페트병, 바이오매스 에너지 등으로 쓰이고 있고 얼스팩도 그 활용 안 중 하나다. 


@ 얼스팩


얼스팩 종이는 표백을 하지 않아 사탕수수 섬유의 색상과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코팅 여부와 중류에 따라 여섯 가지 제품이 있고 인쇄, 식품 패키지, 포장 충전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인쇄용 종이는 오프셋(OFFSET)이다. 두께가 다양하여 일반 노트부터 쇼핑백까지 활용도가 넓다. 




동네 지도는 센토 120g으로 제작했다. 센토는 미색이 도는 백색으로 인쇄 선명도가 좋으리라 기대했고 얼스팩은 포장박스로 많이 보아온 터라 센토가 어떤 종이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원했던 것만큼 결과물이 좋다. 색상이 선명하고 두께감이 안정적이다. 재생지가 어떻게 이렇게 매끄럽고 뽀얀지 신기할 따름. 아이들이 동네를 직접 그릴 수 있게 컬러링북 형식으로 제작한 지도인데, 추가 인쇄할 때는 좀 더 얇고 헐렁한 종이를 써도 될 것 같다. 얇은 종이가 더욱 친환경일 테니.




참고

http://www.green-paper.org/

http://earthpact.co.kr/

https://printway.tistory.com/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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